소중하지만 믿을게 되지 못하는 존재
사람을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난 일에 끌려서 뭔가를 했던 적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사람에 끌려서 뭔가를 했던 적이 더 많았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고3 때 인류학을 전공하겠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건 그때부터 내가 사람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 그렇게 인식을 하고 그런 결정을 한건 아니었다. 재수하면서 다른 전공으로 선회했으니 말이다. 취미로 사진을 찍을 때도 난 항상 사람이 들어간 사진을 찍었다.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하려고 하는 지금, 사실 그래서 무엇을 찍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이 날 가장 힘들게 한다. 특히 내가 믿고, 신뢰하고, 따랐던 사람,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주로 나를 힘들게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기대치가 없거나 극히 낮기 때문이다. 물론 더 어렸을 때는 모든 사람들에게 실망을 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 누군가를 쉽게 믿거나, 신뢰하고, 따르지 않게 됐다. 그래서 내가 믿고, 신뢰하고, 따랐던 사람들에게 실망하게 될 경우, 그들이 변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모습들로 인해 내가 직격탄을 맞으면, 그 상처는 더더욱 쓰리다.
그렇다.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사람과의 사랑에서, 관계에서 위로와 쉼을 받지만, 또 사람으로 인해 상처와 고통을 받는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둬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주로 어린 사람, 또는 아랫사람에게 사용되지만 사실 그건 또래나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다. 존경했던 어른들의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도 많았고, 정말 존경했던 어른들이 권력과 명예, 그리고 본인 욕심 때문에 변해가는 모습들도 많이 봤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그렇게 변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는 주변 환경이다. 부모들이 예전부터 자신들의 자녀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려고 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하다못해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게 되면 그 사람의 말투에도 어설픈 사투리가 업에 붙는데, 사람이 무의식 중에 주위에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나 분위기에는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겠나? 두 번째 이유는 사람 안에 있는 욕심 때문이다. 돈, 명예, 권력 등 외에도 무엇인가에 대한 소유욕은 사람을 다이내믹하게 바꾸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현실 중심적이 될수록 그러한 욕심에 물들어서 부정적으로 변한다는데 있다.
사람은 분명 변한다. 사람들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사람에게 절대로 변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변하는 측면과 변하지 않는 측면이 공존한다. 그런데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필연적으로 부정적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세상이 더 많은 돈,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우리는 그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더 좋은 사람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지, 내가 내리는 의사결정과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고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사실 그래서 어렸을 때 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일인가? 그런데 일기를 쓰는 습관이 든다면 그 습관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근육을 만들어줌으로써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최근에 정말 존경하고, 감사했으며, 따르던 분에게 매우, 매우 실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이 거의 2주를 갔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방해가 될 정도로. 그분이 변하는 과정을 옆에서 계속 봤고,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떠나고 있었던 중에 결정타를 맞았다. 이제 다시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