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
내 안의 상처들
나는 내가 상처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겉으로 봤을 때 우리 집은 큰 부자도 아니지만 크게 모자란 것도 없는 집이었기 때문에. 아니 사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80년대, 그리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직후인 90년대 초반에 아버지 직장을 따라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으니 사실 난 또래에서는 혜택을 굉장히 많은 사람에 속한다. 그래서 난 내가 상처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아니, 상처를 받으면 안 되는 환경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난 오히려 상처가 가득한 사람이었는데, 그건 우리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께서 나쁜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두 분은 오히려 자식들을 너무 사랑하고, 아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었다. 다만 두 분은 채찍질은 할 줄 아셨지만 당근을 주는 법은 모르는 분이셨다. 우리 집은 사소한 스킨십도 없고,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평일에는 얼굴을 볼 수 없고 주말에는 항상 주무시는 분이었으며, 나는 뭔가 하나를 잘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다른걸 더 잘해야 한단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아버지께서 술 취하셨을 때, 그리고 어머니께서 다른 사람에게 내 자랑을 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을 때 외에 난 칭찬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3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말이다.
상처를 드러내다
그게 쌓이고, 쌓였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힘든 시기가 되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내 인생에 가려져 있던 상처들이, 임시로 봉합되어 있던 것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난 아버지와 6개월 동안 얼굴도 안 보고 대화도 안 했고, 아버지께선 내가 대학원에 가더니 더 애가 됐다고 하셨다. 동생은 그 정도 압박이나 상처는 누구나 있는데 왜 형은 유별을 떠냐고 했다. 어머니는 그나마 내 마음을 이해해 주셨고 어머니께서 실수하셨던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변하지 않으시니 네가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냐고 하셨다.
그런데 그게 참 안되더라.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냥 덮고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걸 그냥 괜찮다고 넘어가고 나면, 내가 가졌던 상처들이 내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쁜 분들이 아니셨다. 다만 우리 양가의 가족사, 그리고 6.25 전쟁과 그 이후에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서 두 분은 칭찬이나 따뜻한 말을 듣지 못하고 자라셨고, 양가에서 모두 가장 공부를 잘하셨던 두 분은 그분들의 부모님께 항상 '잘해야 한다'는 말만 들으면서 자라셨다. 그분들은 내게 악의를 갖고 그러신 게 아니라, 본인들이 경험했던 대로 자식들을 대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찌 보면 두 분이 나보다 더 큰 피해자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런 성향은 내 선에서 끊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상처들을 다 해결하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 기도제목은 항상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내 안에 있는 상처들이 다 해결되고, 두 분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난 내 안에 있는 상처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괜찮지 않은 상태를 괜찮다고 포장하지도 않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이 지났다. 그리고 여러 가지 노력, 고민, 생각을 겪으면서 내 안의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매우, 매우 천천히. 사실 독립해서 산지 몇 년이 지난 상황에서 작년 이맘때 다시 부모님 댁으로 들어온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이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내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내가 또 아버지께 드린 상처를 회복시켜드리고 싶었다.
변화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약 1년이 지났다.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기 민망하지만, 가족과 다시 같이 살면서 내가 참 많이 변했음을 발견한다. 예전에 같이 살 때 난 참 나 중심의 사람이었는데, 이젠 가족이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의 인생의 무게도, 어머니의 마음과 피곤함도, 동생의 고단함도. 그래서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챙기게 된다. 놀랍게도 주말에 집에 올 때마다 아버지와 부딪혔던 것과 달리 1년 동안 아버지와 크게 부딪힌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하다. 아버지께서 노력하고 계신 것도 있지만, 아버지를 대할 때 예전처럼 불편한 마음이 내 안에 없음을 발견한다. 불과 몇 년 전에 아버지께 왜 그렇게 분노했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만의 얘기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내가 조금 더 유별났던 건 맞다. 예민하면서도 둔하고, 둔하면서도 예민한 편이다 보니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마음으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만 상처를 받는 건 나뿐이 아니다. 내 안에 있던 상처를 발견하고 나니 사실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상처들도 보인다. 때로는 그들도 모르는 그들 안에 있는 상처들도. 혹시... 하고 얘기하다 보면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이 가족관계에서 시작된 상처들이다.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게 만들기 때문에 티를 내지 않을 뿐, 상처가 없는 사람들은 세상에 없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마음에 어떤 형태로든 상처가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하는 이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그 문제를 꼭 해결하고 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건 첫 번째로 본인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상처가 본인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배우고 따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사실 부모의 거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건 그 아이 안에도 같은 종류의 상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단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그 문제가 해결될 때 내 삶이 훨씬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짜증 나고 욱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본인 안에 있는 무엇인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런 반응을 하게 되는 빈도가 줄어들고, 그 결과 내 삶이 훨씬 더 안정된다.
세 번째로 그렇게 되는 것이 당신 주위 사람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난 내가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떤 표현을 쓰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내 안의 문제들이 해결되면서야 비로소 지인들에게 '너 예전에 이랬어'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당신은 모르지만, 당신 안에 있는 상처가 사실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당신을 피할 뿐, 절대로 당신에게 그런 피드백을 해주지 않는다. 혹시라도 그런 피드백을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한번 멈추고 나 자신을 돌아보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무엇인가가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 번째로 그 상처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상처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만남이 그 상처를 해결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도 '내 안에 이런 상처가 있구나'를 최소한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어야 한다. 나의 그런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내 안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