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그것만이 목적이 되어야 할까?

by Simon de Cyrene
이겨야만 하는가?

나는 스포츠를 정말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일 테다. 올림픽, 월드컵, 평소에는 프로야구, NBA, KBL, MLB까지 챙겨보지 않는 스포츠가 드물 정도로 나는 스포츠를 좋아해 왔고, 좋아했다. 고3 여름방학 때 올림픽 경기들을 다 보느라고 제대로 공부를 안 해서 재수를 했을 정도니 할 말 다한 게 아닐까?^^


그런데 스포츠에서 비디오 판독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포츠에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그 경기가 벌어지는 과정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비디오 판독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초점이 경기 결과에 맞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경기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에는 관심이 없고 VAR로 인한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심지어 불공정한 VAR결정으로 인해 이익을 본 측은 침묵한다. 이게 스포츠 정신에 맞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공놀이 하는데 뭐 그렇게 몰입을 해?'라고 하지만 사실 스포츠는 그냥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에너지를 뿜어냄으로써 다른 영역에서 발휘되는 폭력성의 수준을 낮출 수 있고, 이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국가 간의 전쟁을 실질적으로 막아주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총만 없지 사실 국가대항전은 전쟁터와 마찬가지 아닌가? 사람들이 전쟁이나 전투에서 승리하면 환호하듯이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하면 환호하지 않는가? 스포츠는 공놀이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회사를 다니는 것은 기계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예술계에 종사하는 건 딴따라라고, 사업하는 건 돈만을 목적으로 하는 천박한 것이라고 폄하할 것인가? 그런 식으로 비판하기 시작하면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직업군이 어디에 있겠나? 우리 사회에 모든 직업들이 어느 정도는 사회적 기능이 있듯이, 스포츠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스포츠는 그걸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경기가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서 인생에 대한 많은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을 제공한다. 이는 스포츠의 특성상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인생의 정점을 종목에 따라 빠르면 10대 중후반에서 늦어도 30대 중반에 맞이하는데,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 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규칙을 준수하는 모습, 그리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했을 때 그에 승복하는 모습은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보여준단 것이다. 나는 그래서 스포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포츠는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서부턴가 그 '과정'은 잊혀지고 오로지 '승리'만이 목적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모습이 비디오 판독이나 VAR의 결과라는 것은 아니다. 비디오 판독과 VAR이 그렇게 과정보다는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향성으로 인해 발생한 현상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놓고 내기를 하기 시작했고, 스포츠 경기 결과와 성적에 따라 운동선수들의 몸값이 급등하고, 그 경기 결과에 자신들의 광고를 붙여서 사업에 활용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실 스포츠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국내외 스포츠 단체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리들이 그걸 잘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에서도 '승리'가 가장 큰, 아니 어쩌면 유일한 목적으로 전락해 버렸다.


물론 승리할 수 있다면 승리하는 게 좋다. 어제 새벽에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그걸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대표팀 혹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응원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연대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 때로는 패배했을 때 그것을 인정할 줄 아는 법을 배우는 것은 모두 스포츠를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경기 자체의 승패는 있을 수 있어도 스포츠를 둘러싼 상황을 놓고서는 승패가 있다고 할 수 없는데 우리는 경기의 승리 여부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한다. 국가대표팀 피지컬 코치가 한국 선수들이 패배에 유난히 깊게 빠져든다고 말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런 성향을 잘 보여준다.


승리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된단 것은 이번 월드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독일에게, 세계 1위에게 승리했고 어제의 경기는 아마 월드컵 역사에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승리 자체가 목표가 되면 여기에서 멈추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스포츠의 경우 한 경기, 한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온라인에서 다 알려지기 때문에 그 과정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은 엄청나다. 월드컵이 끝나면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겠지만 그건 지난 월드컵 이후에도 그랬다. 이제는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리 원칙이 지켜지고, 공정성이 담보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 그런 과정 자체가 스포츠가 갖는 사회적 역할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의 승리

이번 월드컵에서 '승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더 나누자면, 어제 저녁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왜 스웨덴이랑 할 때는 이렇게 못했냐]고 따지는 기사가 뜨고 그에 대해서 선수는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됐었다]라고 대답했다. 솔직히 화가 났다. 그런 질문을 하는 언론도, 그렇게 대답한 선수도. 물론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당시에 평가전을 그렇게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현수와 김영권은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었고, 강한 상대와 만났을 때의 수비 조직력을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주전급 선수들의 갑작스러운 줄부상으로 인해서 라인업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더군다나 여유 있게 쉬는 상황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의 문제는 신태용 감독이 혼자 결정한 게 아니라 미냐노 피지컬 코치의 역할이었다. 장현수의 기용 역시 마찬가지, 교체 카드의 사용 과정에서는 분명 그란데 코치와 의사를 조정했을 텐데 비판을 넘은 비난이 신태용 감독만을 향하는 게 안타깝다.


무조건 신태용 감독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터뷰에서 '트릭'이란 표현을 쓰고, 한국 사람들은 월드컵 때만 관심을 갖는다는 식의 말을 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 경기장에서 그의 모습이 잡힐 때면 바짝 굳어있는 모습 속에서 그가 심리적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분명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식의 말실수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태용 감독이 조금 더 과감하지 못했던 것 역시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경기에서 수비 라인업이 보여준 모습은 과연 그가 말한 수비 조직력을 이유로 계속해서 실수를 하는 장현수를 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축구에서는 승리가 전부여서는 안된다. 그 과정 역시 중요하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파울이 많은 것을 갖고 트집을 잡던데 6월에 그런데 코치가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들이 너무 나이스 하다고, 조금 더 터프해져야 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마 파울이 과도하게 없다면 또 스포츠에서 파울은 적정한 수준에서 전략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우리나라 선수들은 언제나 나이스 하고, 매너 좋고, 파울 없는 선수들로 인지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1-2달 사이에 그들은 거칠어지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다만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다. 일본과 비교를 하는 경우도 많던데 사실 일본의 경우 이번 국가대표팀이 '아저씨 대표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과거부터 손발을 국가대표팀에서 맞춰본 선수들로 재구성했으니 더 짧은 시간 안에 조직력이 잘 맞춰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독일에게 승리했다고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용서되는 것도 아니지만, 갑자기 감독이 경질되고 심지어 축구협회 임원과 구성원들이 모두 교체되는 과정과 여론의 비판, 비난, 비아냥거림 속에서 버텨낸 과정이 어쨌든 마무리됐다. 이젠 지나간 개별 구체적인 경기에서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그걸 진행하는 과정과 그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적용된 기준들에 대한 재검토를 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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