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한국에서 애플이 나올 수 없는 이유

by Simon de Cyrene
한국 교육의 문제점

한국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없다. 애플도, 구글도, 아마존도 나올 수 없다. 이게 '객관적인' fact다.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의 교육체계에 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1) 주어진 교육과정에서 (2)한 공간에 앉아서 (3) 암기를 기본으로 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런 교육과정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아 물론 제2외국어를 뭐로 할지, 문과를 할지 아니면 이과를 할지에 대한 선택은 이뤄지지만 그 외의 영역에서 한국 학생들은 똑같은 과목에서 똑같은 내용으로 학습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뭔가 새로운 게 나올 수가 없다. 만약 학생들이 무슨 과목을 들을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성향, 취향, 관심사에 따라 교과목들을 선택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조합의 수업을 들으면서 각자의 개성이 개발될 수 있겠지만 현재 한국 교육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공간 역시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1년 동안은 같은 교실 안에서, 많이 바뀌어봤자 앞뒤 좌우로 자리가 바뀔 뿐 기본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학습이 이뤄진다. 많이 바뀌어봤자 운동장, 과학실험실, 독서실, 도서관 정도다. 그것도 시설이 아주, 매우, 좋은 일부 학교에만 해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들을 과목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교실을 옮겨가면서 수업을 들으면 학생들은 계속해서 다른 환경에서 수업을 듣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그 교실을 그 교과목스럽게(?) 꾸밀 수가 있고, 학생들은 그 수업을 들을 때 그 교과목의 특성에 상대적으로 더 잘 빠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몸을 움직이게 된다.' 창의력은 단순히 앉아 있는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한 교수님께서 '너 자료는 볼 만큼 봤어, 좀 걸으면서 생각해'라고 하신 것도 그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이 그걸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줄 세우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문화로 인해서 대부분 시험은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암기식 아니면 객관식 시험이 주로 이뤄진다. 그런데 그렇게 시험을 보게 되면 그 과정에서는 어떠한 '사고'의 과정도 이뤄지지 않는다. 단순 암기를 하는 것은 단기 메모리에 정보를 잠시 넣는 작업에 불과하고 그 지식은 어느 순간 증발하게 된다. 그런데 '서술형'으로 시험을 보게 되면, 학생들은 그런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창의성이 개발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서술형 시험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줄 세우기를 하지 않으면 부모들이 그에 대해 반발을 할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학벌주의가 다른 점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줄을 세워야 할까?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서열화되어있기 때문이다. 대학부터 직장까지, 우리나라에는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인생에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대학과 선호되는 직장에 어느 정도의 서열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Google만 하더라도 서울 오피스에는 SKY, 포항공대, KAIST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건 서울 오피스에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채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Google의 채용은 서울 오피스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다른 지역에 있는 Google 직원들이 면접관으로 화상면접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에서 어느 정도의 필터링은 이뤄진다. 그리고 Google 본사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우리가 이름을 들으면 아는 미국 대학 출신들이다. Google은 심지어 자리가 나면 내부 직원이 추천서를 쓸 수 있는 제도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채용되면 추천을 한 사람은 보너스를 받는다. 이런 제도는 한국의 기준에서는 결국 학벌주의, 인맥 주의로 평가받을 수 있는 제도다. 프랑스에도 특정 분야의 명문대학이 있고, 그 학교 출신 사람들이 특정 기업이나 심지어 정부 요직도 거의 독점에 가깝게 한다. 이는 다른 소위 말하는 '선진국'들 대부분에 있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애플, 구글과 같은 회사가 생기고 프랑스가 예술의 나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데는 그들이 그렇게 '학력'을 보는 기준이 '절대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학력은 채용을 하고 사람을 쓰는데 필터링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도구'이지 그들에게 학력과 서열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하면 특정한 학교 출신의 사람'을 채용하지만 만약 그걸 상쇄할 수 있는 다른 경력이나 성과가 있다면 그 내용을 근거로 채용을 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다. 그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학력'이 사람을 뽑는 기준이 되고, '이전에 재직했던 회사'가 스펙이 되어서 그 사람을 채용할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학벌'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눈을 돌리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 달릴 뿐이다. 명문대학, 대기업, 연봉. 이것 외에는 마치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잠깐. 뭔가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미국이나 프랑스의 채용과정은 조금 더 '서술식'에 가까운 반면 우리나라의 채용방식은 '객관식' 같은 느낌이 아닌가? 교육이 핵심이고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받은 교육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결국 우리 사회의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그게 그렇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빈부격차가 지금처럼 심하지도 않았고, 서울의 집값이 지금처럼 높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 시기에는 지금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새롭게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창의적이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시에 미국에서 혁신적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와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의 그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벌어져 갔고 이제 미국과 몇몇 주요 유럽 국가들에서 발휘되는 창의성은 우리나라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에 도달해 버렸다.


우리 사회의 보수성이 문제과 '객관식'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이 타고난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들인가? 그건 분명히 아니다. 한류를 보고, 우리나라가 만들어 내는 콘텐츠들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안에 그런 창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애플 같은 회사가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에서 창의성이 발휘되는 영역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악, 방송, 예술 등의 영역에서, 그것도 [돈이 될 수 있는] 영역에서만 창의성이 극단적으로 발휘된다. 그 외에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들은 모두 극단적으로 보수화되어 있다. [유교]로 포장되어 있는 실질적인 [군대문화]가 대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 튀지 말아야 하는 분위기가, 자신과 다름은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나라에서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가 우리나라에 뼛속 깊게 심어놓은 [군대문화]가 미치는 영향이 지금 이 시점에는 우리나라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데 방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방법이 가져온 공보다는 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다름과 틀림은 분명히 다른 의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다름은 틀림으로 간주된다. 이런 모습은 기성세대에서만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댓글을 달고 있는 게 40-50대는 아닐 것이다. 10대에서 20대가 가장 많을 것이고 과반은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30대와 일부 40대가 있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도 군대문화, 나는 옳고 나와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생각이 보인다. 그런 모습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애플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0-20대도 그런 방식으로 사고하는 경향성이 있는 상황에선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키보드 워리어가 어떻게 10-20대의 다수라고 전제하느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도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것'을 창의적으로 하려는 사람보다는 안정을 지향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며 전공과 무관하게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키보드 워리어가 아닌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정답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창의력은 다름을 존중하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것들 간의 조화를 이뤄내는 능력이다. 어떤 사람들은 '창의성'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창조지 창의가 아니다. (창의와 창조를 구분해야 하는 것은 창의는 기존의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것을 철저히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창조는 그것이 창의적일 수도 있지만 궤변이나 몽상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것에 정답이 제시되어 있다. 아니 제시되어 있다고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창의적인 사람이 인정받을 수도, 자리를 잡을 수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애플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조직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인 정부가 지원을 해서 창의성이 개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딱 하나뿐이다. 결국은 어느 조직에서든 리더십이 바뀌어야 하고, 그 리더십은 최소한 10년은 욕만 먹으면서 변화를 위해서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는 손가락질을 감당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그 리더십을 밀어주고 지지해 줄 더 높은 리더십과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스타트업'이라고 이름 붙인 기업들 중에서 그렇게 길게 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대부분 스타트업들은 장기적인 계획 없이 지금 당장 정부의 자금이나 투자자들의 돈을 따내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것은,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을 보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들이 길게, 전진하는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없단 것이다.


그래도 꽤나 괜찮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30대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게 기적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내가 30대라고 하는 것은, 내가 만나 본 20대 CEO들은 대부분 폐기가 넘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치지만 본인이 실패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서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모습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대 정도 되면, 적당히 실패도 했고 그로 인해 신중하면서도 나름의 창의성을 갖추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애플이나 구글 같은 회사가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너무나도 심각할 정도로 구조화, 계층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걸 바꿀 수 있는 것은 혁명적인 변화밖에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난 누구보다 지속가능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