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바꿀 것인가?
군복무, 국위선양, 국가주의
아시안게임 축구에 한국은 물론 유럽의 시선도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다. 특히 토트넘 팬들은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축구의 변방인 아시아에서 열리는 23세 미만 연령대의 경기, 그것도 월드컵이나 유럽리그보다 현저히 경기력이 떨어지는 경기들에 이렇게 관심이 쏠린 이유는 분명하다. 손흥민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또는 올림픽 메달을 따면 군면제가 되기 때문에.
그런데 손흥민 이전에 우리는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국위선양이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몇 보 양보해서 올림픽은 전 세계적인 이벤트이고 거기에서 메달을 따는 건 그렇다고 치자. 과연 아시안게임 메달은 그럴만한가? 지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있는 선수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나? 그게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 그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다.
사실 이렇듯 스포츠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통합의 수단으로 쓰는 것은 국가주의가 강하게 자리 잡아 있을 때나 유효한 전략이다. 국민들이, 사회 구성원들이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말이다. 과연 우리나라가 그러한가?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에 대한 답을 명확히 하기가 힘들다면 이 질문을 해보자.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에 질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국가주의적인 경향성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반대에 서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군복무와 평등의 문제
나는 개인이 국가를 위해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존중해 줄 수 있지만 국가가 그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단 것이다. 하지만 군복무는 국가가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기보단느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개인들에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과 의무는 평등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것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해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성과에 따라서 군 복무 등에 대해서도 면제시켜주는 것은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히는 남녀가 모두 국방의 의무는 져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는 반드시 군대에 가지 않더라도 국방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여성도 국방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며, 국가에 대한 의무를 남녀가 동등하게 지는 것이 진정한 남녀평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참으로 찌질한(?) 면이긴 한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남녀차별, 그것도 직장에서 승진 등에 있어서의 남녀차별은 상당한 부분이 남자들, 특히 나이 든 남자들은 무의식 중에, 아니 어떤 이들은 입 밖에 내지 못할 뿐 대놓고 '여자는 군대를 안 갔다 와서 안돼'라고 생각하는데서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건 굉장히 이상한 사고방식이지만, 엄연한 현실인 건 사실이다. 나이 든 남자들 뿐인가? 남자들 사이에서도 면제로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거나, 공익으로 군 복무를 마쳤거나, 조금 느슨한 후방에서 군 복무한 사람들은 은근히 무시하는 문화가 있지 않나? 그런 분위기가 남자들 사이에 있다면, 그 사고의 흐름이 남자들이 국방의 의무에서 완전히 면제되는 여성들을 대하는 방법에서도 무의식 중에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국방의 의무는 남녀가 동등하게 지는 게 맞으며, 그것이 우리 사회의 남녀평등의 첫걸음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평등의 원칙'은 돈이 많거나 적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음과 낮음과 무관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며, 따라서 스포츠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국내 리그에서 뛰든, 해외에서 뛰든지 똑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손흥민의 예를 들자면, 아주 솔직히 말해서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것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국위선양이 될까? 국내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자긍심을 심어주고, 해외 축구팬들에게는 손흥민과 한국이 연계되어서 인식될 수도 있지만 축구를 그렇게 보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몇이나 될까? 그리고 아주 솔직히 말하면 손흥민은 잘하지만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성적이 부진하면 손흥민이라는 개인이 부각될 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위한 국위선양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해결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고 군 복무에서 면제시키는 걸 그만하고 손흥민을 군대에 보내라!'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손흥민의 커리어도, 스포츠 선수 전반의 커리어도 우리는 개인의 직업과 자유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측면을 고려한다면, 개인의 직업군에 따라 군 복무를 30대 후반에서 40 정도까지는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는 단순히 손흥민과 같은 선수들을 위한 게 아니다. 나는 오히려 상무나 경찰청에 가지 못하는, 은퇴하고 나서 커리어가 애매한 스포츠 선수들을 위해서 스포츠 선수 등에게 군 복무를 연기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런 선수들은 프로선수로 뛸 때 바짝 돈을 벌지 않으면, 그 이후에 생계 자체를 이어가는데 곤란을 겪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으로 군 복무를 하겠다고 선택한다면 그걸 굳이 말릴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군 복무를 연장시켜준다면, 군대 안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다른 역할을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부대 간에 전국 축구대회를 개최하면서 프로선수 출신들을 각 부대 축구팀 감독과 코치로 의무 복무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예를 들면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있단 것이다).
손흥민에게 군면제가 되지 않으면 이민을 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손흥민이나 박지성 같은 사람들의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그들이 이민을 가는 건 그렇게 좋을 게 없다. 그들이 영국이나 독일 국적으로 살아간다면 은퇴 후에 '축구를 꽤나 잘했던 몇 명 중에 한 명'으로 남겠지만, 한국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고 평생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해서 열릴 텐데 그들이 왜 굳이 이민을 가겠나? 당장 빛을 보려고 시민권을 취득했다가 영영 한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하는 백차승 선수의 사례가 시민권을 선택하는 것의 후폭풍이 어떨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지 않나? 인생을 길게, 전략적으로 봤을 때 손흥민이나 박지성뿐 아니라 이강인의 경우에도 축구를 잘하는 국가에서 '잘 하는 여러 사람 중 한 명'으로 남았다가 그 안에서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보단, 한국인으로 남아서 한국인 사회에서 압도적인 엘리트로 인정받는 게 그들을 위해서도 더 좋은 그림이다. 축구선수로 살 수 있는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20년 정도 밖에 안되지만, 은퇴 후의 삶은 70까지 산다고 해도 30년이 될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군대의 문제는 군대의 문화가 아직도 70-8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데 있지, 군 복무 자체에 있지 않다. 세상에 이제야 일과시간 이후에 외출을 '시범적으로' 허락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그래서 군 복무의 핵심은 누군가를 군 복무를 시키느냐 마느냐에 있지 않다. '어떻게 하면 군 복무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라고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군 복무가 아니라 '국방의 의무'로 개념을 분명하게 확장시켜서 대체복무가 가능한 옵션을 많이 만들어주고,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모두 '평등하게'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시행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게 우리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자들이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군대를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정부에서 디자인이 필요한 부서에서 디자인 전공을 한 사람들이 의무복무를 하고, 국가 브랜딩 부서에 홍보와 커뮤니케이션 전공한 사람들이 의무복무를 하게 한다면 그건 개인이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서도 자신의 능력과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누가 총을 들고 군대에 가겠냐고 한다면, 그렇게 복무를 할 경우에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의무복무 기간을 길게 하도록 하고, 군대에서 복무하는 사람들에게만 특정한 혜택을 부여하면, 덜 구속되고 싶은 사람들은 국가기관보다 군 복무를 선택할 것이다. 군 복무를 하는 것만 국가를 위해서 국위선양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전문인력이 국가 디자인과 국가에 대한 마케팅을 구상할 수 있다면 그것도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 아닐까? 국방의 의무를 해결하는 방법을 다양화한다면 그건 개인의 인생을 망치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경력을 인정받고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취업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군대는 국가안보라는 점에서 보수적으로 접근되어야 하지만, 그건 '군대'에 국한되었을 때 해당하는 얘기지, '국방'과 국위선양에 대해서는 조금 더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미 군대에서 법무관으로 근무하는 변호자 자격증 소유자나 의무장교로 복무하는 의사들은 그 커리어를 인정받기도 하고, 그게 자신들의 커리어를 최소한 해치지는 않는 게 현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국방의 의무를 그렇게 커리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역을 다양한 배경과 전공을 가진 사람들에게 확대하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의무 복무 제도가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율이 많이 높아져서 소위 말하는 특기병이 이제 50% 정도 된다고 하지만, 그 50% 중에 본인의 진로와 연계해서 군복무를 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그래서 그에 대한 고민과 개발이 필요하단 것이다.).
문제는 군대 자체가 아니라 군대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게 되는 인식의 틀에 있다. 그걸 전환해 주면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