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
설득이 어려운 이유
'그 사람 설득해 와'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던 시기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의 생각을 움직여서 내 방향으로 돌려놓겠다는 생각에. 패기가 넘치고, 매사에 자신이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크고 작은 실패들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애초에 누군가를 설득해 오라는 말 자체가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꽤나 많다. 그리고 상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만큼 비생산적인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할 때도.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자신의 확고한 의견이 있으면 설득을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기 원하지만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만의 상식 선에서 세상을 보고, 그것을 기준으로 자신이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 또는 확신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한 경험과 상식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설득한다는 것
이렇듯 안 그래도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엄청나게 힘든 일임에 더해서 한국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이는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의견을 듣는 훈련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답이 정해져 있는 교육을 한다. 그래서 한국의 공교육 제도 하에서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무조건 정답이 제시되어 있기를 바란다. 인생에 대해서도, 내 선택에 대해서도 한국 사람들은 정답이거나 틀렸다는 결론을 내리기를 원한다. 그래서 실패할 경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보다 더 크게 좌절하고, 자신이 맞은 경우에는 유별나게 티를 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실 세상 대부분 일에는 정답이 없다. 이는 A라는 상황이 있으면 그걸 둘러싼 환경이 b일 때와 c일 때에 따라서 A는 ab로 풀어야 할 때도 있고 ac로 풀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예로 여성의 외모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정형화된, 살집이 없고 마른 편인 여성들을 미인으로 규격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당나라 시대에 절세 미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양귀비를 그린 당시의 그림들을 보면 그녀는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그래서 사실 여성의 외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은 케바케인 것이고, 무엇인가에 대해서 사람마다 평가가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을 양비론자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A가 맞을 수도 있고, B도 맞을 수도 있는 것인데 왜 굳이 그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을 양비론자로 취급해야 하는 것일까.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결국 객관식 시험을 보고, 모든 것에 대해서 정답이 있는 것처럼 교육하는 한국의 교육 현실의 영향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사실 인터넷에서 댓글을 다는 모습에서도 드러나는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 '이러한 면은 맞는 듯한데'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옳음을 주장하려고 댓글을 다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자신이 설득당하는 것이 경쟁에서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사실 누군가에게 설득당할 수 있는 사람은 존중받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는 존경받아야 한다. 이는 누군가에게 설득당하기 위해서는 '내가 틀릴 수도 있어'라는 것이 항상 전제되어 있어야 하고, 그러한 생각은 최소한의 겸손이 없이는 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만약 사회적으로 유명하거나, 자리를 확고하게 잡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지위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설득을 당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다.
그렇게 설득을 당할 수 있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남의 말을 듣는데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앉아서 그 사람과 말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말을 듣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의견의 요지와 근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게 '잘 듣기' 위해서는 최소한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수준 또는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러한 교육은 공교육 제도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토론 학원도 있고, 논술학원도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런 학원들은 사실 입시를 목표로 하지 개인들의 사고력을 길러주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학원 강사를 하는 아는 형이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봐서 그런 종류의 학원들에 가끔씩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토론하고, 상호 간에 설득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명하복과 자신의 주장만을 개진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전제해야 한다. 그게 우리 모두가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은 사회에는 다툼과 갈등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