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도 책임을
어려운 문제다
낙태를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다. 어려운 문제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성폭행 등을 당해서 아이가 생긴 경우에는 반드시 낙태를 허용해야 하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까지 낙태를 허용해야 할 지에 대해서 선을 긋는 건, 내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아주 솔직히 말하면 성인이 자의에 의해서 성관계를 가졌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낙태를 허용하는 기간이나 선에 대해서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간을 정해 놓고 '이때까지는 낙태가 합법이야'라고 해 놓는다고 해서 의사들이 그 기간을 지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진짜 문제다. 의사들 중에서 상당수 사람들은 무리가 가고, 낙태를 하는 것이 산모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경우에도 돈을 위해서 낙태 시술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낙태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게 그렇게 쉽거나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낙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면서 낙태하는 데 사용되는 약, 그리고 시술을 합법화시켜달라는 사람들은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자유를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논리를 확장시켜나가기 시작하면 사실 마약을 하는 것도 국가가 금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 마약은 그 사람을 망가뜨리고 주위에 마약을 계속 권하게 되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이지만 낙태는 그와 다르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낙태 역시 사실 마찬가지다. 낙태를 하용하고 그 기준이 크게 완화되면, 생명 존중에 대한 기준이 낮아질 수 있고, 무엇보다 사실 낙태를 하고 나면 여성에게 오는 신체적, 심리적 후유증이 어마어마하기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낙태가 허용되는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하지만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선을 긋기가 참 힘들다. 그에 대해서 내게 양비론자라든지, 아니면 비겁하다고 비판을 하면 그대로 받겠다. 그런데 임산부의 인권, 태아의 생명권, 낙태에 대한 허용기준을 대폭 완화해줌으로 인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회적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생각 이상으로 생각이 나아가지는 못하겠는 것이 사실이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후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주위에서도 보기 때문에. 그래도 결혼을 한 사람들은 나은 편에 속할 것이다. 낙태를 해야 했거나, 자신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어떤 마음일지에 대해서는 내가 아무 말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자도 책임지게 하라
다만 분명한 것은 난 낙태의 문제를 낙태 자체로 풀기보다 그에 대한 책임을 남성에게 지우는 방향으로 법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낙태에 대한 기준은 지금보다 조금 완화하되, 애초에 낙태할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게 아이가 생길 경우 남자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서 부과하고, 그것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하는 형태를 법률을 만들어야 한단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는 여자 혼자서 만들 수 없고, 여자가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낙태를 허용하는 것에 대한 반대의견이라면, 그 책임은 당연히 남자도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케이스들에서는 남자들이 성관계를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조치를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의 엄마가 아버지일 수 있는 것으로 지목하는 남자에 대해서는 유전자 검사에 응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거부하면 최소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며, 유전자 검사 결과 본인의 자녀인 것으로 밝혀진 경우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경제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부양할 의무를 부과하고, 합의 또는 법원에서 결정한 수준의 부양비를 제공하지 않으면 5년 이상의 징역과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여성이 악의적으로 허위로 지목한 것이라면? 그에 대해서는 그 여성을 무고죄와 유사한 구성요건을 가진 죄에 대한 내용을 법률에 포함시켜서 그 죄로 처벌하면 된다.
이에 대해서 '과하다'라는 비판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자가 무책임한 성관계를 갖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한 생명이 잉태될 수도 있는 행위를 여성과 했다면, 누구나 그 정도의 각오는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한 번의 실수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남자의 그 한 번의 실수로 그러면 상대인 여자는 인생이 다 망가져야 하겠나? 그리고 남자는 왜 아이가 생긴 것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어야 하나?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그런 남자들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그렇게 반박하는 것은 자신만 귀한 줄 알고 상대는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스페인의 경우, 혼인 여부와는 무관하게 남녀가 성관계를 갖고 아이가 생겼으면 남자는 그 아이에 대한 부양책임을 일정 부분 진다고 한다. 이는 내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중에 만난 한국 여자분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그분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중에 한국계 스페인 남자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그 남자와 결혼은 하지 않고 스페인에 정착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분은 산티아고 가는 길, 즉 까미노 자체가 좋아서 정착했다고 하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그 여자분과 거리가 먼 곳에 살고 있음에도 불과하고 여자분이 가끔 까미노의 일부 구간을 걷고 싶다고 하면 휴가를 내고 와서 아이를 봐주고, 그분은 며칠간 까미노를 걷는다고 하더라. 양육비도 일부는 남자 측에서 제공하고 말이다.
낙태의 문을 열어준다면...
낙태의 문을 열어주는 것에 대해서 흔쾌히 '선을 여기에 그으면 되잖아!!'라던지, '여성이 마음대로 하게 해줘!'라고 하지 못하겠는 또 다른 이유는 사실 나도 30대 중반의 남자지만, 나도 남자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낙태가 허용된다면, 남자들은 성관계 자체에 대해서 더 가볍게 생각하면서 아이가 생기면 '그냥 지워'라고 할 것이다. 낙태를 위해서 먹는 약이, 그리고 낙태 시술이 여성에게 어떤 신체적, 심리적 후유증을 가져올지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고 말이다. 낙태가 거의 허용되지 않다시피 하는 지금도 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 남자들이 엄청 많은데, 낙태가 허용된다고 하면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도구화시킬 남자들은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하지 않나?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법제도를 만들 때는 개인의 권리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제도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을 다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무엇인가를 허용했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그래야 하는건 아니다. 이는 사회적 분위기와 특성으로 인해서 같은 법제도도 A국가와 B국가에서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야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시는 분들이니 그럴 일이 덜하겠지만,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마지 못해 남자들의 요구에 응하기도 하는 여성들을 위해서도 낙태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일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분명한 건, 낙태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 아닌가?
그리고 출산율 얘기를 하면서 낙태를 허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죄송하지만 강아지도 하지 않을 소리다. 헛소리도 그런 헛소리가 어디 있나? 어떻게 개인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나? 그리고 원하지 않은, 계획하지 않은 아이가 아버지 없이, 때로는 어머니도 없이 태어남으로 인해 직면해야 할 수도 있는 수많은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해 망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게 국가를 위해서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할 자유보다, 여성들이 성관계를 거부할 권리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며 남녀 불문,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하면 낙태를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범위는 지금보다 확대 및 확장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와 함께 낙태한 여성들이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낙태를 한 이후에 여러 가지 심리적 후유증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분명한 건 정말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고, 이런 문제와 아기에 대해서는 남자도 같이 책임을 질 수 있는 법제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