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

책임의 기준

by Simon de Cyrene

정직원으로 대기업에서 2년 일하고 난 이후에는 오랜만에 조직 안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갓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홍보대행사에서 재하청을 받아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할 때는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열심히, 많이 일하는데 돈은 제일 적게 받으니까. 부당한 것들도 참아가면서 내가 만들어 내는데 공은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2년간 정규직으로 일할 때 내 상급자였던 선배를 놓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 선배는 내가 한 일을 실장님께 보고하면서 내가 한 일을 본인과 내가 한 것으로 말해줬으니까.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 선배만큼 후배를 팔아주는(?) 사람도 드물다는 것을 나는 안다. 후배들이 한 걸 다 본인이 한 것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오랜만에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입장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영리단체가 아니고 자원봉사자가 없으며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월급을 받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관리자 역할을 맡은 상황에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왜 기본급을 이 친구들보다 많이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대행사에서 업무를 하다 보니 주니어인 친구들이 사실은 가장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건 기본이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가끔 뭔가 먹을 걸 사주거나 일정 시간까지 옆에 있어주는 것, 나한테 뭔가 요구하는 걸 처리해주는 것 정도다. 누가 봐도, 이 친구들의 노동강도는 나보다 세다. 그렇다면 이들이 나보다 연봉을 많이 받아야 할까? 그렇다면 직급의 의미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다. 그리고 내가 과거에 가졌던 불만들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직급에는 책임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하는, 직급이 높은 사람들은 그만큼 그들이 책임질게 많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로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며, 그 연봉은 그 사람이 져야 할 책임에 상응하는 만큼 높아져야 한다. 기업이 클수록 그 연봉이 높아지는 것은 큰 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넓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월급을 받는 조직에서 책임을 지고, 관리를 해야 하는 입장에 있어보니 결정 하나를 내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그것들이 불러올 후폭풍을 계산하는 것은 꽤나 무거운 짐이다.


그래서 직급이 높은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연봉은 그 책임에 비례해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사람들은 직급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조직에 속한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는 자인 것 또한 그 때문이다. 사실 어제 위의 글을 쓰는 도중에 비슷한 일이 터졌는데, 내가 조인하기 직전에 생기기 시작한 문제가 어제 갑자기 크게 터져버렸다.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했고, 살짝 리스크를 감수하고 하얀 거짓말을 했으며, 그 거짓말이 탄로가 나서 내가 잘못하고 실수한 것으로 사건을 돌렸다. 그걸 각오하고 한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있었지만, 그렇다면 나랑 같이 일하는 친구는 윗사람이 전혀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느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가 팀을 관리하는 게 힘들어졌을 것이다. 상대 입장에서 또한 내가 '책임지지 않는 팀장'이 됐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 친구에겐 굳이 잡아놓고 혼내기보다 오늘 스윽하고 해야 할 일들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라며 대형 포스트잇을 줬다. 이미 본인이 잘못한 걸 아는 사람을 잡아놓고 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런데 이런 문제가 다시 발생하면 안되니까...


직급이 올라가는 것은 그래서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외부 관계자들과의 관계도 유지해야 하지만, 팀원들의 사기와 업무환경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물론 증가하는 연봉은 좋지만, 어느 조직에서 돈을 괜히 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그래서 너무 디테일한 것들을 다 본인 마음대로 하려는 상사도 그렇게 좋은 상사는 아니다. 어느 정도는 구성원들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방향성을 잡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상사고 직급이 높은 사람이 할 일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무게는 꽤나 많이 무겁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직급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그 책임의 무게를 실감해야 한다. 그 무게를 실감하는 것이 정상이고, 그 사람들은 그래서 돈을 더 받는 것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욕하는 직장상사도 돌아보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자신만 살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은 왜 꼭 거기에 더해서 부하직원들의 공까지 가로채려고 하는지... 사실 그들이 잘한 것으로 인정받으면 그게 곧 본인이 관리를 잘했다는 차원에서 인정받는 길인데... 기본만 하면,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발생할 이유는 없다. 기본도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