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선샤인을 보며 하는 생각
미스터 선샤인에 대한 물음표
제목은 편법이다. 미스터 선샤인을 보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쓰고 싶었는데 우연히 기사에서 미스터 선샤인을 '미션'이라고 쓰는 것을 봤다. 사실 그때는 굳이 줄여야 하나 싶었는데, 그에 대한 생각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말을 줄이는 게 유용할 수도 있겠다는, 내로남불적인 생각이 들었다.
사실 드라마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그에 구속되기 때문에. 다만 한두 박자 정도 늦게, 정말 좋은 드라마라는 평이 있으면 3-4부 정도에서부터 볼 때가 있다. 아 물론 지인이 PD로 연출하는 작품들은 예의상 챙겨보는 편이기도 하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PD들이 얼마나 고된지를 알기에, 지인으로써 응원해 주기 위해서.
미스터 선샤인도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 동생이 넷플릭스에서 보기 시작했는데 잘 만들어졌다고 하길래. 사실 초반에는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했으나, 중간에 살짝 늘어지는 부분도 있었고, 김은숙 작가의 작품을 오랜만에 보는 입장에서 살짝 실망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몰랐던, 이병헌의 출연료가 과도한 게 아니냐는 논란을 접하게 되면서 왜 이렇게 진행을 했을지에 대해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그런데 막판에 와보니,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병헌을 썼던 것도, 중간에 늘어졌던 것도, 넷플릭스를 활용(?) 한 것도. 우선 PD인 학부 선배에게 방송국들은 보통 드라마를 만들면 길게 끌고 가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세트장도 촬영해야 하고, 고정비용이 반드시 발생하다 보니 방송국 입장에서는 길게 끌고 가야 금전적으로 손해를 최소화 혹은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 선샤인이 24부작으로 만들어진 배경에는 그 영향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세트, 의상 등에 돈이 많이 들어간 건 신마다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니까. 그래서 중간에 조금은 늘어지더라도 길게 끌고 간 게 이해가 됐다.
그렇다면 왜 이병헌이어야 했을까? 그런 논의까지 이뤄졌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건 아마 드라마가 방영됨과 동시에 넷플릭스에 업로드가 되어야 하는 것을 고려한 조치였을 것이다. 감독과 작가는 아마 그 배역에는 이병헌 외에 다른 배우는 거의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넷플릭스에서 얼굴이 올라갔을 때 그 배역을 소화할 수 있으면서 외국인들이 알아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배우가 이병헌이기 때문이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선을 표현해내야 하는 최유진 역할에 아시아를 넘어선 지역에서도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배우. 이병헌은 그런 요건을 충족시키는 거의 유일한 배우가 아닐까? 그래서 몸값과 무관하게, 그 배역에는 이병헌이 처음부터 고려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왜 넷플릭스일까에 대한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사실 지난주 에피소드부터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업로드되는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어떻게 점령해 들어갔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 곳곳에 수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욱일승천기가 펄럭이는, 일본의 대한제국의 점령 과정을 실시간으로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으로 보여주는 건 사실 어떠한 외교전략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국가 간에 아무리 외교전을 벌이면 뭐하겠나?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일본의 만행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런데 미스터 선샤인은, 이번 주에는 본격적으로 일본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대한제국의 보통 사람들까지 짓밟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욱일승천기가 펄럭이는 장면을 계속 쏟아내면서 말이다. 조금은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으면서까지 이병헌을 거의 10년 만에 TV 속으로 끌어들여야 했던 배경에는, 그런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드라마 PD들이 드라마 하나를 만들 때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회의를 하는 지를 개인적으로 알기에. 넷플릭스에까지 올리는 데는 그러한 고려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스터 선샤인이 식민사관을 정당화하는 드라마라면서 항의하는 글을 쓴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생각이 조금은 다르다. 미스터 선샤인은 넷플릭스에 업로드된다는 점을 감안해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인을 돕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일본인이 모두 극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국이 일본의 편에 서서 물러나는 것을 그리면서도 모든 미국인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보여주지 않나? 물론 중후반까지 드라마가 스토리를 끌어가는 과정에서 마치 '일본이 대한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을 의도하는 것처럼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장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주와 이번 주 편에서 일본이 대한제국에 어떤 식으로 들어오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의 행각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글들 중에서는 신미양요는 다루면서 강화도조약 등은 다루지 않았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드라마는 역사책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여줄 수가 없고, 그걸 다 보여주기 시작하면 스토리가 늘어지고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미스터 선샤인은 일본인들의 극악함은 그러한 일본인 캐릭터들로 충분히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올라가는 드라마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초반부터 일본의 행적을 극악하게 그렸다면, 이 드라마는 일본의 극우단체들의 항의를 받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며, 초중반까지 그런 장면들을 그려낸 것은 그걸 우회하는 방법이었을 뿐 아니라, 국가로서 일본의 극악무도함을 막판에 집중시킨 것은, 미스터 선샤인을 둘러싼 환경을 고려했을 때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조선이 미개하게 그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우선 그건 돋보기를 어디에 두고 보는지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미스터 선샤인은 일본의 도자기 문화가 조선에서 전달된 것임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고, 조선의 전통과 기개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굉장히 많이 그려내지 않았나? 그리고 사실 1900년 전후에 일본이 아닌 서양인들이 작성한 문서에서도 조선은 환경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그려지며, 안창호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면 미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집을 더럽게 써서 집주인들이 조선인에게 렌트를 해주지 않으려고 해서 안창호 선생이 뒤처리를 다 한 사례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교회들에서 교리적으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 것의 시초가 선교사들이 조선에 와보니 술에 찌들어서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의 삶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대한제국 후기에 조선사회가 어떤 모습이었는 지를 잘 보여준다. 모든 조선인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아마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봤을 때도 미개해 보이는 모습들은 조선의 일반인들의 모습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상처받은 땅, 한반도
어제, 오늘 미스터 선샤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최근에 전태일 평전, 형제복지원 사건 등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땅에서 발생한 아픔들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가 얕았는지를 깨달았는데, 미스터 선샤인을 보면서 그 당시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며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말까지, 약 100년의 세월 동안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아픔들이 발생했는 지를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어렸을 때 역사를 왜 배우는지 이해를 못했던 시절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미래에 비슷한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땅에 현재 존재하는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과거 없이 생긴 현재는 없기에, 우리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반드시 알고 이해해야 한단 것이다.
대한제국에서부터 대한민국까지. 1890년대에서부터 공식적으로 1987년까지 한반도에서 피비린내가 나지 않은 시기가 없었다. 이는 이 땅에서 친일파의 후손이면서 군부독재 시절 수혜를 받은 집안의 사람이 아니라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가족에서 부당하게 죽임을 다하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갔고, 그에 따른 후유증은 사실 지금도 우리나라를 휘어 감고 있다. 겉으로 보수와 진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아집과 기존의 기득권을 섬긴 사람들의 욕심이 우리나라에서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나? 게다가 과거를 청산해야 했던 시기에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기를 반복함으로 인해 이 땅에 아픔, 상처와 한이 여전히 관계 속에서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나?
미스터 선샤인을 보면서 그 아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아픔이 스토리화 되어서 넷플릭스라는 통로를 통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나치의 문양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것처럼, 미스터 선샤인이 욱일승천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주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이 땅에 여전히 내려앉아있는 아픔이 조금은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이병헌을 포함한 배우.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연봉과 몸값에 대한 생각은 별도의 포스팅으로 정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