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광고가 지배하는 세상에 산다
범생이가 에이전시에서 일하다
공부만 하다가, 예전에 한동안 했던 업계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경험하고 있다. 디지털 마케팅. 이쪽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반면 수요는 늘어나고 있어서 취업난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 바닥에서 실무를 뛸 수 있는 주니어들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게 많다 (물로 이 업계도 경쟁이 엄청나서 시작단계에서 몸값은 엄청 낮다). 그리고 자신이 실력을 갖추고 적절한 client 혹은 광고주 풀을 갖추면 얼마든지 사람만으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해 볼 수 있고 프리랜서로 일할 기회들도 있다. 내가 대기업에 있을 때 같이 일하던 에이전시 소속 형님들은 모두 프리랜서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일상에서 자유를 찾고 있다. 사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는 기업은 삼성 정도밖에 없던 시점에 회사에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었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무엇을 할지를 놓고 고민할 때 옵션 중 하나가 내 회사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하는 회사를 차리는 것이었다. 학부시절부터 계속 소위 말하는 '그 바닥'에 있었으니까.
꽤나 오랜만에 이 업계에, 훨씬 다이내믹한 버전으로 다시 발을 담고 있고, 소위 말하는 브랜드 또는 기업 쪽이 아니라 에이전시에 있다 보니 세상이 굉장히 다르게 보인다. 회사 안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회사 내부에서 어떤 커뮤니케이션의 필요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회사의 브랜드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놓고 고민을 했다면 에이전시에서는 어떻게 성과를 내느냐가 주요 화두가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client에 대한 배려 혹은 고려도 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모두 성과, 비용, 광고에 대한 것이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그에 대한 얘기를, 특히 돈에 대한 얘기를 시니어부터 주니어까지 거침없이 한다. 자본주의의 극단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상아탑 속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에 전념한 시간이 짧지 않았던 내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고 낯선 환경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에이전시에 발을 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곳은 완전히 야생이어서 모든 것이 거칠고 치열하다.
우리는 광고판 속에서 산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데 그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사실은 모두 광고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 있다. 한국에서 마케팅을 하는 데 있어서 금전적인 한계가 없다면 가장 쉽게 쓰이는 것은 인지도가 높고, 그 모델을 쓰는 게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사람을 광고에 쓰는 것이다. 누가 생각해도 그렇다. 그런데 이 바닥에서는 그래서 그 영향력의 수준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돈으로 가치가 매겨진다. 누구는 비싸다. 누구는 가성비가 좋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누구 몸값은 얼마라는 식의 얘기가 거의 항상 바닥에 돌아다니듯이 얘기가 되는데 역시 연예인 걱정은 할게 아니라는 확신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액수들이 오가더라.
그런 시선으로 TV를 보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광고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즐겨보던 인생 술집, 라디오스타 등도 사실은 영화 홍보, 신곡 홍보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된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 프로그램들 뿐인가? 사실 다른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자신들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띄우기 위해서 그 사람을 예능에 쓰고, 그걸 통해서 그 프로그램을 알린다. 광고비가 들지 않는 광고이며, 예능은 그렇게 광고 아닌 광고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그들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어떤가? 그 안에는 또 PPL들이 철저하게 구석구석 잘 심겨 있다. 드라마도 사실은 광고판이 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서 광고가 아닌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에이전시에 있어보니 사람들은 네트워크 채널이라고 생각하는 facebook이나 instagram들은 굉장히 고도화된 광고 플랫폼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게임들도 마찬가지 그 안에서는 어마어마한 광고비가 집행되고 있고, 콘텐츠들도 사람들의 반응을 통계로 수집하면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도 계속된다. 국적, 연령, 성별, 관심사 등을 기초로 말이다. 그리고 좋게 말하면 마케팅 콘텐츠, 비판적으로 말하면 교묘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광고도 집요하게 트렌드와 흐름을 파고 들어서 사람들을 그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기울어진다. 이뿐 아니라 그 안에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광고를 집행하기 위한 player들이 엄청난 규모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판에 있지 않으면 뭐가 뭔지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구도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너무 비판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더라.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같은 제품군의 A라는 회사의 협찬이 들어왔는데 한 배우고 그 경쟁사인 B의 제품의 모델이면 그 제품을 만지거나 사용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가 없어서 장면의 구성까지 바뀐다고 하니 콘텐츠 안에 광고가 들어온 건지, 아니면 광고를 위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드라마는 시청률이 나오기 위해서는 유명하고 팬덤이 두터운 사람을 캐스팅해야 하고, 그 캐스팅을 하기 위해서는 캐릭터들이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결국 드라마의 스토리도 스토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광고와 직결되는 시청률을 잡기 위해서 캐스팅, 캐릭터, 스토리가 짜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드라마를 보는 것은 정말 정교하게 짜이고 시간이 많이 투자된 광고를 보는 것일까 아니면 문화생활을 하는 것일까?
광고... 쉽지 않은 문제인건 알지만...
물론 PPL이 아예 공식적으로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허용된 이후에 차라리 방송을 제작하기가 편해졌다고 하더라. 이제는 PPL이 아닌 제품은 무조건 상표를 가리면 되니까. 애매하게 처리하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무료로 사용하는 앱이나 서비스들은 사실 광고가 아니면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마련할 수가 없다. 그래서 광고 자체를 해서는 안된다거나 그 자체가 부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상황을 조금 더 콘텐츠 중심, 그리고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안다. 참으로 나이브한 생각이라는 것을. 사업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돈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참으로 이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는 것 또한 사업을 하는 것의 사회적 의미라고도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광고를 어떻게 잘 해서 물건을 잘 팔지를 고민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의 작은 부분만이라도 어떻게 하면 광고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이 바닥에 들어와 보니 온 세상이 광고판으로 가득 차 있고, 나는 광고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숨이 막힐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