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남의 집 프로젝트'를 보며

by Simon de Cyrene
한반도에서 이웃의 관계

나는 아버지 직장을 따라 해외에서 살던 시절 외에는 주로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같은 동에 옆집, 그리고 위아래 층에 이웃들과 교류도 많았고 명절 때는 서로를 챙기면서 지냈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서울 인심이 박하다고 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에서도 가장 삭막해 보이는 아파트 안에서도 그런 문화가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정'이라는 것은 그런 이웃 문화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한국에서, 아니 한반도에서는 과거에 힘든 시절에 서로 이웃끼리 돕고 살 수밖에 없을 때, 옆 집 수저가 몇 개 있는지가 파악될 정도로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만 생존이 가능할 때 생존을 위해서 이웃들 간에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아마도 전쟁이 자주 일어났던 한반도에서는 수년 혹은 수십 년 정도 기간에 거쳐서 일어난 현상이기보다는 거의 대부분 세월 동안 그런 문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시면 옆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잠자는 식으로 피만 섞이지 않았지 실제로는 한 가족 같이 사는 문화가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지금은 왜 그런 문화가 없어졌을까? 사람들은 그게 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지 모르나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그렇게 이웃끼리 친밀하던 문화는 아마 나라 전체가 서로 돕고 사는 형태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끼리 형성되었을 것이며 그 시대에는 아마 국가 안에 그런 집단들이 작은 단위로 많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그 집단들은 폐쇄적이었을 것이며 그 집단들 간에는 오히려 경계심이 높은 수준으로 존재하면서 심할 경우에는 서로 큰 다툼이 발생하기도 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조선 시대 이전에는 중앙집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반도에서는 그런 문화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정 많고 좋았던 시절'에도 한 국가에서도 사실 그러한 적대적인 관계들이 집단들 별로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흔히 말하는 부족들이 그런 집단의 단위였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적대적인 문화는 단순히 현대사회, 비인간화, 개인주의로 설명될 수 없고, 그렇게 사회에 깔려 있었던 문화가 극단적으로 구현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와 남의 집 프로젝트

그렇게 한 사회에 존재했던 이웃끼리 한 가족 같이 지내는 문화와 서로 경계하고 적개심을 갖는 문화 중에 후자가 더 공고해진 것은 경쟁, 발전, 순위를 강조하는 사회문화의 영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인식이 강화됨으로써 우리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고, 거기다가 신문에는 나오지 않을, 인터넷이 없었다면 몰랐을 흉흉한 소식들이 인터넷을 타고 널리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경계를 세우지 않고 신뢰하는 단위가 작아졌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해가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갑갑했다. 예전에 있던 '이웃사촌'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많이 희석된 것 같아서 말이다. 그와 함께 사회에 존재하는 인간성도 희석되어가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꽤나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는데, 작년 초에 이제 12년 지기가 된 친구가 '남의 집 프로젝트'라는 것을 시작했다. 남의 집에 가서 특정 주제로 취향을 공유하거나, 남의 집 거실에 가서 몇 시간 동안 머물며 쉬는 형태로 지금은 자리를 잡았지만 남의 집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지금의 형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옆에서 어떤 고민을 하면서, 어떻게 남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너무 잘 아는 입장에서는 그런 프로젝트를 시작한 친구가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예전에 초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남의 집에 가서 놀던 문화가 우리 사회 한 구석에서라도 시작되는 것이 좋았고, 그걸 내 친구가 시작한다는 것이 고마웠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걸 누군가가 나서서 프로젝트로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러던 이 친구가 여러 가지 고민을 오랜 기간 동안 하다가 사업으로 남의 집 프로젝트를 키우겠다는 말을 듣고 사실 거룩하게 '사회적 의미' 같은 것을 따지기 이전에 친구로서 걱정이 됐다. 이유는 분명하다. 남의 집 프로젝트가 그 의미는 좋지만 확장성이 부족하고, 아무래도 낯선 이들을 집으로 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의 리스크도 크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오롯이 친구에게 넘겨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물론, 이 친구도 그 리스크를 모르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남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지인들 모임에서는 그 리스크들에 대한 우려가 반복해서 나오고는 했고, 그로 인해서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맨몸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고, 매주 수요일마다 설명회를 한다길래 마침 회의가 그 근처에서 끝나서 저녁을 먹고 설렁설렁 걸어가서 설명회를 어떻게 하는지 듣기 위해 찾아갔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왔고, 설명회가 꽤나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설명회 이후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더라. 조금 일찍 도착해서 설명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정리하는 과정까지, 혼자서 그 일을 꾸려나가는 친구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설명회에서 나온 질문들은 생각보다 날카로웠지만, 또 그 질문들은 지인들 모임에서 처음부터 제기되던 질문들이기도 했다.


남의 집 프로젝트, 어디로 갈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친구의 새로운 시작이 잘됐으면 좋겠다. 단순히 내 친구가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남의 집 프로젝트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석에서 공동체를, 사람들의 관계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웃을 알고, 거리가 멀어도 취향으로 이웃이 될 수 있는 인간성이 회복된다면, 갈등과 분열이라는 키워드로 가득 찬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사람 냄새나는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있기 때문에 나는 친구를 응원하고, 그래서 설명회가 끝나고 개인적인 생각 몇 가지를 친구에게 말해줬고 남의 집 프로젝트 사무실부터 대학로까지 걸어가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사실 설명회를 보면서 조금 마음이 아팠다. 어학연수를 때려치우고 세계일주를 떠나고, 그 여행기로 여행서적으로 꽤나 많이 팔린 책을 썼던, 그리고 남들이 다 아는 좋은 회사를 다녔던 친구가 설명회에서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본인의 히스토리를 다 설명하는데 친구의 입장에서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너무 멀쩡하고, 좋은 사람인 이 친구가 본인을 이렇게 구차하게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집을 남에게 열기 위해서는 그 프로젝트를 주최하는, 모임을 중계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내 친구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


아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나는 내 친구를 믿는다. 계산적이지 않고, 이해타산을 따지면서 뭔가를 하는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12년의 세월 동안 지켜봐 왔기에. 사실 이 친구가 다녔던 대기업보다 서 있는 남의 집 프로젝트라는 곳이 그에게 더 어울리는 옷이라는 생각도 들고, 언론에 기사가 몇 번 나면서 강연에 초대되어 다니기도 하지만 난 이 친구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단 혼자서 시작해 보겠다는 그 마음도 너무나 고마웠다. 아무래도 자본이 투입되면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자본의 입김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 프로젝트가 변질될 수 있을 것이기에 친구가 일단은 혼자 끌고 나가기로 했다는 결정이 그래서 고마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입장에서는 맨몸으로 세상에 뛰어든 친구가 계속 눈에, 그리고 마음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


남의 집 프로젝트가 잘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친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남의 집 프로젝트가 잘 자리를 잡아서 유사한 프로젝트들과 서비스들도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런 흐름이, 무브먼트가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갈 테니까. 사실 그런 유사한 서비스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내 친구의 진심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그 진심은 사람들에게 통할 것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을 잘 이겨내면서 지금까지 걸어왔기에, 문지기라고 불리는 내 친구가 이 역시도 잘 해내리라고 믿는다. 빚진 마음이고, 고마운 마음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참석자를 선택하게 호스트에게 모든 권한을 주고 신청기한을 제한하는 원칙 때문에 친구인 나도 지원을 해서 받아들여진 경우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기심이 가는 남의 집 프로젝트가 열리면 기꺼이 신청을 할 것이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깝지도 않지만 또 같이 어울렸던 경험 덕에 낯설지도 않은 관계를 형성하는 2번의 경험이 내 기억 속에 꽤나 괜찮게 남아있기에.


이 글은 광고나 협찬 없이 개인적으로 쓴 글이지만 (광고나 협찬 받고 글을 쓴 적도 없지만... 그 정도 급(?)이 안되어서...), 관심 있으신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남의집 인스타그램 계정(링크) , 남의집 홈페이지(링크) 주소를 남깁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