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빛과 그림자에 대하여
한류의 그림자
전 세계 한류 동호회 회원수가 올해 1월에 이미 7천4백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류 동호회는 아시아 지역에 409개, 아메리카에는 626개, 유럽에는 44개, 아프리카와 중동에는 115개가 있다고 하니 한류는 껍데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인 게 분명한 듯하다. 실제로 한국 가수와 드라마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른 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탁월한 면이 많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빛에 환호하고, 우리나라의 문화상품들이 그렇게 주목을 받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과연 한류에는 빛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 그림자는 전혀 없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니다. 한류 이면에는 거대한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 그림자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문화상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드라마부터 시작해 보자.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방식으로 제작이 된다. 밤샘 촬영은 물론이고, 드라마 막판에 가면 드라마 촬영과 편집이 거의 실시간 중계하듯이 이뤄진다. 그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지만 그런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봐가면서 드라마의 방향을 바꿔야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 광고가 들어오면서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에서 유명해지고 시청률이 높아야 외국으로 판매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과정에서는 배우, 감독 및 촬영 스텝들에 대한 엄청난 희생 또는 노동착취가 일어난다. 배우들이야 사실 그렇게 노동을 하고 나서 받는 보상이 어마어마하지만, 그 외 다른 스텝들은 모두 회사원 또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그렇게 착취를 당하고 나서 그 작품이 해외로 판매된 것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은 받지를 못하며 그 이익은 대부분 회사들에게 그대로 귀속된다. 이는 예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가수들을 보자. 가수들의 경우 K-POP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서 주목받는 건 대부분 아이돌들인데, 한국 아이돌들만큼 노래와 춤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가수들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한국 아이돌들은 실력이 뛰어나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까지 엄청난 실력을 갖추기까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춤과 노래를 잘할 수 있게 기술을 익히고 트레이닝만 받는 시간들이 있으며, 사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춤과 노래에만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돌 지망생들은 빛을 본 이들보다 훨씬 적다. 그나마 빛을 본 아이돌들 중에서도 서른이 넘어서까지 노래하고 춤을 추거나, 프로듀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한 그룹에 많아도 한두 명에 불과하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트레이닝을 시키면서 투자를 한 회사는 그들이 조금 이름이 알려지면 그들에 대한 배려 없이 투자금을 뽑아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무리한 스케줄을 운영한다. 그 인기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돌 세계의 그림자에 대하여
이처럼 한류문화의 두 개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방송과 가수 중에 나는 가수, 또는 아이돌의 측면에 더 집중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나마 방송 쪽에서 실질적으로 노동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실력을 갖추면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까지 일할 기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돌들은 다르다. 그들은 유명해지고 화려한 조명을 받아도 그 빛이 10년은커녕 5년 동안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그리고 정말 장수 아이돌들이 5년에서 10년 사이를 버텨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그룹 멤버들은 대부분 낙오하게 되어있고,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심리적 박탈감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나보다 좋은 대학에만 가거나 엄청 좋은 직장에만 가도 우리는 엄청난 박탈감을 느끼지 않나? 그런데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그 스포트라이트를 같이 받던 바로 옆에 서 있었던 친구만 계속 그 안에 서 있고 난 어느 순간부터 방에서 나올 일도 없을 정도로 일정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 박탈감은 얼마나 클까?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박탈감이 그들을 휘어잡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분명히 '그래도 그렇게 성공했을 때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냐?'라던지 '다른 사람들은 그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번도 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일리가 있는 비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연예계라는 화려한 바닥에는 빈부격차가 엄청 심하고, 그 영역에서 돈을 잘 벌고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0.1%의 수준의 삶을 산다는데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위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어있는데, 바로 옆에서 같이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게 되면 그 박탈감은 더 클 수밖에 없고, 그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무리가 가는 소비를 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아이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끊임없는 기싸움과 경쟁을 통해서 만들어지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지는 과정에서의 박탈감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더 강한 척, 자신은 괜찮은 척하기 위해서 소비를 늘려가다 보면 어느새 그렇게 벌었던 돈도 다 써버리는 것은 보통 사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안에서 인기가 언젠가는 꺼질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투자하고 돈을 모으면서 인기 등에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단한 것이지, 그러지 못한 이들이 이상한게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아이돌이 많아지면서 본인의 인기가 떨어진 이후에, 혹은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 전직 아이돌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데 있다. 그들은 대부분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경우가 많고, 다른 세계에는 발이나 고개를 들여본 적도 없다. 그나마 연습생일 때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 본 이들은 인기가 떨어진 이후에도 자신이 그때 일했던 경험으로 뭔가 생계를 해결해 나갈 방안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대로 경제적으로 바닥을 칠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영역 외에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연예계를 떠났다가 어떻게든지 다시 그 바닥(?)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방송계에서 노동착취를 당하는 스텝들의 처우개선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방송으로 나온 수익이 배우와 기업에만 집중되지 않고 그 스텝들에게도 잘 분배되는 것은 시스템적으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그나마 그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아이돌들의 경우 누구도 아이돌들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데뷔를 하지 못했던 이들이나 인기가 시들어진 이후 아이돌이었던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최근에 내 또래이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이돌이었던 사람이 운영하는 술집에 간 적이 있는데, 누가 봐도 그 가게의 위치, 그 가게에서 판매하는 주류 등은 그 동네에서 장사가 제대로 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과연 그 사람이 단순히 장사 수완이 없었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실에는 발을 딛지 못할 정도로 화려한 연예계라는 틀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데 엄청나게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가와 기업의 폭력이 낳은 씨앗
정부는 한류를 관광상품화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류를 국가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춤과 노래 트레이닝을 시키면서 투자를 엄청나게 하기 때문에 그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애초에 아이들을 그렇게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사실은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기 위함이기보다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이다. 모든 기획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목적을 가진 기획사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에게 아이돌 그룹에서 개인은 안중에도 없다. 국가적인 성공과 기업의 이윤이 있을 뿐.
그래서 나는 아이돌 그룹과 그 멤버들이 국가와 기업에 의해서 이용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사실 아이돌 그룹들 중에서 탁월한 음악성을 가지고 공연을 기획, 연출하고 자신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기획사가 없었어도 성공했을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결국 아이돌 그룹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런 한두 명을 발굴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그 사람들 외에 나머지 멤버들은 많은 경우에 그 성공을 끌어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 보인단 것이다. 어떤 이들은 소녀시대, 신화, HOT, 젝스키스 등을 예로 들면서 그들이 과연 그렇게 '전락'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그룹들의 특성은 그들이 데뷔할 때는 그들과 같은 특성을 띄는 그룹이 지금처럼 엄청나게 넘쳐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화려하게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그 희소성 때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형태로 활동할 수 있었지만 사실 이제는 누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아이돌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고, 다들 너무 화려하고 실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특출 난 사람들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멤버 전원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장기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이 나올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
요즘 나오는 아이돌의 멤버가 될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무엇을 해도 정말 잘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업계의 경쟁은 엄청나기에. 그래서 그들이 춤과 노래에만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했을 경험들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길러졌다면 그들은 무엇을 해도 최소한 본인의 생계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춤과 노래만 해온 사람들은 인기를 얻지 못하거나 인기가 식고 나면 본인의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는 이들도 굉장히 많이 발생할 것이고, 그들은 음지로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사람도 많지 않기에.
새로운 방향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류가 조금 덜 화려해지더라도 기획사들이 연습생을 훈련시키는 방법들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좋겠다. 데뷔하지 못하더라도, 데뷔해서 많은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아니 인기를 얻었다 하락세로 돌아서다라도 음악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잘 살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아이돌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 등에 대한 비판이 종종 일어나는데 사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그들 잘못이 아니다. 다른 것은 보지 못하고 경주마처럼 춤과 노래만 시킨 기획사들의 잘못이고 그들은 그런 시스템의 희생양일 뿐이다.
한류는 지금 어느 때보다 높은 곳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 전성기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지난 5-6년 동안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했던 이들 중 30대 중반을 지나서 40대에 정말 힘들게 살아가거나 망가진 삶을 사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 이야기들이 알려져도 지금처럼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되기 위해서 뛰어들고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들이 지금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생태계가 그대로 유지될까?
90년대만 해도 J-POP이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 그리고 홍콩 영화들이 오락영화로써 굉장히 많은 주목을 받았던 시절들이 있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어느 영역보다 빨리 움직이고 변한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끌리고, 과거보다 더 자극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류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체질을 개선해서 지속적으로 양질의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보면 1970년-80년대에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불렸던 시절에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보는 느낌을 받는다. 기초는 다져지지 않은 상태로 노동집약적으로 사람을 쥐어짜서 이뤄낸 경제성장 과정을 말이다. 물론 그 덕분에 우리가 그나마 이만큼 사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 피해받고 상처받은 이들도 굉장히 많을 뿐 아니라 그 상처들이 우리 사회에 수많은 갈등과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그 안에 있는 '사람'에 시선을 줘야 한다. 가장 잘 나갈 때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업계는 과거의 홍콩영화들의, K-POP은 J-POP의 길을 그대로 걸어갈지도 모른다. 한국이 IMF를 맞이해야만 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