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그대에게
직장을 옮기는 것
Client와 1대 1로 미팅을 끝내고 대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담당자가 갑자기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본인은 조금 더 다이내믹한 일을 하고 싶고, 그래서 에이전시 쪽으로 가고 싶은데 뭐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말이다. 일단 당혹스러웠다. 사실 이제는 내 나이도 있는 편이다 보니 학교를 같이 다닌 후배들도 대부분 30대 초반 이상이고,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은 것도 너무 오랜만이기도 했고, 내가 지금 이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걸 상대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기업 입사 1년 차. 그런 고민이 들 수 있는 시기였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보통 홀수 해마다 위기가 온다고 하지 않나? 1, 3, 5, 7년 차 때 말이다. 나도 대기업 1년 차 때 했던 고민들이 있었다.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 안에 들어와서 보는 회사생활은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특히 내가 다녔던 회사는 주니어들에게도 큰 역할을 부여할 수 있을 것처럼 홍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실망감은 굉장히 컸다. 외부에서 보는 이미지와 내부에서 느끼는 그 괴리감은 겪어 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고, 지인들에게도 차마 그에 대한 얘기는 하지 못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실제로도 다른 회사들보다 기업문화나 분위기가 훨씬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보상적인 측면에서도.
어떻게 옮길 것인가?
그 인식과 현실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신입사원이라면 누구나 그로 인해 힘들어한다. 그런데 과연 직장을 옮기면 그게 달라질까? 아니다. A회사에서 a라는 점이 힘들었다면 B회사에서는 b로 인해 힘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난 후배들에게 가능하면 업계 1등 기업에 가라고 조언을 했는데, 그건 당장의 대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업계 1등을 하는 기업에서 일을 하면 '더 좋은 회사'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조언은 사실 나도 친한 형한테 들었던 것이었다. 업계 1등 기업을 다녀보니 분명한 게 있었다. 완벽한 회사는, 직장은 없다는 것. 내가 만약 업계 2등, 3등 기업을 다녔다면 난 '이게 우리 회사가 1등이 아니어서 이럴 거야'라면서 어떻게든 업계 1등 기업으로 이직을 하기 위한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압도적인 업계 1등 기업에 있었다 보니 그런 환상은 가질 일이 없었다.
내가 내 것을 찾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 덕이었다. 결국 회사가 갖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에. 그런데 그건 나의 선택이고, 나의 길이었을 뿐, 사실 회사를 다니는 것이 갖는 장점은 굉장히 많다. 누군가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뭔가 다른 것을 해보겠다고 하면 난 보통 일단 회사를 그만두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만약 본인이 정말 지금 회사에 있기가 싫다면 퇴근 후나 주말에 이직 등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이런 조언을 하면 돌아오는 피드백은 '회사를 다니면서 현실적으로 다른 것을 준비할 수가 없다'인 경우가 많다. 맞다. 사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피곤해서, 사람들은 보통 퇴근하고 나면 뻗거나 놀 것을 찾아다닌다. 그래야 그나마 버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본인이 지금 있는 곳이 싫고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면, 그 절실함이 그 피곤함을 이겨낸다. 나도 그랬고, 내 동생도 그랬다.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정말 절실해지니 연애도, 여행도, 취미도 모두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더라. 그리고 부모님께서 항상 너무 느긋해서 문제라던 동생은 이직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로 휴가를 모두 면접용으로만 쓰더라. 동생이 그렇게 독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정도로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본인이 그 직장에 있는 것이 사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직업이나 힘든 면이 있다
취미도 직업이 되면 힘들다. 인간은 누구나 늘어짐의 본능이 있고, 취미로 하는 것과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은 분명히 다르기에. 그리고 취미를 할 때는 나의 즐거움만이 그 일과 관련되어 있지만, 그것이 생계를 위한 일이 되는 순간 내가 먹고 사는게 달려 있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완벽한 직장도, 완벽한 직업도 없다. 노동을 해야 하는 이상, 인간은 모두 어느 정도의 힘듬은 감당해야만 한다. 그래서 당신이 있는 곳에 있는 것의 51%가 행복하고 49%가 힘들다면, 사실 그 회사는 다닐만한 회사 인지도 모른다. 이직을 준비하거나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싶다면, 그렇게 움직인 이후에 내 삶이 어떨지에 대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공백기를 둔 상태로 이직이나 다른 것을 준비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계는 일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한다면, 시작하려는 일의 '시장 상황'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나 같은 경우 회사를 그만두고 할 일들을 다방면으로 고려하던 중에 '커피랑 와인에 관심이 많으니까 그쪽을 알아볼까'라면서 시장 상황을 알아봤는데, 그때 이미 시장 상황은 내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뛰어들 정도의 매력은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를 옮기거나 다른 일을 준비하기 위한 일을 공백기로 두고 하려면, 최소 반년 이상, 가능하면 몇 년 이상은 본인이 버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급한 마음에 서두르게 되어 있고, 서두르다 보면 길게 보지 못해서 실수를 하게 되어 있기에.
다만 본인이 사업을 할 예정이거나, 매일 새벽까지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해야만 해서 물리적으로 시간 자체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조금 다를 수 있다. 사업을 할 예정이라면 하던 일을 하면서 기초만 깔아놓고, 시장을 파악하고 나서 빨리 시작하는 게 맞다. 본인이 프리랜서 등으로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다면 더군다나 그렇다. 다만 그렇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일을 해서 현실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지, 내가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에 대한 평가를 주위에서 냉정하게 받고, 스스로에게도 냉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서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회사 다니는 것보다 노동강도가 강해질 수 있다는 점과 스트레스는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이는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가 된다는 것은 언제 일이 어떻게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들어오는 일은 다 해야 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항상 품고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인간이 원하는 것은 돈을 옆에 쌓아두고 눕고 싶을 때 눕고, 여행 가고 싶을 때 여행 가는 삶이 아닐까 싶다가도 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막상 보면 그들은 자신의 일을 치열하게 하고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걸 보면 정말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내 것을 찾아가는 길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노동은 해야 하는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의 삶의 의미가 찾아지다고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완벽한 직업도, 직장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난 29에 회사를 그만둘 때 내 인생에서 진로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고, 3년 정도 후에는 내가 평생 갈 길이 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일이 그렇게 풀리지는 않았다. 회사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냐고 물어본다면, 수도 없이 후회했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내 성질머리상 언젠가는 그만뒀을 것이란 것을 알기에.
그렇게 돌고 돌아서 이제는 내가 뭘 하면서 먹고 사는게 가장 좋을지에 대해서 겨우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다.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나? 친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내가 행복한 것이라고 하고, 나도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그걸 찾기 위해서 난 꽤나 먼 길을 돌아와야 했고, 자신이 좋아하면서 생계도 해결되는 일을 찾고 싶다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험한 길을 가는 것을 각오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만약 지금 다니는 직장을, 혹은 직업을 바꾸거나 포기하는 것을 고려중이라면, 잠시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은 보통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기준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를 돌이켜 보면 나오게 되어 있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내리는 결정에는 나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기에.
그런 고민을 지금 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갈 걸음의 방향을 잘 잡을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건 분명 시간과 에너지를 써 볼 만한 일이다. 그 결정이 야기할 수 있는 나비효과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