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공동선언' 비준을 보며
이번 정부의 대북정책에 동의하지만...
나는 지난 대통령의 탄핵이 확정되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던 사람이고, 이번 정부의 대북정책기조에는 기본적으로는 동의하는 사람이다. 어떤 이들은 GP까지 철수하는 건 북한에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라고 하지만, 남북 GP를 모두 철수하는 것이고, 이번 정부 이후에도 최소한 군사적 긴장감은 줄이기 위해서 이런 조치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DMZ 내 지역은 유엔사 관할이기 때문에 북한도 그 이후에 임의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면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번 조치가 국가안보에까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미 2사단만 철수 및 후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를 결정한 과정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법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대통령이 있는 정부에서 법이론은 무시하고, 규범과 가치를 무시하고 임의적으로 취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청와대가 무리를 한 이유는 이해가 간다. 남북관계는 진전시켜야 하겠고, 북한의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신뢰를 줄 필요가 있으며, 지금의 분위기를 다음 정부에도 거스를 수 없는 정도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게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것만큼이나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고, 법이론은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다. 청와대는 남북한특수관계론을 언급하면서 북한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과 체결한 것은 조약이 아니라서 국회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것은 청와대에 남북한특수관계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던지, 아니면 비판이 일자 그걸 어떻게든 막으려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이다. 통일을 법학 영역에서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남북한특수관계론이란
남북한특수관계론이란 북한이 대한민국 헌법체제 안에서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독일이 동서독의 특수관계를 주장하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것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북한은 영토조항인 헌법 제3조의 영역에서 북한은 반국가단체로써의 법적 지위를 갖지만 평화통일 조항인 헌법 제4조의 영역에서 북한은 통일을 함께 이뤄가야 할 동반저로써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를 국내법과 국제법의 영역으로 구분해서 설명을 하자면 북한은 국내법의 영역에서는 위와 같은 이중적인 지위를 갖지만 국제법 영역에서는 UN에 가입을 하는 등 행위주체로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제사회에서 행위주체로서의 법적 지위는 인정해주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법률체계는 그 내용을 보면 실질적으로 남북한특수관계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특수관계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동서독의 경우에는 상호 간에 체결되는 협정 또는 조약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서독의 경우에는 1972년에 동독과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그 이후에 다양한 분야의 협정 또는 조약을 체결했는데 서독은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고, 특수관계임을 인정하면서도 양자 간에 체결된 협정 또는 조약은 국제법상 조약으로써의 법적 성격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그 규범성을 인정했다. 이는 동서독이 상호 간에 그 조약의 내용에 구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남북합의서의 법적 성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1992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서만 나온 바 있는데, 당시 대법원은 남북합의서는 신사협정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한 근거로는 북한이 반국가단체로써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도 제시되지만, 남북합의서가 조약 체결절차에 따라 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가 제시된다. 이에 따라 그 이후에 남북 간에 체결된 4대 경협합의서는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쳤는데, 그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아니지만 하급심에서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쳤어도 남북합의서는 신사협정으로써의 법적 지위를 갖는다는 판단 하에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후자의 판결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고, 나 역시 그 비판에 이론적으로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판결의 내용이 이해는 된다. 이는 만약 남북합의서의 규범성을 인정하게 되면 북한이 그 내용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준수해야 할 책임이 지어진다고 해석하게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조약이 파기 또는 무효화되었다고 주장하는 해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규범성이 인정되지 않는 그 재판부가 신사협정으로 타협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아주 솔직히 말하면 현행 법률의 내용만 보면 청와대가 위법한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이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항에서 기술적, 절차적 사항만을 정하는 남북합의서는 남북회담대표 또는 대북특별사절의 서명만으로 발효시킬 수 있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에서는 제3항에서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과 비준에 대해서는 국회가 동의권을 가진다는 이유로 군사합의서를 이행하는데 재정이 필요한 지를 따지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군사합의서와 평양공동선언의 내용을 보면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재정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그 합의들이 제3항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평양선언이 판문점 선언의 이행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부속합의서'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사실 야당에서 제기하는 위헌주장에도 사실 난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남북관계를 국내법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청와대가 국회의 동의를 받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 사항을 담아 국회 비준을 받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는 대통령 역시 국회 비준을 받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지금까지 정부들이 국회 동의를 받은 남북합의서들을 13개에 불과할 정도로 남북합의서들은 대부분 국회 동의를 받지 않고 비준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청와대의 이번 결정은 사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남북한관계를 생각하고 국내법 영역에서 규범성을 인정받고 법적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청와대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다음 정부의 경향성에 따라 이번 합의를 또 백지화 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버렸다. 그리고 평양공동선언을 근거로 이뤄지는 조치들에 소송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법원은 평양공동선언은 신사협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규범력이 없다는 전제하에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정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위한 것일까?
물론 청와대는 야당들 중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정당들이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들이 목표로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기존 정부들이 했던 방식으로 남북합의서를 비준했을 것이다. 정치적인 판단이고 좋게 평가하자면 뚝심이 있는 것이지만, 나쁘게 보자면 이번 정부의 성과를 기록에 남기기 위한 조치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절대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치체제가 아니다. 협의를 하고, 협상을 해서 사회구성원들 간의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안에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켜내면서 기다리고, 그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런데 정부의 이번 결정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보다 정부의 정책판단의 실행에 더 무게를 둔 조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결정은 사실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렇게 비판했던 제왕적 대통령제가 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하며, 이번 정부는 결국 스스로를 그렇게 권위적이었던 이전 두 정부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래서 실망스럽다. 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본인들의 정책적 지향성이 있어도 사회적 가치, 헌법적 가치를 최우선을 지키면서 힘든 과정을 버텨내면서도 정책적 지향성을 밀고 나가는 정부를 기대했다. 힘들지만 그 목적을 달성해내는 것이 결국 정부의 능력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선택은 그런 어려운 길이 아니라, 현행 법제도 안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쉬운 길을 선택했다. 현행 법제도 하에서 그게 위법하거나 틀린 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이상적인 길과는 다른 길임은 분명하다. 그러한 가치를 뒤로 한 단계 미루는 것이 어렵지 그 이후 두, 세 단계 미루는 것은 그보다 쉽다. 이번 정부도 결국 이전 정부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