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같은 곳에 가는 것의 의미

by Simon de Cyrene
10년째 다니는 미용실

지난 토요일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 집에서 명동까지 1시간. 머리 자르는데 30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동선이고, 시간낭비로 여겨질 수 있다. 30분 동안 머리를 자르러 2시간을 길 위에 쓰는 것이니 말이다. 왜 굳이 그렇게 가냐고? 그 미용실은 내 단골이기 때문이다. 무려 10년째 계속해서 가고 있는. 원장님과 부원장님이 부부이신 그 미용실을 다니는 동안 두 분의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공무원 9급 시험에 합격했다. 10년 정도 다니다 보니 그게 그렇게 되더라.


사실 나도 어지간하면 평일에 퇴근길에 가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최근에는 도저히 평일에 시간이 안되어서 부득이하게 한 선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단골인 그곳을 고집하는 이유는 내가 그 미용실에 있는 시간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한 곳을 가다 보면 그곳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이 있고, 그분들과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어서 난 그곳을 찾는다. 그러한 편안함은 물론 '이렇게 잘라주세요'라고 하지 않아도 계절에 따라서 내 머리 길이를 알아서 다르게 잘라 주시는 데서도 오지만 10년 동안 알아온 관계라는 점도 그러한 편안함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이제 거의 10년째 내 머리를 해주시는 부원장님은 이젠 '살이 붙었네'라던가, '왜 아예 장발을 하고 오시지 그러셨어'라는 식의 말씀을 거침없이 하시는데, 내게 그런 말을 거침없이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편으로는 '서비스업이라는 것이 참 피곤한 거구나, 이렇게 사람들에게 맞춰주시고 사람들을 파악해야 하다니...'싶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금전적으로 힘들 때 내 상황을 알고 그 기간 동안 같은 비용을 받으시는 걸 보면 그분들이 나를 업무적으로만 대하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8년째 다니는 가정의학과

비단 미용실만 그런 것이 아니다. 환절기에, 그리고 몸이 너무 피곤하면 편도가 부어서 몸살을 앓는 편인데, 난 그럴 때면 아직도 집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대학원에 다닐 때 다녔던 병원을 찾아간다. 무려 8년째. 이는 물론 그 의사 선생님께서 다른 병원과 달리 정말로 제대로 진료를 봐주시기 때문인 영향이 가장 크다. 일단 들어가서 상담을 시작하면 10분은 기본적으로 앉혀놓고 편도, 갑상선 등을 만지고 목, 코를 들여다보시면서 의학적으로 왜 그런 건지를 구글을 돌려가면서까지 설명해주시니까. 요즘 세상에 그런 의사 선생님을 찾긴 정말 힘들지 않나?


그런 면도 있지만, 그 병원을 계속 찾는 것은 '내 몸을 아는 사람'에 대한 신뢰의 영향도 굉장히 크다. 아무래도 처음 가는 병원에서는 이 분들이 내 몸을 알고 처방을 해주시는 건지, 아니면 나를 돈벌이 대상으로 생각하시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보니 몸이 정말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난 계속 내가 다니던 병원을 가게 되더라. 실제로 몸이 너무 안 좋았을 때 집 근처 병원에 갔다가 약을 먹었는데도 상태가 전혀 호전되지 않은 적도 많고 말이다. 그 편안함이, 익숙함이 나는 좋다. 내가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점이 말이다.


단골이 된다는 것

그런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단골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사거나 서비스를 받는 것을 넘어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곳에 단골이 되고 나면, 사람들은 그 가게를 단순히 그 가게가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편안함, 안정감, 신뢰 때문에 그곳을 찾는단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단골이 되는 곳들의 공통점은 그분들이 돈벌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를 생각해준다는 느낌을 준다는데 있다. 그 고마움에, 나는 내가 10년째 다니는 미용실에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맛있는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들고 간 적도 있었다.


물론 그분들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분들에게 난 분명 그곳의 수입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대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가면 얼마나 자주 가고, 또 한 번 갈 때 돈을 써봤자 얼마나 쓰겠나? 사실 그래서 그분들은 나를 그렇게 특별하게 대우할 필요가 없고, 그분들은 아마 나를 대하듯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기도 할 것이다.


그분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난 별로 관심이 없다. 그곳에 갔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과 그 경험이 중요할 뿐. 그렇다. 단골이 된다는 것은 그 과정에, 그 순간에 관계를 형성하고 관계를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함께 그 가게는 단골이 생긴단 것은 자신의 가게를 지속적으로 찾는 고객층을 형성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게 우선순위인 게 느껴지는 가게는 절대로 8년, 10년 정도의 단골이 되지 않는다. 사실 기능적인 것, 물건의 품질에는 비슷한 비용을 지출하는 선에서 큰 차이가 없다.


결국 핵심은 관계고, 사람이며, 그 가게를 방문한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고 돌아가는 데 있다. 내가 일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결정을 하면서까지 단골가게들을 찾아다니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다만 이런 습관의 부작용이 있다면, 그 단골가게가 문을 닫았거나 단골가게가 엄청나게 바뀌었을 때 오는 타격은 엄청나다는 것. 이제는 내가 갈 수 없게 된, 혹은 굳이 가지 않게 된 내가 좋아했던 인사동의 전통 찻집, 내가 정말 좋아했던 신촌의 오래된 커피가게들은 지금 떠올려도 아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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