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맞이하는
송년회,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나이'와 '연도'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사실 '연도'라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순환주기에 따라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고 나이란 것은 그 순환주기를 기준으로 설정한 개인이 살아온 시기의 길이에 불과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연도'와 '나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준이긴 하지만 그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진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사실 난 '송년회'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연말이라는 이유로 몇 주전에 봤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서 먹고 마시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회사를 다닐 때는 매일 봤던 사람들과, 내일도 볼 사람들과 송년회를 갖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인간이 아무리 의미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런 모임들의 송년회는 아무 의미도 없어보였다. 어르신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거나 회사의 예산을 쓰기 위한 목적 외에는.
7년만에 참서하는 송년회들
그런 송년회를 6년 정도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항상 연초에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논문심사를 받아야 했기에.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한창 송년회를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는 시기에 나는 혼자 방에 박혀서 책과,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앉아 있어야 했다. 자취할 때 한강대교, 여의도와 남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집 뒤에 있는 동산에 올라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특히 연말연시에는 나 홀로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올해에는 무려 7년 만에 송년회 자리들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너무 다행히도 논문이 12월 초에 통과해서, 7년 만에. 엄청 피곤하긴 하지만, 송년회란 송년회는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그리고 7년 만에 송년회들을 참석하면서야 비로소 나는 송년회에 대해서 그렇게 시니컬하고 부정적이었던 생각들을 바꿔나가고 있다.
그 자리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하더라. 그 자리에서 나는 짧아도 2년, 길면 10년 가까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을 만나면서 인간에게는 소수의 깊은 관계도 중요하지만, 얇고 넓은 관계도 의미가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너무 오랫만에 만난,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는 엄청 큰 부분이었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내가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그 시절의 좋은 추억들을 떠올리게 해주더라. 그리고 현재 내 삶의 일부인 사람들이 모르는 나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묘하게도 수용받는 느낌도 들더라.
모든 송년회에서 사람들과 공통적으로 나누게 되는 말이 있었다. '앞으로 좀 자주 보자'는 것. 하지만 난 안다. 우린 모두 한창 바쁠 나이고,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가정에 충실해야 하기에 자주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란 것을 말이다. 이제 난 그걸 모를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 하지만 그 때 했던 말은, 그 말이 나오게 된 동기는 순수했다. 그 사람들을 자주 만나서, 그 자리에서 느꼈던 행복감과 수용감을 누리고 싶었다.
송년회의 의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송년회는 어쩌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람들을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만나기 위한 자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말이다. '연도'가 시간을 구분하고 측정하기 위한 기준으로써의 의미를 갖는다면, 송년회는 그 기준으로 한 싸이클이 다 돌기 전에 한 번은 얼굴을 볼 수 있는 자리로써의 의미를 갖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자리는 분명 의미가 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현시점에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수용감이나 안정보다는 경쟁에 많이 노출되지 않나? 그리고 그런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팍팍한 우리 삶에 숨통을 터주지 않나? 송년회는, 그런 숨을 쉬는 통로로써의 의미를 갖는 건 아닐까? 인생은 '결국에는' 혼자 사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사람은 필요하지 않나?
과거에 내가 속했던 집단이나 모임의 송년회가 그런 의미를 갖는다면, 나의 '현재'에 해당하는 모임이나 집단에서의 송년회는 올 한해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자리로써 의미를 가질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지난 한 해라는 '과거'를 '격려'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는 미래에 대한 얘기도, 성과에 대한 부분도 논의되어서는 안된다. 미래에 대한 얘기는 신년회에서 하면 되고, 성과는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성과평가에서 이뤄져야 한다. 송년회는 짧게 나마 현재 속에서도 사람들이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서로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자리였다.
그런 송년회가 아니라면, 송년회는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해서는 안된다고도. 행복하자고 사는 것인데, 행복하기에도 짧은 시간인데, 그리고 나 자신 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도 소중한데 왜 굳이 고통스러운 송년회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 시간에 혼자 집에서 맥주 한 캔에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게 더 큰 행복을 준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게 해주는게 맞지 않을까?
ps. 올 한해도 이제 일주일이 조금 더 남았네요. 저와 일하는 외국의 counterpart들은 모두 다음 주부터 공식적인 휴무에 돌입하더군요. 그러다보니 같이 일하는 동료와 '아직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기는 멀었다'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네요. 올 한해,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완벽한 한 해를 보낸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힘든 한 해를 보내셨다면 남은 얼마 간이라도 즐겁게 보내시길 기도할께요.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