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어디에서 온 것일까?

by Simon de Cyrene
남녀평등

남혐. 여혐.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많이 쓰이는 표현들이고, 최근에는 래퍼 산이의 랩 때문에 이 내용이 아주 많이 부각됐다. 개인적으로 산이가 유튜브에 올린 음악들의 가사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시선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그의 가사에 100% 다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성별로 인한 부당한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물론 80-90년대와 비교를 한다면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니 솔직히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는 여전히 남녀차별이 상당한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들이 남자 배우들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했던 점, 비슷한 경력을 가진 영국의 BBC 여자 앵커와 남자 앵커의 연봉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 나는 것으로 밝혀진 점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평등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이슈임은 분명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칭 페미니스트들'에 모두 공감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산이 노래의 시선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 '공감'과 '동의'는 못하지만 이해는 한다는 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유의미한 숫자의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여성 우월주의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운동]이지, 여성 우월주의 운동이 아니다. 따라서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 모두 반대하고 남녀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의 대상은 여성을 상품화하고 차별하는 남성들은 물론이고 스스로를 성적으로 상품화하는 여성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남녀평등을 위해서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함께 동등한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난 아직까지는 잘 찾아보지 못했다. 난 페미니스트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스트들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결론을 내리진 못하겠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만큼이나 남자의 입장에서 부끄러운 사람들은 그 반대 편에 서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남자들이다. 이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실질적인 여성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아주 작게라도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그 반대에 서 있는 남자들의 주장은 근거도 논리도 없다. 그들은 대부분이 그냥 그런 입장을 취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 중에서 그나마 설득력이 조금 있는 것은 '과거에 비해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좋아졌다'라는 것이지만, 사실 그것도 상대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뿐 절대적인 기준에 비춰보면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아직 갈 길이 매우, 매우 멀다. 터져 나오고 있지 않을 뿐 회사들의 술자리에서 높은 분 양 옆에 젊은 여자를 앉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기혼여성은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며, 아이라도 있으면 여성들은 기피대상이 된다. 많은 여성들은 그러한 시선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 그리고 의사와 무관하게 가정주부로 눌러앉을 것을 강요받는다. 그런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방송, 광고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여성의 외모와 신체를 상업적으로 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가사와 아이를 보는 건 여자가 할 일'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과 남성주의적인 시선들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남녀평등은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었다.


왜 '혐오'인가?

그런데 이 문제는 사회운동이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을 할 성격의 것이지 감정적으로 대응할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혐오 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혐오'라는 표현이 남용되고 있다. 왜 모든 것에 부정적인 감정들 중에서도 극단적인 표현인 '혐오'라는 표현을 이렇게 붙이는 것일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함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페미니즘이 얼마나 필요한 지에 대한 말도 꺼내기가 힘든 상태가 된 듯하다. 즉, 그런 감정적인 대응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듯하단 것이다.


사실 이 주제로 글을 쓰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사회현상을 관찰하고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우리나라의 과도한 경쟁, 즉 '경쟁사회'적인 성향이 이러한 극단주의를 야기하고 있는 듯하단 것이다. 경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은 오히려 개인은 물론 사회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 모두를 위해서 경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쟁의 문제점은 모든 초점이 결론에만 맞춰져 있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것은 결과 지향적이고 사람들은 그 과정에 대해서 잘 신경 쓰지 않는다. 최근에는 조금씩 다른 경향성이 보이고는 있지만 이는 올림픽에서도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 열심히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달을 따지 못했거나 부상으로 인해 성적이 저조해지면 비난을 퍼붓고는 했다. 올림픽 뿐인가?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것도, 성수대교가 붕괴된 것도, 국정농단이 일어난 것도 우리나라의 그러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든 비극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에 일어나는 '혐오'와 관련된 사안들을 보면, 그 역시도 경쟁구도에서 발생하는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성과 남성.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사실 현실에서 많은 문제들은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구분될 필요가 없고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집단, 자신의 편에 있지 않은 자들은 무조건 적으로 돌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짓밟고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승리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도 사람들은 그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이 정의한 승리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모든 사회적 문제를 본인의 프레임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들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면을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많이 갈라져 있나... 전라도와 경상도, 그런 지역적 구분을 기초로 한 정당들, 남자와 여자, 나이 든 어른과 젊은 사람들 간의 세대 간에도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혐오'가 존재한다. 그 혐오의 이면에는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 그리고 난 틀린 당신을 짓밟고 승리하겠다'는 식의 마음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존재하는 것을 나는 발견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래서는 안된다. 이는 다름에서 오는 갈등과 사회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정으로 무엇인가를 대한다고 해서 또 본인이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본인은 그게 승리라고 착각하더라도 그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을 텐데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혐오'라는 말을 쉽게 쓰는 것일까?


그건 또 어쩌면 우리나라 교육체계가 토론이 아니라 결과 중심적으로 암기를 통해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항상 세상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도록 강요받고, 그 정답이 맞는 정도에 따라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교육체계 하에서 자란 사람들이 어떻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기를 바라겠나? 그렇다면 '혐오'라는 말을 남용하는 그 사람들은 사실 일정부분에 있어서 이 사회의 가해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교육체계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그 줄 세우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처, 인간성의 훼손이 그들이 세상을 그렇게 보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니...


분명한 것은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 명확한 승패가 있지도 않으며 때로는 둘 모두가 승자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모두 패자가 되기도 한다. 서로 사랑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감정은 배제한 상태로 최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서 해결책을 고민하고 그것을 실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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