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다

by Simon de Cyrene
독감과의 사투

독감에 걸렸다. 말로만 듣던, 몇 년 전에 난리가 났을 때 들었던 '타미플루'라는 약을 이제야(?) 처방받아 봤다. 처음부터 내가 독감에 걸렸단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다. 사람을 자주 만나지도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던 내가 오랜만에 12월에 일주일에 2-3번은 술자리를 갖고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다니면서 연중행사로 피곤하면 앓는 인후염을 또 앓는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8년 정도 계속 다녔던 병원 원장님께서 독감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면 난 기꺼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말에도 운영하는, 내게 '돈에 눈이 먼 병원'으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으면서 365일 오전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운영하는 병원에서 독감 검사를 해보라고 하자, 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어디에서 돈 벌려고 수작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그때 '안전하게 검사하고 가자'라고 마음먹었더라면 조금이라도 덜 아팠을 듯해서 사람을 믿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런데 그렇게 처음 처방받은 약에 진통제가 있다 보니 난 마치 몸이 낫는 듯한 착각하고 월요일에 일을 하고, 사람이 많은 곳을 누볐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날 저녁에 내가 계속 악몽을 꾸면서 잠을 깨는 게 아닌가? 온몸에 열은 펄펄 나고 말이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고, 그렇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던 나는 8시 45분에 집에서 나서서 그 병원을 다시 찾았다. 1월 1일에도 문을 여는 그 병원을 말이다. 난 거의 곧바로 A형 독감 판정을 받았고, 회사에 연락하고 이번 주에 약속이 있던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이번 주엔 집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상황임을 그들에게 알렸다. 독감약을 먹는 동안은 외출을 자제하라고 지침을 받았으니까...


1월 1일과 오늘, 난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자고, 깨고, 먹고, 자기만을 반복했다. 식은땀이 흘러서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어야 했고, 내 목소리는 다 가라앉았으며, 온몸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더라. 열이 좀 내렸다 싶어서 이불 밖으로 나오면 또 왜 몸은 그렇게 부르르 떨리는지... 타미플루를 이틀 치 먹은 지금은 그나마 정신 차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는 있게 되었다.


나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낮에 잠들었다 잠시 깨어났을 때... 독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람 많은 곳을 다닌 이틀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렸다. 내가 거칠게 기침할 때 앞에 있던 사람들, 무심코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 그들 중 누구라도 만약 연말연시에 지친 상태여서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는 상태라면 나로 인해 독감이 걸렸을 수 있고, 그리고 인해 지금 내가 집에 스스로 격리되어 있듯이 격리되어 있거나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독감 검사를 받았다면 나도 덜 아팠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덜 아팠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단 생각에 그렇게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많은 것들이 그렇다. 우리는 자신의 결정들이 주위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지만, 우리 개인을 위한 결정들이 때로는 최소한 몇 명, 많으면 몇십에서 몇 백명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성공'만을 얘기하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은 의사결정 하나로 최소 수 백에서 많으면 수 천, 수 만 명의 삶을 좌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성공'하는 것이 목표라면 우리는 그렇게 성공해서 내리는 의사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항상 염두에 둬야만 한다.


어떤 이들은 '겨우 독감 한 번 걸려서, 겨우 몇 명 더 걸렸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는 걸 갖고 뭘 그러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에게라도 어떻게든 영향을 주는 것은 그 사람 한 명에게만큼은 세상 전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것을 무시하던 습관이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큰 것을 무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것에서부터 예민한 습관을 기르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진통제의 무서움

그런데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분명 처음 처방받은 약을 먹고 몸이 나아졌었는데, 그래서 독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지낸 것인데 그건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게 궁금했고, 독감을 진단받은 후 의사 선생님께 물어봤다. 난 분명 상태가 나아졌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독감이면 낫지 않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의사 선생님의 대답은 빠르고 정확했다. '진통제가 들어있었으니까 괜찮게 느껴졌을 거예요.'


만약 진통제가 없었다면, 내가 독감으로 인해 내 장기와 몸이 느끼는 고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조금이라도 일찍 독감 검사를 받지 않았을까? 사실 그런 면에서 진통제는 당장 내 몸이 치료되고 있는 시점에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이면서도, 내가 통증을 느껴야 조심하는 부분들을 간과할 수 있게 만든다는 차원에서는 생각보다 무섭고 조심해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디 질병뿐인가? 우리는 어쩌면 지금도 인간성을, 사랑을, 온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진통제에 취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 명예, 권력, 성공과 같은 단어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상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또 한 편으로는 우리가 인간이라면 느끼고 알아야 할 감정들에 무뎌지게 만드는 진통제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도, 안면 몰수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출몰하는 것도 어쩌면 그들이 그러한 진통제를 과도하게 복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의 인간됨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지 못할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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