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다닐 것인가?
회사에서 자아실현?
첫 사회생활을 회사에서, 대기업에서 했다. 지금도 그 회사의 고객일 정도로 난 그 회사의 경영방식과 그 회사가 제고하는 서비스의 품질에는 의심을 갖지 않는다. 누군가 그 회사와 경쟁사를 비교하면 여전히 그 회사 편을 들고, 지금은 다른 회사를 다니는 그 회사 입사동기들도 모이면 '한국에서는 그래도 그만한 회사가 없다'는데 동의할 정도니 사실 할 말은 거의 다 한 것 아닐까? 입사동기 누나는 돌고 돌아 올해 심지어 경력직으로 재입사를 했고, 그 회사는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일일 정도니... 그리고 그 회사는 연봉, 사내 복지, 기업문화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수준을 넘어서 항상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정도에 꼽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회사를 고작 2년 조금 넘게 다니고 그만둔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때나 지금이나 난 가슴이 뛰고 그 일을 하는 목적의식이 생겨야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어쩌면 상충되기보다 둘 중 한 가지를 갖고 있으면 다른 것은 당연히 갖게 되는 성격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저 두 가지 특징 때문에 난 결국 '조직'과 '시스템'으로 내 생계를 해결하기보다 내가 가진 기술 또는 전문성을 가지고 생계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지금도 나가고 있다. 사실 내가 회사, 조직,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기 힘든 사람이란 건 구글에서 6개월 인턴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기도 하다. 그 정도 문화 속에서 그 정도 사람들과 일하면서도 갑갑함을 느꼈다면, 난 그냥 조직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란 결론을 내렸다.
사실 그 과정에서, 그리고 지금 파트타임으로 작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더 확고하게 느끼는 것은 '회사는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신입사원들은 기업들이 외치는 거창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문구에 현혹되어서 그 회사가 자아실현을 시켜주고 특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연수 과정에서 갖게 된다. 그리고 중소기업을 그만두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 회사에서 하는 일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대기업으로 가면 많은 것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회사란 어떤 곳인가?
하지만 아니다. 많이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얘기해서 회사는 사람을 부품으로 만드는 곳이다. 그렇지 않나? 산업혁명은 결국 한 사람이 하던 일을 단순 반복하는 task로 나누고, 단순 반복하는 속도가 빨라지면 전체 생산과정이 빨라지기 때문에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며, 그 결과 더 빨리 많이 팔아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게 만든 과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생산물은 물건에서 서비스, 컨설팅 등으로 바뀌었을 뿐 회사들은 여전히 사람을 하나의 부품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한 회사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분야의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이 나가도 그 회사는 큰 문제없이 운영될 수 있다. 그런 시스템의 집합체가, 구성원들 간에 상호의존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회사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은 기업이 클수록 더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고, 큰 회사일수록 그 안에는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들이 굉장히 많다. 따라서 누구든지 와서 그 일에 빨리 적응하게 만들 수 있는지 여부를 보면 그 회사가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회사 안에서 개인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아니 회사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시장에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다. 다만 그러한 목적 범위 내에서 (1)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지, (2) 사회적인 책임을 갖고 사업을 하는지, (3) 윤리적으로 경영을 하는지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한 요소에 따라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두기로 결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서 본인의 자아가 실현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회사의 본질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회사는 철저히 유인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회사들이 주는 금전적인 보상에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연봉 차이를 말하지만 사실 월급쟁이가 받는 연봉 수준에 따라 삶의 질이 바뀔 수는 있지만, 삶의 근본적인 모습이 바뀔 수는 없다. 이는 회사들이 보장해주는 연봉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 로펌, 증권사 등과 같이 특수한 회사들을 제외한 회사들 중에서 연봉을 괜찮게 주는 회사들은 보통 10년 차 정도가 되면 연봉이 1억을 넘어가고 중소기업들은 그 절반 또는 절반이 조금 안 되는 수준을 준다. 그러한 연봉 수준의 차이는 차의 브랜드가 크기, 취미생활을 무엇으로 하는지, 외식을 어떤 메뉴로 할 지에는 차이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 차이가 근시일 내에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물려준 집이나 기반이 있지 않은 이상 회사원들은 어느 정도는 금전적인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그 돈을 모으면 집을 더 빨리 살 수 있지 않냐?'라고 하지만, 연봉이 오를수록 씀씀이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회사원들이 돈을 모으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회사가 나쁜 곳이냐?라고 묻는다면, 지금 당신이 회사원이 아니라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프리랜서로 당신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그리고 회사들이 시장규모를 지금처럼 키워놓지 않았다면 그 안에서 개인들이 나눠 먹을 파이가 어느 정도가 될까? 대부분 사람들은 회사원이 아니면 돈을 벌 능력이 없으며, 거대 규모의 회사들이 없다면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개인들에게 돌아가는 금전적 보상도 줄었을 것이다. 회사는 그렇게 나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회사에 다니기 싫다면...
이처럼 회사는 회사를 그만두기 애매한 수준의 금전적 보상만을 주지만, 최악의 상황을 방어해 줄 수 있다는 장점도 갖는다. 회사 안이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라고 하지 않나? 이와 달리 사업을 하는 것은 금전적인 보상이 엄청나게 클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극빈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점이 회사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회사에서 교육을 많이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 직장이고 그 안에서 의사결정들은 곧바로 금전적인 측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회사가 제공하는 교육은 엄연히 말해서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필요해서 제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회사에 다니기 싫다면 회사를 그만두려는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 경험 등에 기반한 경쟁력을 객관화시켜서 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려는 영역에 대한 시장조사를 해서 그 안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이 갖는 불투명성이 지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든지 그것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사업은 그러한 고민, 고려, 계산을 마친 후에 모든 질문에 대해서 긍정적인 답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산은 머리로 한 것과 현실에 닥쳤을 때 큰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지인들이 대부분 사회생활을 10년 정도 하고 나니 하나, 둘씩 회사를 나와서 본인 사업을 시작하던지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있다. 그 이유들도 다양하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회사의 부품으로 있는 기간에 한계가 있으니까,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서, 조금은 자유롭고 싶어서 등등.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말은, 그리고 내가 대학원 다니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생각은 '일단 생계는 해결할 수 있어야 할 텐데...'이다. 회사는 그 고민을 덜어주는 대신 그 안에 있다 보면 점점 거대한 조직의 부품이 되어가면서 자아가 어느 정도는 상실될 수밖에 없고, 회사 밖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다 보면 그 사람은 자신의 자아에 대해 더 알아가면서 자아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잃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