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며
스카이 캐슬을 보게 됐다.
우리 집은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집들과 다르다. 아버지께선 회사원이셨고 정년퇴직을 하셨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이 캐슬은 보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를 원래 잘 보지도 않지만, 입시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드라마를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들, 재수할 때의 불안감이 그대로 떠오를 것 같아서. 군생활이 떠올라서 '진짜 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은 절대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스카이 캐슬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담당하는 광고주의 SNS 채널에서 스카이 캐슬을 패러디한 포스팅이 엄청난 공감을 사는 것을 보고 '도대체 입시와 상위 1%의 삶을 그린 드라마가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거지?' 싶어서 넷플릭스에서 스카이 캐슬을 정주행 했다. 그리고 내 패턴이 늘 그렇듯, 그 정주행은 며칠 안에 끝냈고 난 이제 스카이 캐슬 본방을 기다리고 있다.
스카이 캐슬, 진짜일까?
스카이 캐슬의 내용을 놓고 저게 사실인지, 정말 저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과장된 내용이 일부 있긴 하지만 그 안에 현실에 없는 내용들은 없는 듯하다. 우선 드라마가 현실과 다른 부분을 짚어내자면, 대학병원 의사들이나 로스쿨 교수들이 모두 그렇게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주요 대학병원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잘 사는 편에 속하는 것은 맞을 것이나, 그들이 이사장 아들 정도가 아니라면 대학병원 의사들도 결국은 월급을 받는 사람들일 뿐이다. 로스쿨 교수 역시 마찬가지. 대형 로펌에서 학계로 넘어온 일부 정말 잘 나가는 교수님들은 차 교수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잘 살지 모르지만 그건 정말 예외 중에 예외적인 경우다.
그들이 학력으로는 대한민국 상위 0.1%에 들지 모르나, 금전적으로 0.1%는 절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코디네이터까지 붙일 정도로 금전적인 여유를 누린다는 설정은 조금 많이 과장된 경향이 있다. 내가 간접적으로 본 바로는 그들보다 코디네이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학원에 자녀를 많이 보내는 사람들은 집안이 원래 잘 살았거나 사업을 하는 부모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캐릭터를 그렇게 구성한 이유는 이해가 간다. 사실 스카이 캐슬의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코믹한 요소들을 섞으면서도 스릴러적으로 스토리를 끌어나가고, 다른 사람의 특정한 면을 끌어내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캐릭터들의 성격 중 과도하게 선하거나 과도하게 악한 면을 그렇게 과장하지 않았다면 이 드라마에서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끄집어내 질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스카이 캐슬을 보면서 '현실에서 저럴까?'라는 생각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드라마들이 다 그렇지만, 스카이 캐슬의 캐릭터들은 특히나 작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최적화된 상태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니까.
스카이 캐슬 속의 진실
그렇다고 해서 스카이 캐슬 속의 이야기가 모두 허구인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형이 대치동 학원가에서 나름 잘 나가는 강사이다 보니 대학원 재학 시절 가끔씩 아르바이트로 그 학원가에 갈 일이 있었고, 그 덕분에 난 스카이 캐슬에서 그려지는 현실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강사들도 학력에 의해서 줄 세워지고, 그들이 담당했던 학생들 중 스카이와 의대에 얼마나 갔는지에 따라 평가되는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강사들은 스펙이 좋은 보조선생님, 또는 아르바이트생을 잘 데려올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도 했다.
난 그 보조 선생님으로 몇 번 아르바이트를 갔고, 그때마다 학생으로서는 숨통이 조금 트일 수 있는 금액을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써오면 그에 대해서 첨삭해주고 어떤 방향으로 수정하라고 조언해 줄 때도 있었고, 면접 직전에 모의 면접관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줄을 서서 길어야 인당 15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을 썼고, 내가 손에 쥔 아르바이트 비용을 역산해서 그 시간을 위해 그들이 쓴 비용을 생각해 보면 대충 잡히는 비용 범위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게 되었던 경험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여서 조금 더 봐주면, 그로 인해 뒤에 아이들 시간이 밀리기 때문에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상담해야 했다.
아이들이 그런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0년도 더 지난 학부시절에 난 변호사, 의사인 부모를 둔 아이들이 많은 지역에서 영어로 영어를 가르쳤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사는 현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었다. 방학이면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학원을 순례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세상을 보면서 그들이 크면 어떻게 될지가 무서워졌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데 이미 미국으로 1년 교환학생을 다녀온 어떤 아이는 해외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내가 의미는 알지만 사용하지는 않는 단어를 문장에서 사용했고, speaking에서 활발하게 말하는 편은 아니라고 적어내자 그 아이 부모는 내게 20분 동안 본인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을 했다. 그다음 수업에서 그 아이가 주눅이 든 상태로 말을 하겠다고 손을 드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러한 한국 현실의 문제점
사실 스카이 캐슬은 표면적으로 입시와 학력 문제만을 다룬다.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고액과외 같은 건 생각도 못했고, 그런 게 없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집안 분위기상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단 스트레스는 대치동 학원가에 저녁 늦게까지 있는 아이들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받았던 내가 스카이 캐슬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집은 역설적으로 부모님께서 물려줄 수 있는 그럴듯한 배경이나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우리 형제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대학에 진학해야만 한다고 하셨던 점이 스카이 캐슬과 가장 다른 점일 것이다.
그런데 스카이 캐슬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내가 다른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이 부모의 지침을 따라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한 삶을 살고 있단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우리 부모님이 원하는 삶이 있었다. 하지만 난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아들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특정 대학 출신에게 치사한 일을 너무 많이 당해서 내가 그 대학에 진학했으면 하셨지만 난 그 대학에 합격하고도 다른 대학을 선택했고, 회사원으로 살아오신 아버지께서는 우리 형제가 경영학을 전공해서 대기업에 취직해 아버지께서 이루지 못한 임원의 꿈을 이뤘으면 하셨지만 난 경영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은 2년 만에 그만두고 나왔다. 그때 아버지는 내가 연약해서 대기업에서의 삶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난 내 생각대로 내 인생을 살아왔고, 그 덕분에(?) 부모님은 내 미래에 대해서 방향을 제시하시길 포기하셨다.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수동적이다. 심지어 50이 넘어서 고3인 아이를 둔 나이가 되어서도 그들은 부모의 시선을 의식하고,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의사결정을 한다. 그나마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부모에게 '나를 위해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내게 그런 삶을 강요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나 하지, 50이 넘은 부모들은 자신들이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그렇게 수동적인 삶을 산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그것만이 길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항상 그렇게 부모를 만족시키고 정답이 있는 삶이 있는 것처럼 살아왔다 보니 그들은 그런 틀에서 벗어난 일이 발생하면 당황하고 방황한다. 그리고 항상 부모가 지시한 대로 순종하면서 살아온 그들은 부모가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 조언해 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렇게 머리도 좋고, 스펙도 훌륭하며, 금전적인 여유도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일정 수준의 대학에 진학한 사람들 중에서 좋은 직장이라고 평가받는 곳에 취업하거나 남들이 선망하는 길로 곧바로 들어선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한 경향성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스카이 캐슬은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
많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서 학력, 입시의 문제만을 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것보다 더 심각한 우리나라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이들 개인은 없고, 어른들이 본인들이 생각하는 정답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문제를 말이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잘 아는 세상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빨리 발전했고, 변해 왔으며,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부모님들이 생각했던 삶의 방식과 성공의 방법은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부모님들이 살아온 세상과 그 자녀들이 세상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들의 '성공'이라는 기준이 맞는 것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그나마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고등학생들은 부모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그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지만 그 부모들은 사실 본인들도 자신의 부모가 심어준 틀에 박혀있으면서 그걸 인지하고 있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 어른보다 아이들이 현상을, 세상을 더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굳어가고, 에너지 레벨이 낮아지면서 세상을 보면서 고민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되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교문화'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일제 치하에 심겨진 것인지도 모르는 상명하복의 군대에 더 가까운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로 인해 그런 아이들의 시선과 생각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말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에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다른 나라의 좋은 점들을 많이 차용해 왔었는데 사설학원들과 부모들은 그 제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그런 문화가, 사람이 바뀌어야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입시문화가 바뀐다. 물론, 그런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인간의 욕망과 욕구라는 것은 완전히 통제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교육과 입시에 극성인 부모들은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분명 달라질 수도 있고, 달라질 필요도 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안에 있는 성향을 발견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생계는 해결하면서,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할 필요는 있다. 사실 스카이 캐슬에서 가장 인상적인 면은 그 지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