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어떻게 무엇을 읽을 것인가?

by Simon de Cyrene
독서에 대하여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글은 많이 쓰지만 그 재료는 대부분 내 고민과 생각들이다. 사실 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는 주관을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독서를 무조건 많이 해야 할 것 같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금 더 나가면 사실 모든 것을 글로, 독서로 배우려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조금은 많이 걱정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난 독서는 어디까지나 보충교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참조자료다. 생각해보자. 독서를 한다고 할 때 책에 들어있는 콘텐츠는 (1) 객관적 사실의 전달, (2) 주관적 경험 또는 의견의 전달, (3) 주관적 느낌이 글로 표현된 문장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본인의 필요에 의해서 읽으면 되고, 세 번째는 감정적으로 힘들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읽으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는 무조건 동조하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두 번째 부류의 글을 너무 많이 읽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보통 본인이 좋아하는 생각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면 그 생각이 굳어버리니까.


본교재가 무엇일까?

독서가 보충교재라면 교과서, 혹은 본교재는 무엇일까? 그 첫 번째는 '나의 생각'이다. 책을 읽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여기에서 '나의' 생각이라고 한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는 무엇인가가 본인의 생각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사실 어렵지 않다. 자신이 특정 주제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섞어가면서 글 한 편을 쓸 수 있다면 그건 본인의 생각이겠지만, 만약 한 문장이나 한 단락 이상의 글을 쓰지 못하고 결론만 반복해서 쓰게 된다면, 그건 본인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 또는 남의 생각을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조금 많이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세뇌된 것이지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본 교재는 '나의 경험'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독서를 왜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독서를 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난 독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현 상황에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함이다. 소설, 시, 자기 개발서는 어쩌면 달라 보이지만 사실 그걸 읽는 사람들은 방법이 다를 뿐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과 시를 읽는 사람들은 조금 규격화될 수 없는 삶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적인 상태에 대해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사람들인 반면 자기 개발서를 읽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빨리 이뤄내거나 자신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책에서 찾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책들은 인생의 어떠한 시점에 읽느냐에 따라서 개인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고, 그 '어떠한 시점'에 읽는지는 결국 인생에서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와 관련된 문제다. 이는 독서는 사실 그냥 글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경험, 지식, 감정이 활자를 해석하는데 동원되는 과정이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인의 경험이 풍부하지 않으면 같은 책을 읽어도 그 사람이 끌어낼 수 있는 인싸이트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자기 개발서와 같은 책들은 대부분 책이 아니라 경험으로 체화시켜야 하는 것들을 문자로 정리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런 글이 왜 쓰였는지에 대한 깊이를 알기가 힘들다. 그래서 난 독서보다도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사실 '나의 생각'과 '나의 경험'을 보조하기 위해서, 내가 이미 하고 있는 고민과 했던 경험 속에서 생긴 물음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독서는 조금 더 지식중심적인(?) 글들을 하는 경우에 적용되어야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읽을 용도로 출판된다. 먼저 고민하고 경험하다가 그 안에서 생긴 물음표를 해결하기 위한 용도로.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본인이 생각과 경험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책이 읽고 싶어 졌다

박사학위논문 인준지에 교수님들 서명을 받았고, 지난 2년 간 내 뇌리를 떠난 적이 없는 학위논문은 이제 PDF 형태로 인쇄소에 넘겨졌다. 그렇게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돌이켜보면 난 지난 2년 동안 참 많은 글을 썼다. 내 학위논문도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400페이지가 넘어갔던 적이 있었고, 심사를 받을 때마다 난 논문을 절반 정도 뒤집어엎어야 했으니까. 그뿐인가? 조금 쉴 때 즈음이면 브런치에서 글을 썼으니... 하루 평균 한 개 정도를...


논문이 다 정리되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30여 년 동안 경험하고, 생각하고, 읽었던 것들을 어쩌면 지난 2년간 다 활자화시킨 것 같단 생각이.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싶은 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것들을 다 활자로 쏟아냈기에 그 빈 공간을 무엇인가로 채워놓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방 책장 안에, 책상 위에, 그리고 책상 옆 바닥에는 읽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한 책들이 하나 가득 쌓여 있다. 이젠 책을 읽을 시기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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