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가 갖는 의미

by Simon de Cyrene
'박사'라는 호칭에 대하여

'박사'가 되었다. 아니 사실 2월에 졸업을 하고 나서야 정식으로 박사가 되는 것이고, 지금은 '예비'박사에 불과하다. 일단 학교에 논문을 제출하는 등의 행정절차는 다 거쳤으니까. 이제는 '예비'박사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졸업이 결정되고 주위에서 '박사'가 되었다며 축하할 때 나의 첫 반응은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축하를 여러 번 들으면서 주위 사람들이 내 이름에 박사를 붙여서 부를 때 처음으로 물음표가 생겼다. 왜 박사는 마치 직책이나 신분처럼 이름 뒤에 붙여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김학사, 김석사라고 표현은 사용하지 않지만 김박사라는 말은 쓰지 않나?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에서도 박사에 대해서는 doctor이라는 호칭을 붙여준다. 그리고 이건 아마도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그 학위를 갖고 자신의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이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독립적이기 때문에 특정한 직책을 부여하는 게 맞지 않다고 여긴 영향도 있을 것이다.


'박사'들은 왜?

그런데 그렇게 '박사'라는 호칭을 직책처럼 사용하게 되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 중 일부가 착각하게 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건 마치 본인이 박사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정한 면에서는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시를 굳이 멀리서 들 필요가 있을까? 대학에서 일부 교수님들의 모습만 봐도 그러한 우월감은 느껴지지 않나?


과연 그런 태도는, 자세는 맞는 것일까? 정말 박사학위를 받으면 척척박사가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박사는 자신의 분야에서도 자신의 학위논문 주제에 대해서만 최고다. 조금 더 넓게 잡는다고 쳐도 자신의 학위논문 주제와 관련된 영역 정도에서만 전문가일 뿐, 박사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박사들은 보통 좁고 깊은 지식을 갖고 있을 뿐, 그 지식이 넓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사실 학부시절에 박사과정에 있는 선배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봤었다. 그리고 그래서 난 죽어도 박사과정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세상을 편협하게 보고 보통의 사람들은 상식으로 아는 것도 모르기도 하는 박사과정 선배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geek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기 싫어서 잠시 공부를 더 할지를 놓고 고민했던 난 박사과정에는 진학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사실 그래서 나의 박사과정은 들어간 것부터가 전혀 계획되지 않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니 박사에 대한 그 생각은 더 견고해진다. 마지막 논문 심사를 받고 나서 지도반 세미나에 들어갔는데 내 전공과 관련된 내용으로 세미나를 하는데도 그 내용이 너무 새롭게 느껴지더라. 어느 정도 예상도, 각오도 했지만 막상 그러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자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난 지난 몇 년간 무엇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도 많아졌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 한 전공에서 나올 수 있는 박사학위논문 주제는 수없이 많은데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건 그중에 딱 하나를 선택해서 그것만을 깊게 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박사학위논문을 쓴 사람은 자신 전공 안에 있는 다른 내용을 알아는 듣지만 그에 대해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상태일 때도 분명 있다.


'박사'의 의미

그렇다면 박사학위는 어떤 기준으로 주는 것일까? 박사학위는 그 사람이 이 전공을 혼자서 연구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고, 공부 또는 연구하는 방법을 확실히 안다는 의미에서 주는 것이다. 즉, 박사학위를 가졌다는 것은 공부하는 방법을 안단 것이지 그 사람이 그 전공 주제에 대한 모든 것을 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작년 1학기에서 학위논문 심사가 한 번 더 밀릴 때 커미티에 있었던 친한 교수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박사학위 받고 어떻게 논문을 어떻게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건 박사학위논문을 제대로 쓰지 않아서 그렇다고. 그 트레이닝은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과정에서만 받을 수 있다고. 네가 학자로 살아가려면 그 트레이닝은 제대로 받고, 논문다운 학위논문은 쓰고 나가야 한다고. 지난 학기에 심사가 끝나고 그 교수님을 뵈었을 때 그 교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 한 학기 미루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 학기만 더 미루면 잘 만들어 올 것이라고 생각되어서 미룬 것이라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박사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끝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단 것이다. 그리고 사실 박사로 불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를 훨씬 많이 해야 하고 공부하는 것을 업으로 해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겸손한 것이 정상이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만 더 깨닫게 되어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교수들은, 박사들은 자신이 마치 가장 잘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그건 그들이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게 틀릴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겸손해야 하는 이유

난 참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게 꺾이기 시작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자료를 찾으러 중앙도서관에 갔고, 엄청나게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을 보고 있다 보니 그 순간 '난 평생 책만 읽어도 이 안에 있는 것들도 다 못 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우리 학교 도서관들만 해도 그때 내 눈에 들어왔던 책들의 최소한 30-40배 정도 되는 책을 소장하고 있고, 그 이 세상에 출판되었고 출판될 책들은 그것의 수천, 수만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난 평생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똑똑하고 많은 걸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보다 잘하거나 잘 아는 것이 최소한 한 가지는 있다. 그걸 기억한다면, 그걸 항상 염두에 둔다면 어떻게 오만해질 수가 있을까?


정말 굉장히 오랜만에 학교에서부터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게 되면서 두려움, 설레임, 고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휘몰아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되뇌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겸손해지자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난 언제든지 쉽게 오만해질 수 있는 사람임을 알기에. 박사라는 호칭으로 인해 나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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