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널 위한 말이야'
이 말은 언제나 틀린 말이고, 항상 거짓이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하는 사람은 절대로 가르치듯, 본인은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 자체가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뱉어졌는데 그게 어떻게 누군가를 '위한' 것일 수가 있을까?
나라고 저런 표현을 쓴 적이 없겠나? 아마 지금도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이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 하는데 내 조언을 너무 귓등으로 들으면 답답함의 끝에서 저런 표현을 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내게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젠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니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정말 엄청나게 중요한 결정"이 아닌 이상 그 사람에게 함부로 내 생각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러하는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같은 상황으로 보이는 두 상황이 사실은 다른 상황이 되기도 하고 다른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비슷한 상황이 되기도 하더라. '외부요인'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누군가에게 조언을 잘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예외가 있다면, 그건 누군가가 내게 "먼저" 조언을 구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도 상대의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면 난 보통 먼저 듣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고 '이렇게 해라'라는 말보다는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표현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지도 못하고 내가 그 사람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언은, 상대가 먼저 요청할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는 게 낫다. 이는 정말 필요하고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조언은 그 사람 귀 밖에서 튕겨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아무리 에너지를 쓰더라도, 사람들은 들을 말만 듣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듣지 않는다. 본인이 정말 혼란스럽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 전에는 말이다.
물론, 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언"이라고 표현은 하지만 실질적인 "판단"을 한다는데 있다. 많은 사람들은 상대가 잘못 생각하고 있고, 지금 잘못하고 있으며, 이렇게 저렇게 했어야 했고, 앞으로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결론"만을 통보하는 것을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상대가 들을 준비가 안되어 있다"라고 판단해 버린다. 그런 경우에는 상대가 그런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제대로 조언을 해줄 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이지 모든 것이 상대가 귀를 닫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조언이 누군가에게 "먹히기" 위해서는 조언을 듣는 사람도 조언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조언을 하는 사람도 조언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헤어리면서 객관적이고 냉정한 "권고"를 해야 한다. 그렇게 이뤄지지 않는 조언은 두 사람 사이에 벽을 더 쌓는 역할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진정한 의미의 조언은 누군가의 현상황을 낫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사실 상대가 본인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상대가 본인의 장난감도 아니고, 본인의 인생은 본인이 책임지는 것 아닌가? 그 또한 존중해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내가 정말 너무나도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4년간 내 옆에 가장 가까이서 나를 봐왔던, 공동체 같았던 사람들은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어설픈 위로가 오히려 날 힘들게 할 것을 알았기에. 그런데 같은 모임에 속해 있지만 들어온 지 몇 달 되지 않으신 분은 그렇게 오버해서 괜찮을 거라고, 다 좋은 일만 일어날 것이라고 하더라. 어떤 이들은 내가 이러저러해서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번에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치려고 들더라. 누가,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줬을까?
인생의 많은 것은 타이밍에 달려 있다. 조언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