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2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

by Simon de Cyrene

회사 선배, 그것도 내 직속 사수였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연락을 했어야 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평상시에 페이스북에서 굉장히 활발했던 그 선배가 몇 달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퇴사한 이후 몇 년이 지나서 그 선배도 퇴사를 했었다. 부장 직급으로 퇴사를 하셨기에 사실 이직을 하기에도 애매한 나이. 그 선배는 스타트업 쪽 브랜딩 담당으로 취업을 하셨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스타트업의 부사장으로 이직을 했다. 실질적인 창업이었다.


그 회사는 투자를 잘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회사의 투자도 받았고, 그 선배의 연봉은 내가 상상하던 스타트업의 연봉 그 이상이었다. 사실 내가 있었던 회사의 연봉이 워낙 높아서 연봉이 반토막 난 것이지 어지간한 대기업 부장급 연봉을 그 선배는 받고 있었다. 스타트업에서.


그랬던 그 선배가 침묵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혹시 그 선배의 일을 아냐고 물어도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나처럼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 선배 회사의 상황을 아는 다른 회사 선배를 만나 밥을 먹었고, 난 조심스러워서 연락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선배는 그러지 말라고, 그런 이유로 연락 안 하는 거 아니라고 하셨고 난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나의 사수였던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폭싹 망했다는 자조적인 웃음. 그러면서도 예전과 변함없는 실없는 농담들. 반가우면서 슬펐고, 아프면서 반가웠다. 지난 몇 년간 나 역시 사업은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영역에서 실패를 겪었기에 같이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결국 이 아픔은 선배가 혼자 딛고 일어나야 한단 것을 알기에. 내가 어떻게 그 마음을 알겠나? 가정이 있고, 아직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투자까지 받았던 회사를 청산해야 하는 마음을 말이다.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작년 즈음에 '위로'라는 글에서 위로되지 않는 표현이라고 강조했던 말을 하고 있더라. 힘내시라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말 말이다. 안다. 내가 힘내시라고 해도 힘이 나지 않는 것을. 그리고 현실적으로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단 것을. 그게 뼈 아픈 현실이지만, 너무나도 힘들어하고 있는 선배에게, 나보다 윗사람인 선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다른 말은 없더라.


그에 대한 선배의 반응은 '그래, 다 잘 될 거야 난 다시 일어날 거야'였다. 사실 통화가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돌아보면 우린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던 것 같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그 패턴. 난 알았다. 그건 너무나도 힘들 때 그저 누군가와 말이라도 해야 숨을 쉴 것 같은 기분에서 나오는 패턴이라는 것을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보니 거의 40분 간 통화를 했더라. 같은 회사 사수와 부사수로 있을 때도 우린 단 둘이 30분 넘게 대화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무려 40분 간 통화를 했더라. 그리고 내가 했던 말들을 돌아보고, 그 선배의 반응을 돌아봤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때로는 힘내라는 말이, 막연히 다 잘 될 것이란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 말이 다시 희망을 불어넣어줄 때가 있다. 물론, 그 말로 힘이 유지되는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고 모든 것이 다 잘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말이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 그 말은 해주는 것이 맞다.


위로는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객관적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사람마다 위로가 되는 말은 다르다. 그 사람이 듣고 싶은 말, 필요한 말을 해줌으로써 '난 네 편이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 그것이야 말로 위로가 아닐런지.


예전에 '위로'란 글을 쓸 때 했던 나의 생각이 너무 짧았다. 위로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에서 거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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