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by Simon de Cyrene

사실 이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변시에 대한 내용이 너무 길어졌다. 그래서 변시 (링크)에 대한 글을 따로 썼다. 그 글의 요지를 정리하자면, 지금 일부 변호사 또는 변호사협회가 주장하는 '생존권'과 '생계'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더 편하게 먹고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변호사시험과 로스쿨을 둘러싼 문제들이 그렇게 간단하진 않아서 그에 대한 게 궁금하시면 위에 링크를 누르고 그 글의 내용을 참조하시길 권장한다.


그런데 일면 변호사 업계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택시업계에서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타다나 공유 서비스들에 반대하는 택시업계의 주장은 사실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 그것을 보여주는데, 그들의 논리는 그 뿌리를 들여다보면 변호사협회와 같은 주장이 있다. '우리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에는 특정 업계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건 사회주의적인 사고방식이지 자본주의 혹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적인 사고방식은 아니다. 만약에 그런 주장을 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정부가 택시를 다 운영해서 택시기사들을 전부 고용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실 난 택시를 자주 타는 편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택시를 타는 것은 어느 정도 이상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일을 하거나 아주 급할 때, 또는 모임이 매우 늦게 끝날 때는 가끔씩 택시를 타는데 난 그럴 때마다 기사님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그런데 택시업계와 공유차량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택시업계가 생각보다 경쟁이 심하지 않고, 소수가 그 안에서 이익을 나눠 갖고 있단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택시업계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겠더라. 택시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차고지, 택시 몇 대 이상을 보유해야 하다 보니 택시회사는 자본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사업이더라. 그렇다 보니 택시업계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겠더라.


그런 점에서 택시업계는 변호사 업계와 유사하다. 변호사 업계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소수의 변호사들에 의해서 돌아가는 비밀스러운 시장이었다. 그 업계는 사법고시 합격자 숫자를 대폭 늘리면서 변화를 맞이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겨우 일 년에 천명 정도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또 기존의 기득권에 의지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기득권의 이익을 위협하는 변화가 생기면서 그 시장에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두 업계의 공통점은 기존에 기득권을 갖고 있던 집단이 사회적인 변화에 저항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저항은 표면적으로는 업계 안에서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것의 영향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큰 변화가 있다. 그 업계 안에서 변화를 야기한 것은 우리가 사는 시대적 분위기와 사회적 환경의 변화들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복잡해져 가고 있고 그에 따라 법률관계도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변호사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게 많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변호사가 필요하다. 기성 변호사들 중 일부가 그에 저항을 하는 것은 그 수요가 기존의 변호사 업계의 수요와 다르기 때문에 기성 변호사들은 그 수요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택시업계 마찬가지. 이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기보다 공유하고, 나눠서 사용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이면에는 이미 있는 자원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의 성향이 작용하고 있는데, 그러한 변화는 교통수단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거주 형태도, 사무실도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택시업계도 그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변화는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거부하기보다 그 변화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수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실 경쟁이 이전부터 치열했던 업계에서는 그러한 문화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가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런데 변호사와 택시업계처럼 실질적인 독과점의 형태로 운영되던 업계는 그러한 변화에 익숙하지 않고,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변화에 저항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저항하는 것이 몇 년 정도는 풍파를 막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업계에 있는 소수 사람들이 어떻게 거대한 시대적인 흐름을 막을 수가 있겠나? 그렇다면 그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수용하고 오히려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사실 택시와 타다, 공유 자동차 서비스는 잘 연계하면 그들도 수익을 극대화하고 이용자들의 편익도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고, 변호사가 관여하는 수준을 다변화한다면 변호사들은 단순히 소송과 자문을 넘어서 굉장히 창의적인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시장을 독과점하는 문화 속에서 다른 업계 사람들보다 편하게 생계를 해결하던 그들의 몸이 너무나 무거워 보이고 그 무게가 우리 사회의 짐이 되는 듯해서, 그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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