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3조의 문제와 관련하여
평화협정과 헌법 제3조
'왜 이렇게 평화, 평화체제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지?'싶었는데 자료들을 찾아보니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헌법 제3조를 삭제해야 한단 주장이 그렇게 많이 나오더라. 이 문제에 대해서 (1) 헌법적인 관점에서, (2) 법률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3) 현실적인 관점에서 내 생각을 아래에 쓰고자 한다.
헌법적인 관점에서
제3조는 항상 통일, 그리고 남북관계와 관련된 분야에서만 문제가 된다. 그리고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봐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거나 국가로서 북한의 완전한 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3조의 삭제를 얘기한다.
하지만 헌법 제3조를 삭제하는 것은 단순히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봐야 하는지의 문제에 있지 않다. 영토조항은 1948년 제헌헌법 때부터 포함되어 있었고 그 조항은 국가의 정체성과도 관련된 것이다.
헌법 제3조의 삭제와 관련한 논의들에는 간단하게 '시대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헌법 제3조를 삭제하는 것은 시대에 맞는 변화를 넘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와 전통을 어디에서 찾아올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조선과 대한민국으로 분단된 두 국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할 수 있을까? 헌법 제3조의 삭제를 논의할 때 모든 사람들은 '현실'만 얘기하고 '가치'는 얘기하지 않는다.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가치는 현실을 해석하는 잣대로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헌법 제3조를 삭제할 경우에는 제4조 역시 삭제하는 것이 맞다. 제3조를 삭제하고 제4조(평화통일 조항)를 유지하는 것은 헌법 구조상 맞지 않는다. 이는 헌법 제4조는 제3조에 대한 예외로 1987년 개정에 추가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헌법 변천으로 봐서 제4조를 해석을 통해 통일이라는 목표는 계승하는 것으로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어느 정상국가가 다른 정상국가와 통일을 국가적인 목표로 설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서독의 경우 헌법 제146조에서 해당 기본법이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기까지 임시적인 효력을 가질 뿐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독은 지속적으로 동서독 특수 관계론에 입각해서 동독을 내부 관계에서는 독립된 국가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지 않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동서독은 독립국가라는 것은 서독과의 체제경쟁에서 불리한 동독이 하던 주장이다. 그리고 지금의 남북한 특수 관계론은 그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법률적인 관점에서
헌법 제3조를 삭제한다면 법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북한이탈주민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폐지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이탈주민들은 더 이상 수용하는 것이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서 다른 국가들보다 특별히 강조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는 북한보다 다른 국가들과 거래를 하는 게 이득이 될 것인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과 같은 사업에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힘들 것이다. 정당화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3조와 제4조를 삭제한다면 그 지원에 사용될 돈을 대한민국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서 써야 한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북한을, 통일을 연구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 인권’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나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인권문제는 인권을 외침으로써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난 인권 관련 행사에 참여할 생각이 별로 없다. 그 대신 법제도의 운용과 현실적인 변화들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는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주위에 ‘통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할 때 절대로 인권문제를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도 중요하지만 남한주민들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통일은 남한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나는 고도로 구조화되어 있고 그 구조가 경직된 우리나라의 현실은 통일과 같은 외부적인 변화 없이는 절대로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는 통일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법제도를 바꾸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에 따른 갈등, 시행착오 등이 있을 수 있으나 그 과정을 잘 만들어나간다면 나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그 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제3조와 제4조를 삭제하는 반면 북한은 현행 헌법에서 정하고 있듯이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다.’와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공화국을 조국통일의 강 유력한 보루로 다지시는 한편 조국통일의 근본 원칙과 방도를 제시하시고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시어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으시였다.’는 물론이고 ‘제9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힘 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라는 내용을 유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은 영토조항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결국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한반도에서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북한도 헌법에서 그 내용을 삭제하기로 합의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시키고 있는 국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민족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은 사람들이고 통일을 포기하는 것은 그들의 전통을 이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북한 정권이, 김정은이 통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가 포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북한식 통일을 지향한다는 의미인가?
통일이 된다면, 그 통일은 남한의 법제도와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가 유지되는 방식으로 되어야만 한다. 이는 단순히 규범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남한 인구가 북한 인구의 2배가 넘는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방향으로 통일을 하는 것이 수월할까? 어떤 이들은 ‘왜 일방적으로 우리 것을 주장하느냐?’고 묻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경제적, 사회 인프라적으로나 국제사회에서나 열위에 있는 북한의 것을 왜 수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제3조를 삭제하게 되면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북한 주민의 인권을 침해한 북한 정권의 구성원을 국내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다른 법체계 안에서 합법적이었던 행위를 새로운 체계에서 처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구성원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한 짓을 모두 그대로 용서하고 받아들이자는 것인가?
제3조를 삭제하는 것이 쿨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규범적인 영역과 사실적인 영역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헌법의 내용은 그렇게 단순하게 삭제할 것이 아니다. 실용적으로, 시대적인 패러다임을 반영해야 한다면 그것은 법률해석을 통해, 정치적인 변화를 통해 해야지 그걸 헌법 개정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