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중함에 대하여
풀타임 직장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년간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있는 삶을 살았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딱 내 용돈으로 쓰기에 충분한 수준의 금액으로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지난달까지는 그보다 조금 더 넉넉한 금액이 매달 정기적으로 입금되었다. 파트타임으로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다 지난달에 참으로 오랜만에 월급여가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경제적인 상황이 장기적으로 완전히 불투명하거나 절망적인 수준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큰돈은 아니지만 올해 일정 수준의 수입은 받을 수 있는 구조는 마련되어 있다. 다만 그 돈이 비정기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때로는 한 달에 수입이 아예 없기도 하고, 때로는 수입이 많기도 할 것이다. 진짜로 프리랜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회사원의 아들로 자란 나는 왜인지 몰라도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계신 공간에서 '난 회사원은 안될 거야!'라고 주장했고,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도 부모님께 조직에 의지해서 사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아버지는 당연히 내게 실망하셨고, 나를 야단치셨다. 지금 네 부모의 삶은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냐고 말이다. 난 전혀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고, 다만 틀에 박힌 삶이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일 뿐인데 본래 회사원을 꿈꾸지 않으셨던 아버지께는 내 말이 그렇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고작 2년을 정직원 회사원으로 살았지만 그때의 기억과 경험은 지금도 내게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사실 회사를 그만둔 이후 난 회사를 그만둔 것을 수도 없이 후회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월급, 또는 월급이 주는 삶의 안정성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겨우 월급에 구속되어서 새로운 도전을 못한다'며 때때로 자신을 폄하하지만 사실 난 '겨우 월급'이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못한다. 이는 월급은 단순히 그 금액이 아니라 인간에게 '안정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그 안정성은 무엇을 주고도 얻기가 쉽지 않다.
물론 회사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고 난 이후 생각의 끝에는 '결국 회사를 언젠간 그만뒀을 거야'라는 결론에 도착하긴 한다. 이는 내 타고난 여러 가지 성향들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나는 또 회사가 잘 다녀지는, 힘들더라도 그 안에 있어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되더라. 이는 난 정말 회사 안에 있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고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평생 회사원이셨던 아버지를 더 대단하게 여기게 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돈 몇 푼 때문에 내가 이렇게 치사하고 더러운 꼴을 당해야 하나?'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월급을 받으시는 분들은 그 돈 몇 푼은 단순히 금액 이상의 것을 자신의 삶에 준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다. 벌어들이는 금액은 엄청난 연예인들이나 사업이 지금 잘 운영되는 사업가들은 왜 심리적, 정신적인 질병들을 많이 앓을까?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건 아마도 그들의 삶에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인들이 가게를 여는 것도, 사업하는 사람들이 계속 아이템을 바꾸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니겠나?
물론 금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사실 회사는 여러 가지 불투명한 상황에 직면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회사가 구성원들에게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금액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주들 중에는 더 많은 금액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뒷주머니를 차는 악덕 기업주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월급은 그 회사가 지난 몇 년간의 시장 상황에 봤을 때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금액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예측가능성이 있는 삶은 꽤나 행복한 삶이었던 것 같다. 월급을 받고 머무르시는 분들 중에 '내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러셔도 된다고 나는 말씀드리고 싶다. 본인은 회사 체질이 아니라면서 본인은 회사 체질이 아닌데 버티고 있는 것이라는, 10여 년째 회사를 다니는 지인에게 그렇게 얘기해 줬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건 없다고. 10년 넘게 버텨졌을 정도면 본인은 회사생활이 맞는 편인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