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담긴 의미에 대하여
최악의 어버이날 전야
어버이날이다. 플로리스트인 친구를 통해 꽃을 살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 집에 오자마자 일어났다. 꽃 같은데 돈을 쓰는 게 싫다고 하셨던 어머니는 동생과 내가 어버이날 아무 꽃도 사 오지 않자 어버이날에 꽃은 사 와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었고, 그 이후에 그냥 거리에서 파는 걸 사 왔더니 예쁘지 않다면서 성의가 없는 것 같다고 하셨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플로리스트인 친구를 통해 꽃다발을 주문해서 드렸더니 '야 이런 건 너무 비싸고 큰데 왜 이렇게...'라고 하시면서도 어머니는 그 꽃을 병에 담아 놓고 볼 때마다 예쁘다고 하시더라. 일 년에 한 번, 부모님께 꽃을 드릴 수 있는 날이니 앞으로는 꽃을 좀 제대로 챙겨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우연히 받아온 꽃을 병에 담아서 예쁘다는 말을 계속하시는 모습을 보고 이번엔 조금 풍성하게 사드려야겠단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핀잔을 주기 시작하셨다. 실질적인 게 좋다, 차라리 돈을 주지, 차라리 초등학교 때까지 청소하기 쿠폰 같은 걸 주는 게 낫겠다 등... 너무 하신다 싶었는데 '이게 뭐 꼭 날 위해 사 온 거니? 네가 사 오고 싶은 걸 사 온 거도 있지'라고 말씀하시는 지점에서 화가 아주, 매우 많이 났다. 원래 선물을 그냥 곱게 받지 못하시고, 심지어 본인이 고르시게 한 것을 사드려도 고맙다는 말을 잘 못하시는 편이라서 심드렁하니 트집을 잡으시는 분이라는 것은 나도 알지만 이건 조금 심한 것 아닌가? 결국 화를 내고 내 방문을 닫고 방에 들어와 버렸다.
돈 선물을 싫어하는 이유
어머니께 가장 무난했을 선물은 돈을 얼마 정도 봉투 안에 넣어드리는 것이었을 테다. 물론 그랬을 경우에는 또 액수가 적다던지, 네 나이에는 이것보단 많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겠지만. 하지만 문제는 난 돈을 선물로 주지는 못한다는데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이는 내가 '선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돈을 선물로 주는 이유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물을 줄 때 선물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굉장히 중요시하는 편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선물의 핵심은 선물을 주는 사람이 그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가 어떤 것을 좋아할 것 같은지를 고민하고,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것을 고르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에너지가 소요되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거나 받을 때 그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선물한 꽃 역시 마찬가지. 난 작년에 꽃다발을 선물했지만 올해는 변화를 주기 위해서 센터피스를 골랐고, 조금 더 풍성한 것을 선물하기 위해 큰 것을 선택했다. 내가 어머니께서 쏟아부으신 말들에 화가 난 것은, 그 말들이 내 마음을 내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돈을 '선물'로는 주지 않는다. 난 개인적으로 생일을 굳이 챙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 집도 그런 분위기가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몇 년째 부모님께서 '네가 사고 싶은 거 사'라면서 현금을 주시는 건 그렇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는 선물로 돈을 주는 것은 일면 실용적으로 보이고,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 듯하지만 그 안에는 마음과 성의가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액수가 어마어마하다면 물론 그 금액을 통해 그 마음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선택할 수 있다면 최소한 '선물'로는 돈보다는 그 사람이 정말 나를 생각해서 골라준 선물을 받겠다.
그렇다 보니 난 사실 최근 들어서 꽃과 함께 돈을 말아서 드리는 용돈 꽃박스를 보면서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더라. 가족 간에도 돈으로 선물을 준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여기는 풍속이 가장 기본적인 사회 단위에까지 깊게 물들인 것 같아서 그게 그렇게 편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선물에서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면
이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하게 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냐?'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선물을 일방적으로 고르면 상대가 전혀 사용하지 않을 선물을 주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보통 내가 상대방의 취향을 명확히 알고 있는 상황이 아니면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내가 직접 고르고 사서 선물로 준다.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보통 선물로 주면서 '네가 000한 걸 좋아하고 000할 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걸 골랐어'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고민한 선물을 준다.
상대가 무엇이 필요할지를 고민하는 과정, 상대가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선물할 것을 고르는 과정, 그리고 심지어 때로는 상대와 함께 가서 내가 선물로 줄 것을 '같이' 고르고 결제를 해주는 형태로 선물을 해주는 과정은 모두 에너지, 시간,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나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혀 쓰지 않는 것을 선물 받았거나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선물 받은 적, 나도 있다. 하지만 상대가 날 생각하고, 내게 필요할 것이라고 여겨서 준 선물이라면 난 당황을 한 적은 있어도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은 없다. (물론 선물을 줘야 하니까 정말 대충 아무거나 사준 사람들도 있고, 그런 선물은 조금 예외로 두기로...) 그리고 항상 고마워했다. 그들이 쓴 시간과 에너지가 고마워서 말이다.
선물에서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조금만 더 쓰면 된다. 그리고 상대에게 진심으로 축하하거나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면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또 상대가 나를 생각해줘서 시간과 에너지와 물질을 사용해서 선물을 해준다면, 그건 그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하기보다 우선 고마워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