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분간, 마음껏 슬퍼하기로 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거래처와 통화하던 중, 컴퓨터 오른쪽 하단에 뜬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는 숨이 멎는 듯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계약 조건에 대해 가열차게 논의하던 거래처 담당자의 목소리가 멀어지려는 찰나, 겨우 통화를 마무리하고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께서는 코로나가 기승이니 내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어 전화를 건네받은 아버지께서는 작은 아버지와 논의해서 장례 잘 치를 테니 걱정 말라 말씀하셨다. 그 목소리가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하여 왈칵 눈물이 터졌다.
연세 여든을 넘기신 후, 아흔을 지나기까지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신 할머니께서는, 육신은 움직이지 못하되 정신은 말끔하셨다고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괴로우셨으리라고, 종종 소식 듣고는 했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병원의 방침으로 중환자실은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고, 결국 할머니께서는 사랑하는 아들, 딸 얼굴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내가 언제 할머니를 뵈었더라.
생각해보니, 3년 전쯤, 내가 남편과 결혼 후 찾아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고작 30여 분의 짧은 만남이었다. 대학교, 대학원, 직장을 오르며 바쁜 일상에 점차 왕래가 소홀해지고,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할머니와의 만남. 마지막 만남조차 그토록 짧고, 건조했다.
마지막이 이토록 빨리, 그 어떤 징조도 예언도 없이 찾아올 줄 알았다면.
어린 시절, 남동생과 함께 할머니 댁에 놀러가 놀던 일이 있었다. 땅끝마을 해남의 어느 한적한 마을, 인구가 50명도 채 안 되던 그 곳에서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의 임종 후 홀로 집을 지키셨다. 너른 마당 사이사이로 작은 뱀이 나오면, 남동생과 나는 비명을 질러대며 할머니를 찾고는 했다. 창고에서 커다란 삽을 꺼내들고 와 뱀을 내리치며 우리를 지켜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찌나 든든하고 멋졌는지.
할머니 댁에서 잠을 자다가 악몽을 꾼 날, 새벽 내내 할머니 품에 매달려 어리광 부리던 일도 생각난다. 피곤하실 텐데도 연신 내 얼굴과 팔,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다. 괜찮다. 할미 여기 있다.”며 손녀의 밤을 지켜주시던 그 목소리, 할머니만의 그 내음이 코끝에서 피어오른다.
이토록 소중한 추억이 많았다. 이렇게나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토록 소중한 사람을 내 인생의 가장 뒤켠에 두고 살았는지. 이제 갓 돌이 된 손녀 얼굴 한 번 보여드리지도 못했는데, 할머니께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차려드리지도 못했는데. 이제 만날 수 없는 이를 향한 그리움은, 갈 데 없이 무거운 후회가 되어 나를 짓누를 뿐이다.
나에게는 할머니의 사진 한 장 없다. 할머니의 웃음도, 아직 희미하게 코끝에 남은 할머니의 냄새도, 시간의 흐름에 실려 서서히 잊혀져갈 것이다. 지금 느끼는 이 슬픔과 후회도 곧 잠깐의 감상이 되어 스러져갈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이 슬픔을, 후회를, 아쉬움을 기록하려 한다. 두고두고 곱씹으려 한다. 앞으로도 계속 나와 함께할 사람들에게 더욱 더 충실하기 위하여, 내가 자칫 놓치고 있는 인연들을 더욱 소중히 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내 인연이 후회로 변하지 않도록.
나는 당분간, 좀 더 슬퍼하려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