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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Oct 22. 2020

1. 아이들의 시간은 빈틈이 없다.

[학원군상] 학원강사의 눈으로 바라본 아이들의 치열한 생존기

 강남에 위치한 수학․과학 전문 입시학원에서 입시 강사로 일한 지 거의 반년 째입니다.      


 처음 면접 제의가 들어왔을 땐 꽤 당황했습니다. 국어나 영어를 가르쳐 본 경험은 많지만, ‘입시’라는 영역에서 강의를 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여러 모로 제 코가 석자였던지라, 들어온 제의를 거절할 여유 따위는 없었죠.      


 면접을 마친 후 급여, 근무 시간 등의 협의를 거쳐 저는 ‘입시 전담 강사’가 되었습니다. 신분은 프리랜서이되, 업무는 정규직이나 마찬가지죠. 입시 수업 특성상 간혹 진행되는 특강을 제외하고는 1:1 컨설팅이 대부분인 탓에 매주마다 일정이 갱신되고, 심지어는 당일에 갑자기 수업이나 컨설팅이 배정되는 일도 잦아 정해진 시간 동안은 학원에 상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업무는 연간 1~2회 진행되는 입시 특강, 그리고 수시로 이루어지는 탐구활동 및 자기소개서 컨설팅입니다. ‘탐구활동’은 주로 자사고와 특목고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자기 주도 학습 영역’의 소재를 정하기 위한 전략이죠. 사실 저는 업무에 대해 들을 때만 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3 아이들 중 우수한 아이들이라면, 기껏해야 고1 정도의 수준으로 접근하면 되지 않을까?’ 가벼이 생각했던 거죠. 그러나 지난해 합격생들의 자기소개서들을 보는 순간, 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트로 바이러스, 유전자 가위, 혈흔의 수학적 분석…. 이런 소재들이 중학생의 연구 수준이라니, 저의 청소년기를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대학원생들과 교수들이 학술지에 등재한 논문들을 읽고 내용을 논하고, 심지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쓰인 논문들을 읽는 학생들도 있다는 데 경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독서 수준은 또 어떤가요. 『정의란 무엇인가』, 『총균쇠』, 『만들어진 신』과 같은 서적들을 무려 영어 원서로 읽고, 이에 대한 감상문도 영어로 적어 학생부에까지 등재시킨 아이들이라니, 함께 일하는 강사에게 바보처럼 “이 아이들에게 제가 필요할까요?” 오히려 되묻고 말았습니다. 제가 청소년기 읽었던 책들의 목록을 되새겨보니 부끄러움과 격세지감을 함께 느꼈지요.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과 지금, 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요? 사회의 요구가 변화한 걸까요? 콘텐츠가 많아진 걸까요? 아이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진 걸까요?      

 아이들은 새벽 2시, 더 나아가 새벽 3시까지도 공부합니다. 그리고 아침 7시에 일어나죠. 우수한 학생일수록 학원에서 메신저, 문자를 통해 공부·수면 시간까지 관리합니다. 어느 기사들을 보니 청소년기 권장 수면 시간이 10시간이라는데, 반에도 못 미치는 수면시간에 매달리며 공부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 반, 안타까운 마음 반입니다.      


 입시 전담 강사의 일정은 다른 과목 강사들과 정반대입니다. 수학․과학 강사들은 아이들의 내신 성적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리고자 시험기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지만, 입시 강사는 오히려 한가해지죠. 어차피 아이들이 최상위권의 내신 성적을 확보해야 입시도 이루어지니까요. 대신 시험이 끝나고 나면, 입시 강사들에게도 지옥문이 열립니다. 아이들의 성적에 따라 합격 가능권의 학교 목록도 꾸려야 하고, 개인별 전략도 수립해야 하며, 자기소개서부터 면접까지 각종 컨설팅을 진행해야 하고, 아이들을 독려하기 위한 심리상담까지 진행해야 하거든요. 그래도 아이들이 짊어진 ‘업무량’들을 생각하면, 간혹 일이 몰려도 불만을 내뱉기가 참 민망해집니다. 강사들은 시험기간이냐 아니냐에 따라 여유를 가질 수도 있잖아요. 아이들은 시험기간이든 아니든, 아주 잠깐의 여유조차 가지기 어렵습니다.  


 학원에 발을 들이기 전,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도 불이 켜진 학원 건물들을 보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 시간까지 집에도 가지 못하고 저곳에 남아있는 걸까, 상념에 빠지곤 했습니다. 발을 들인 지금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는 아이들의 혹은 학부모들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모든 노력들이 반드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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