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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Oct 22. 2020

2. 아이들은 분류된다.

[학원군상] 학원강사의 눈으로 바라본 아이들의 치열한 생존기

 아이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어떻게 변화해갈지, 그 자신조차도 예측할 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육기관에서는 아이들을 분류합니다. 성적에 따라, 성향에 따라. 지금 이 순간 교육의 편의를 위해서 말이죠.      


 제 업무에도 ‘분류 작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진로검사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대면 인터뷰 활용한 ‘대상자 분석’ 후, 아이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기관마다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만, 제가 일하는 곳의 경우 문과형 이과와 이과형 이과, 문과형 문과와 이과형 문과로 나눕니다. 문과형 이과는 전 과목을 고르게 잘하는 인재로 의학계열 진학에 유리한 성향, 이과형 이과는 순수과학형 인재로 영재학교나 과학고 진학에 알맞은 성향, 문과형 문과는 외고나 국제고 진학에 적합한 성향, 이과형 문과는 사회과학 연구 분야에 적합한 성향이다-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좀 더 상세한 분석을 거쳐 아이에게 적합한 전공, 학습 환경, 고등학교 진학 전략을 설계합니다.      


 대상자인 아이들은 고작 14살에서 16살. 지금 단계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감히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 예측할 수는 있습니다. 현재의 역량이 아닌, 성향과 성격, 습관을 통해서 말이죠.      


 진로검사로 다시 돌아가 보죠. 대상 학생의 진로 설계를 위해서는 학습 역량뿐 아니라 다양한 항목들을 분석하고 평가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시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바로 학교생활과 학습 습관, 그리고 자기 주도력입니다.      


 전 과목 성적 A 등급, 전교 1~2등을 다투고 수학 올림피아드나 각종 경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 대개 교육기관에서 규정하는 ‘우수한 아이들’입니다. 보통 아이들은 이해 조차 어려운 문제들을 척척 풀어내고, 한국어로도 설명하기 힘든 각종 시사상식들과 사회·과학적 지식들을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설명하는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모두 천재, 또는 영재들일까요?      


 물론 타고난 두뇌, 천재적인 순발력을 갖춘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다른 영역에서 우수성을 나타냅니다. 바로 ‘노력과 끈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부모님들이 지겹도록 강조해온 이 흔해 빠진 이 두 단어 말이죠.      


 최근 한 웹툰을 보다가 한 대사를 보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모르면 공부하면 되지.”라는 대사였는데요. 진취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학생의 성향을 단 두 문장으로 명확히 요약하면 딱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이들과 탐구 활동을 설계하다 보면 많은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중 가장 큰 벽은 생소한 지식의 높은 난이도이지요. 많은 아이들이 자료나 문제를 읽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그 난제들에 맞서, 어떤 아이들은 “일단 시간을 주시면 해 볼게요.”,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해 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합니다.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오류를 정비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갑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제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성장한 것 아닐까요?” “다음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으니 괜찮아요!”라며 웃어 보입니다. 그렇게 나아가다가 결국, 설령 완벽하지 않더라도 유의미한 결과물을 반드시 만들어내지요.      


 또한 호기심에 기반을 둔 자기 주도성도 매우 큰 장점입니다. TV를 보다가, 책을 보다가, 혹은 만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도, 이 아이들은 어떠한 주제나 소재에 호기심을 갖고 나면 반드시 답을 찾아냅니다. 몇 시간, 며칠이라도 매달려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뒤져보고, 논문을 찾아보지요. 이러한 경험은 모두 문제해결력의 향상으로 이어지고, 끝내는 ‘나는 무엇이든 도전하고 해결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 상승으로 연결됩니다.     


 현재의 모습이 반드시 그 사람의 완성된 모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경험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해갈 수 있는 존재이니까요. 그러나 어릴 때부터 다져온 습관과 성향은 고착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전 세대를 아울러 공감을 얻는 이유가 있지요.      


 모두가 ‘세상이 규정하는 우수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나는 존재이니까요. 다만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 살아가며 얻을 수 있는 작고 큰 성취의 경험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태도를 견지하며, 모든 아이들이 피할 수 없는 경쟁사회를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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