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대한 도발적이고 발칙한 이야기들
…그녀는 윤기 나는 입술을 살짝 벌린 채, 행복한 눈빛으로 얼굴을 환히 밝히고, 붙박이처럼 앉아 있었다.
- 넬라 라슨,『패싱』-
왜 입술이 ‘섹스어필’의 대상이자 주체가 된 걸까.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거나하게 취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부끄러운 탄성과 함께 신발 굽들을 바닥에 굴리다가, 이내 친구들은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점막과 얇은 겹으로 이루어진 피부라 다른 신체부위에 비해 민감해서, 입술은 대개 빨갛고, 빨간 색이란 전통적으로 ‘관능’을 상징하니까. 짧은 소란을 거쳐 다수의 의견은 결국 하나의 단어로 귀결된다.
입맞춤.
곧이어 친구들은 어린 시절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부터 가장 최근의 입맞춤까지 각종 ‘썰’들을 풀어내다가, 이제 곧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장님의 축객령에 자리를 떴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높은 굽의 구두에 실어 삐걱삐걱 움직여 겨우 집에 도착하고는, 가방은커녕 구두도 떨쳐내지 못한 채 현관문 앞에서 실신하듯 잠이 들었다.
반나절을 함께 하며 전쟁 속 포화처럼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내 머릿속에는 입맞춤이라는 한 단어만 남았다. 세수를 마치고 수건으로 얼굴 위 물기를 닦아내거나 화장하며 거울을 보면서도 나는 손가락들로 입술을 두드려 보곤 했다. 키스를 잘 하려면 먼저 손등에 입술을 대고 연습을 해 보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도 오발탄처럼 의미 없이 뇌리에 박혔다. 30대 초반이라는 나이까지 해 본 적도 없는 그 달콤한 행위에 대한 호기심이, 터지기 바로 직전까지 팽창해버린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고 만 것이다.
성애의 행위로서 붉은 관능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내는 키스의 기워은 의외로 소박하고도 숭고하다. 그릇이 없던 시대에 어머니가 어린 아이에게 입으로 물을 먹여준 데에서 입맞춤이라는 행위가 탄생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원시시대에 상대방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달콤한 애정이든 위험한 집착이든, 애정을 표현하면서도 신체 중 가장 감각이 예민한 입술로 상대방의 감각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동일하다. 가장 가까이에서 상대방의 페로몬을 접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행위자 간 정신적 일체감은 물론 유전적 호환성까지 얻을 수 있는 과학적 행위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진할수록 칼로리 소모가 커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애정 확인과 운동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제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키스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문학 작품들 속에서도 절정을 장식한다. 사랑의 종착지가 섹스와 결혼임을 생각해볼 때 이는 꽤 기묘한 귀결이다. 혹자들은 지극히 원시적 행위라며 섹스는 경멸하면서도 키스에는 기꺼이 환상을 품는다. 심지어는 나 역시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니 말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속 거꾸로 매달린 키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상징적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빗속 키스, <마이걸>의 풋풋한 프렌치 키스…영화 속 수많은 키스들을 보며 나 역시도 달콤한 입맞춤을 꿈꿨다. 오히려 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본 탓인지 첫 키스는 반드시 특별해야 한다는 결심까지 있었다.
그러나 서른셋에야 겨우 달성한 첫 키스는, 평범했다. 수많은 문학 작품들 속에서는 사랑하는 이와의 키스야말로 평생의 추억이며, 그날 날씨는 물론 공기의 흐름까지도 기억에 남는다고 극찬했건만, 나는 그저 드디어 첫 키스를 해냈다는 것, 그리고 그 상대가 지금의 내 남편이라는 것만 겨우 기억에 새길 수 있었을 뿐이다. 또한, 턱까지 흥건하게 만든 타인의 타액들도.
되돌아보며 생각건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란 선택받은 자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당첨률 0.00079%의 복권인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