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모든 전문직들이 객관성을 요하듯 좋은 영화평론가라면 영화가 본인의 감정을 터치하는가와 별개로 그 영화에 대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난 후자(해설)엔 재능이 있는 편이지만 감정을 터치하는 것에 대해 매우 약하기 때문에 좋은 리뷰어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되곤 한다. 이를 테면 테마파크와 같은 MCU 작품들에 대해 난 장점과 단점을 잘 꼽아낼 수 있다. 그건 지식이고 객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경삼림' 같은 서정적인 작품이나 '매트릭스' 같이 내가 사심을 품은 작품들에 대해 내가 그만한 양질의 장문을 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 내 감정을 매우 깊게 터치한 한 영화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 영화의 제목은 '택시운전사'이다. '택시운전사'는 5.18의 진실을 해외에 알린 독일의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의 실화에 기반하여 그를 광주로 나른 택시 기사 '김사복'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에서의 묘사와 달리 그의 실명은 김사복이 맞았음에도 힌츠페터 기자는 평생 그를 찾아헤매다 눈을 감았다고 한다.
하나의 작품 안에 이율배반적인 테마가 공존하는 경우가 있다. 택시운전사의 경우 5.18이란 역사 속 사건을 다루면서 드라마도 그려내야 했기에 '구조적 측면'와 '정서적 측면'라는 양가적 테마가 공존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양가적인 테마라고 무조건 무리수거나 모자람이 있는 작품은 아니다. 이를 테면 비디오 게임의 경우 장르 자체가 '스포츠'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이 공존하는데 '다크 소울' 같은 게임의 경우엔 스포츠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을 철저히 분리시킨 후 극대화시켜 높은 게임성을 이룩한 사례이다.
하지만 글쓴이에게 있어 시사적 한국영화라고 하면 구조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이 잘 융화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를 테면 '명량'의 막바지에서 박진감 넘치는 해전을 마무리하고선 후손들을 질책하는 식의 대사를 뜬금없이 던진 것도 그런 사례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본 시사적 한국영화들은 무작정 비판 대상을 악마화하고 과잉된 감정을 들이밀며 정답을 강요하는 영화들이었던 것 같다. 좋은 영화는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지 정답을 들이미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글쓴이는 그런 영화들을 멀리하는 편이다.
어려운 주제일수록 친근한 접근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택시운전사가 5.18이라는 어렵고 구조적인 주제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깊이있었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구조적 논의보다 정서적 공감을 우선순위에 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내내 드러나는 생리적, 생활적 감성이 그러하다.
인간은 의식주를 함께 할 때 상대에 대한 친근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낯선 이와 무언갈 논의할 때 식사자리를 잡곤 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영화에서도 인물이 먹거나, 자거나, 씻는 등의 묘사가 나온다면 해당 인물의 인간적인 면을 어필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인물이 먹고 자고 씻는 등 인간적인 생활상을 일체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건 해당 인물에 대한 관객의 이입을 저해하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배트맨 실사영화들에서 '조커'는 식사를 하지 않거나, 술담배만 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협하기 위해 쩝쩝거리며 음식을 먹는다. 조커가 그만큼 비인간적인 존재임을 어필하기 위한 연출인 것이다.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역시 영화 초반부터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를 나르며 싹싹하게 인사하면서도 택시비를 외상잡히거나 시위대에 가로막혀 툴툴거리는 주인공의 삶은 잘 짜인 유머이면서도 관객들로 하여금 안도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영화 중반에 대의를 위해 찾아온 힌츠페터와 딸 걱정이 앞서는 주인공은 치고 받으며 싸운다. 그러나 이들은 다름아닌 식사를 하고 재식의 노래를 들으며 친밀함을 회복한다. 힌츠페터를 놔두고 도망치듯 귀환하던 주인공이 마음을 바꿔 광주로 돌아간 것도 식사를 하다 주먹밥을 보곤 피살당한 시위대를 연상해서였다. 그때 주인공이 정부의 왜곡보도를 읽고선 분이 찬 듯 우걱우걱 식사하는 장면은 송강호의 연기력에 감탄한 장면이었으며 이 역시 생활적, 생리적 행위를 통해 깊은 이입을 유발한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상을 함께 하며 소중한 사람을 만들고, 잃는단 보편적 정서.
이 영화가 주인공을 묘사하는 방법도 비슷하다. 영화 초반 주인공은 생계를 방해하는 시위대에 불만을 가졌지만 정치적 스펙트럼은 딱히 없는 일종의 회색지대에 놓인 사람이다. 택시운전사가 주인공으로 하여금 비현실적으로 극단적인 사건을 겪고 비현실적으로 극단적인 개심을 시키는 영웅물적 이야기였다면 흔해빠진 시사 영화로 남았을 것 같다.
그러나 택시운전사는 그저 수입을 위해 광주라는 진실의 공간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기사가 운전을 못하고 기자가 취재를 못하는 일상이 무너지는 곳임을 깨닫는단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가 광주 시민들과 자신을 동치시킨 건 사상적 논의를 나눠서가 아니라 공짜 연료와 수리를 받고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절망한 힌츠페터를 일으켜 세울 정도로 각성한 건 '데모하려고 대학 들어갔나'란 말을 입에 달고 지내던 그가 '대학가요제'란 연결고리로 묶인 재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택시운전사가 구조적인 소재를 감동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건 큰것부터 접근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작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그것들이 무너지는 상황을 차근차근 묘사하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택시운전사는 생활적이고 생리적인 연출들을 통해 정치적 색안경이나 근심을 흐리고 힌츠페터와 김사복, 광주 시민들에 대한 인간적 이입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실제로도 역사적 논의가 아닌 이쪽이 감독이 의도한 바라고 생각된다.
추격씬에서의 긴장감은 광주에서의 일들보다 오히려 더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후반부의 자동차 추격씬은 꼭 필요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게 액션이란 건 위험하고 격렬하기 때문인지 구조적 테마를 극대화하는 데 더 어울리는 이야기방식이다. 그렇기에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테마에 집중하던 영화가 갑자기 추격씬을 삽입한 건 영화 전체의 밸런스와 감성을 무너트리는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광주의 다른 택시기사들이 주인공들을 호위하기 위해 희생하는 장면 역시 이전까지 광주 시민들의 호혜를 충분히 그려왔기에 불필요하고 되려 과했다고 느껴진다.
결국 가장 중요했던 건 두 사람의 우정.
어떤 이들은 택시운전사가 광주시민이나 5.18에 대해 그리고 있는 방식 때문에 이 영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글쓴이 역시 글 초장에 말했듯 이 영화가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불편할 수 있는 영화일까 염려한 바있었다. 그럼에도 택시운전사는 정해진 답을 제시하기보단 군부에 의해 죄없는 시민들이 피살당하고 일상이 붕괴됐단 객관적 비극에 초점을 맞춰 힌츠페터, 김사복, 광주 시민들의 드라마로 탁월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힌츠페터가 자신의 기자출입증 끈을 풀어 주인공의 가족사진을 걸어주는 장면은 두 사람의 생사를 오갔던 고생을 연상시키며 그 우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글쓴이는 얼마 전 '그린 북'이라는 영화를 보고 감동한 바 있는데, 택시운전사 속 두 사람의 우정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딸의 신발을 전달해주길 포기하고 광주로 돌아온 주인공이 숨진 재식의 시신에 신발을 신겨주는 장면은 내 일 같은 슬픔을 느끼게 하였다.
큰 사건은 큰 사상이나 몇몇 영웅들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 안엔 항상 하나 하나의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겪은 사건들에 대해 자신이 겪은 것처럼 이입하고, 감정을 느낀다. 때로는 그것이 트라우마일 때도 있다. 5.18 같은 배경을 둔 영화에서 트라우마만 강조했다면 그건 앞서 내가 말한 '과잉된 감정을 들이미는' 이야기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택시운전사'는 좋은 점도 함께 보여준다. 광주 시민들이 힌츠페터와 김사복에게 배푼 호혜는 비극적 사건과의 낙차를 위한 트리거가 아니라 그저 그대로 좋은 것이었다. 힌츠페터와 김사복의 우정도 그러하다. 그 우정이, 소용돌이치는 역사를 아우르며 단순한 우정이 아닌 더 훌륭한 사람들의 더 깊이있는 우정으로 호소력있게 승화된다. 결국 택시운전사는 한 기사와 한 기자의 이야기였다. 특정한 영웅의 이야기도, 역사적이고 사상적인 논의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는지 모른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차를 타는 하나하나의 '우리'들 말이다. 택시운전사의 제작진은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