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창작물을 바라볼 것인가
게임이라는 단어는 본래 유희, 경기, 승부 등을 뜻하는 폭넓은 의미의 단어이다. 예를 들면 '퀸'의 노래 Play the Game의 가사에서 Game은 사랑을 빗댄 것인데 여기서 게임은 비디오 게임이 아닌 놀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게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로 비디오 게임을 의미하는데 이는 Game의 다른 의미들은 경기, 놀이 등의 한국어로 존재했지만 비디오 게임만은 해외에서도 한국에서도 생긴 지 얼마 안된 신선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오락 등의 대체어가 존재했지만 게임이란 장르가 안착되고 있는 현시대에 게임이라 하면 단연 비디오 게임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무언갈 '좋고 나쁨'으로 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치란 상대적인 것이며 세상의 모든 것엔 이모저모 이해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집단 내엔 그 집단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관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고, 한국이란 집단의 가치관에 있어서 비디오 게임은 '나쁘다'는 인식이 꽤 오랫동안 있어왔다.
게이머(비디오 게임을 향유하는 이들)의 한 명으로 살며 게임의 부정적인 영향을 온몸으로 맞은 글쓴이 역시 그토록 애정하는 비디오 게임에도 위험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게임은 책이나 OTT, 유튜브에 비해 몰입감이 대단하기 때문에 중독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전혀 중독적이지 않고, 위험한 소재가 다뤄지지 않을 '안전한' 예술장르가 어디에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쓴이는 영화나 TV 쇼, 만화가 그런 길을 걸어왔듯 게임도 인기와 논란이 모두 가라앉으면 자연스레 예술의 한 축이 되리라 전망한다.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해 말한 것인데, '게임도 교육적이다' '산업의 한 축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한다' 등의 피상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고자 한다.
잠깐 화제를 돌려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필자가 사랑하는 슈퍼 히어로, 블록버스터 장르를 비롯해 많은 대중영화들이 오락을 위해 제작된다. 최근 잘 알려진 개념으로 말하자면 '도파민'을 유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정점은 80년대라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등의 영화를 보면 2편에서 주제를 심화시키고 3편에서 주인공의 개인사를 다루며 마무리짓는 등 현대의 시리즈물들에서도 보이는 형식이 이미 갖춰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 21세기 프랜차이즈의 정점에 있었던 MCU의 마블 스튜디오 역시 '스타워즈' 시리즈를 롤모델로 하고 있다 언급한 바 있다.
이렇듯 오락영화 중엔 분야 전체에 영향을 끼친 '스타워즈'나 '인디아나 존스' 등의 걸출한 작품들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오락의 반의어로서 '예술'을 사용하여 예술영화라는 것이 존재한다 가정한다면 어째서인지 예술영화보다 오락영화가 급이 낮은 장르로 여겨질 수도 있다. 게중엔 더 나아가 대중의 기호를 겨냥한 오락영화와 창작자의 소신을 표현한 예술영화 간에 무너트릴 수 없는 작품성의 벽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실재한다고 본다.
하지만 글쓴이의 생각은 다르다. 이를 테면 (다소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못 만든' 예술영화보다는 '깊이있는' 오락영화가 훨씬 훌륭한 영화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스타워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아이러닉한 관계를 그려내는 방식이나 인디아나 존스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어린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성배에 대한 갈망을 떨쳐내고 보내주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형식적인 미를 넘어서 삶이나 세상에 대한 깊은 생각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스타워즈'나 '인디아나 존스'의 핵심이 예술성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들의 핵심은 모험, 액션, 그리고 시각화된 것을 통한 신선한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영화들은 도파민을 유발하는 오락영화로서 기획됐지만 부정할 수 없는 명작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떤 고전이든 오락을 위한 측면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는 현대로 치면 '루크 스카이워커'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액션 히어로였다고 할 수 있으며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상세하게 묘사하는 서술방식도 '아이언맨'에서 슈트를 입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듯 영상매체가 없던 시절 시각화를 통해 충격을 주는 기법이었을 것이다. '홍길동전'이나 '장화 홍련' 같은 한국의 고전소설도 그 기획의도는 서민 혹은 양반 계층을 노린 장르소설이었다.
그렇다면 우린 영화에 있어, 더 나아가 모든 창작물에 있어 어려운 철학이나 이해하기 힘든 정서를 담는 '예술작품'인지의 여부는 그 작품의 작품성과 전혀 별개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비디오 게임의 얘기로 돌아오자면, 비디오 게임의 역사와 소비되는 방식을 볼때 그것은 감각적인 쾌감(스포츠성)을 추구한 오락물에 근본을 뒀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2010년대를 전후하여 불었던 '영화 같은 게임'의 붐이 꺼진 후 게이머들은 '게임은 예술이 아닌 재미를 추구하는 걸 최우선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비디오 게임은 태생적으로 오락물의 성격이 있단 것이다.
그러니 액션 어드벤처든, 호러든, 드라마든간에 20세기에 창작된 수많은 오락영화들이 현대의 영화문화에 전반적 영향을 끼치며 영화문화의 주요한 축이 됐듯 미래엔 비디오 게임이 예술의 한 장르로서 영화처럼 공고한 기반과 확고한 지지를 얻을진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일런트 힐 2', '바이오쇼크',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이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일반인들에게 어필할만큼 훌륭한 작품들이 존재하기에 그렇지 않으리라 여기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할 수 있다. 즉 좋고 나쁨을 따지자면 게임은 '결코 나쁘지 않은' 장르라고 글쓴이는 결론짓고 싶다.
마지막으로 글쓴이가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통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이동진 평론가의 주영역인 영화에서도 영화를 위험한 매체로 여기며 규제해야 된다는 이들이 있다. 여기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는 자신의 입장을 말하며 '식칼과 마약'의 비유를 들었다. 식칼과 마약은 모두 위험한 물건이지만 요리를 하거나 의료활동에 쓰이는 유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식칼은 유용성이 더 크기에 금지하지 않고, 마약은 위험성이 더 크기 때문에 금지한다. 이동진 평론가는 자신은 영화를 마약이 아닌 식칼로 보는 입장이라고 설명했으며 필자도 영화나 게임 같은 창작물들에 대해 이들은 '식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세상을 위험성이 큰 마약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유용성이 큰 식칼로 인식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넓은 인식의 지평과 마음을 가지고 삶에 임하고 있을진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