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한 발짝 떨어져 서면 보이는

수험일기 20032023

by 필명이오

인간은 항상 지금 내가 가장 힘든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아갈 겁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제일 힘들고, 19살 봄을 살았던 저를 이제 돌아보면 뭐 그리 힘들었을까 싶어요. 사람이 이래서 간사하죠. 드라마의 답답한 장면도 결말을 알고 보면 버티기가 덜 힘든 것처럼,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20살의 저까지는 전개 상황을 다 알고 보니 19살의 제가 20살을 살아가는 저보다 고통이 덜한데도 못 이겨내는 것으로 보였어요.


제가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내가 나를 볼 때 하는 생각이 어떤 문장의 형태로 끝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과거의 저처럼(때때로 지금도 그렇긴 합니다만) ‘?’로 끝나는 문장이 연속적이라면 좋은 신호가 아니라고 봅니다. 공부할 때 학습 내용에 붙이는 물음표는 이해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학습 내용을 본인이 이해하지 못할 때 ‘내가 왜 이것밖에 못하지?’라는 자기 의심으로 시작된 자기 비난이 타인의 비난보다 학습에 매우 치명적이었습니다. 자신마저 스스로를 비난해버리면 타인이 자신을 비난할 때,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비난을 부정할 의지조차 사라진 상태이기에 데미지를 온전히 받게 되죠. 본인이 스스로의 적이 되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결국에는 내가 사라진 기분 때문에 뭐 하나라도 시작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머릿속에서 서술하는 문장이 ‘!’로 끝나면 매우 좋겠지만, 적어도 ‘.’으로는 끝나도록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겨우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죠. 스스로 덜 상처 입히고, 자신한테서 상처받았다면 빨리 치유하는 태도로 바꾸려 노력하고, 다시 평온한 상태로 회복하도록 꾸준한 노력을 아직 연습하는 중입니다. 자존감이 무너진 상태에서 ‘나는 너무 잘해! 내가 최고야!’까지 단숨에 가기는 힘들더라도, ‘나는 이거를 좀 더 잘해.’, ‘나는 이런 종류의 일을 할 때 잘하지는 못해도 즐거워.’, ‘그동안 못 풀었던 이 문제를 오늘 처음으로 해결해서 좋았어.’라고 하나씩, 차근차근, 에너지로 모아 가고 있습니다.


‘자기혐오’에 빠져서 사는 것보단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사는 것이 본인을 생각하면 훨씬 나을 겁니다. 나르시시즘은 본인을 생각하면서 살기라도 하는데, 자기혐오는 평생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동반자로 살다 제자리로 가야 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저도 공부하면서 자기혐오에 빠져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정작 나를 이 상태로 몰아넣고 괴롭힌 사람은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잘 살고 있을 텐데, 그 사람의 의도대로 살아주는 게 싫어서라도 빠져나와야 했죠.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면 더 괴롭죠. 저는 보통 처음에는 다 잘해주려 하는데도 반응이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제가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생이라면 그 사람이랑 학교에 있는 동안 계속 같은 교실에 묶여 있어야 하고, 운이 없으면 조별 활동까지 같이 해야 해서 미치기 직전일 겁니다. 직장인이라면 아직 제가 겪어본 세계는 아니더라도 주변 어른들의 경험을 통해 짐작해 보자면, 항상 얼굴 보면서 같이 하고, 생계 때문에 휙휙 이직할 수 없으니, 어쩌면 학생 때보다 더 힘드시겠죠.


제가 고등학생일 때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저런 상황에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 ‘저 사람이랑 부대끼며 일은 해야 하는데, 장점이라도 눈에 보여야 그나마 정이 생길 것 같아. 저 사람은 어떤 장점이 있지?’라고 직접적으로 생각하니 당연히 ‘저 사람은 왜 저렇지?’라는 생각만 하면서 장점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조금 사고를 틀어서 ‘저 사람 곁에 아직까지 사람이 남아 있는 이유는 뭐지?’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아! 이 사람이 이런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구나!’하고 좋은 면이 잘 보여서 서로 적대 관계는 되지 않았습니다. 한 발짝 떨어져 섰더니 감정적으로 차분하게 정리가 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더라고요. 질문의 결이 바뀌니 답문의 종류가 ‘?’에서 ‘!’까지 바뀐 것이죠.


여러분도 마음 같아서는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좋게 좋게 지내야 한다면 저처럼 한 번만 해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이렇게 생각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과 일하며 생길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것에 힘 빠져서 집중력만 낮아졌는데, 이제는 ‘세상은 내 생각보다는 단순하니 상상을 줄이자!’는 긍정적인 방향의 사고로 나아졌어요.


‘나’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잠깐 미워졌다 해도, ‘내가 그렇게 밉게 생각하는 내 옆에는 왜 아직까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남아있지?’라고 한 번만 생각해보면 점점 괜찮아지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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