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명이오 Jun 06. 2023

고양이한테 살림살이 맡기기

이 또한 집사에 대한 애정 표현이구나




 “신입! 멀쩡한 휴지를 다 뜯어놓으면 어떡해… 엄마 보면 언니도 혼난단 말이야…”


 신입이가 패드에 오줌을 싸면 엉덩이를 닦아주려 꺼내 놓았던 휴지를 다 물어뜯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초바는 뒤에서 뱃살을 드러내고 꿈나라에 갔다.





 정말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표정이다. 신입이는 나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해서, 항상 내가 씻을 때 거실이나 내 컴퓨터방에 있는 휴지를 화장실 문 앞으로 물어 온다. 그리고 패드에 게으른 집사를 위한 일거리를 만들어 놓는다. ‘집사가 화장실을 들어가면, 나도 화장실을 가겠다.’라는 뜻일까? 씻고 나와서 신입이의 사건 현장을 발견한 집사… 젖은 머리를 말릴 새도 없이 찝찝하게 옷을 입고 뒷정리를 한다.


 “아엉~ 아우우웅~ 아아아아엉~(너 없는 동안 열심히 사냥해 왔다는 뜻) 움냠!(집사를 발견하고 화장실 문턱을 넘으려 한다.)”


 “어… 신입, 사냥해 왔어? (궁둥이팡팡) 고마워. 오줌은… 언니가 치울게.”


 남은 휴지는 그냥 버리기 너무 아까워서 패드 밑 방바닥에 샌 오줌을 닦을 때 뭉쳐서 쓰고 있지만, 가루가 너무 떨어지고 낭비가 심하다.



 근엄하게 앉아 공부하는 집사를 지키고 있는 신입이 왼쪽에 뭔가 보인다면, 그것 역시 신입이의 작품이다. 벽지 구멍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스크래처도 집사들의 살림살이를 이길 수는 없는 법. 이제는 막내 요뜨까지 엄마냥 신입이를 따라 벽지를 긁고 있다. ‘고양이 싫어’ 염불을 외는 엄마 집사의 마지막 믿음이었던 요뜨도 결국 고양이었으니…



 게다가 요즘은 아이패드 위에 자꾸 올라가서 문제다. 자세히 보면 아이패드 케이스, 사고뭉치 고양이들의 관절을 위해 새로 산 매트 위에도 스크래치 흔적이 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매 순간 느끼지만… ‘얘가 왜 이럴까? 얘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고칠까?’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포기하고 뒷정리를 잘해주는 것이 좋더라. 사람 아기는 키워놓으면 발전이 있고, 부모보다 더 오래 사니까 사회화 목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고양이는 집사랑 평생 살고, 내가 보여주는 세계가 얘의 전부이기 때문에, 건강 관리 목적이 아니면 고양이가 싫어하는 것은 존중하려는 편이다.


 그리고 고양이의 입장에서 그 행동이 무슨 의미였을지 집사로서 한 번 알아봐 줘야 고양이가 서운하지 않다. 신입이도 알고 보면 집사를 너무 사랑해서 휴지도 물어 오고, 집에 영역 표시도 하고, 공부할 때 옆에 있으면서 나 좀 봐달라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행동은 신입이의 애정 표현이라는 증거. 하루의 마지막에 집사가 지쳐서 누우면 재빨리 옆으로 다가와 따뜻한 체온을 나눠준다. 어쩌면 내가 신입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신입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클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