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꾸준히 찾아가고 있습니다
수능 몇 달 전부터 ‘행복해지기’라는 제목으로 아이패드에 메모를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평생 숙제인 ‘행복하게 살기’는 몇 년 동안 끊임없는 입시 스트레스로 미쳐가던 저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삶이었죠.
‘버킷리스트’가 아직은 못 해봤지만 현재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제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세웠던 ‘학습 계획표’라면, ‘행복해지기 메모’는 제가 뭘 할 때 좋아했는지 ‘나’를 기준으로 작성한 ‘학습 점검표’라고 할까요? 실제로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채워가서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제 인생의 숙제 검사입니다.
그렇게 모아간 메모가 지금 30가지 정도 됩니다. 이것이 있기 전과 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만족도 차이가 큽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기분이 안 좋으니까 오늘 뭐 먹고 풀어야지. 근데 왜 기분이 좋아지기는 커녕 이렇게나 찝찝하지?‘라고 마음속에 응어리가 졌는데요.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러한 종류인데 오늘은 이만큼이나 했어! 나는 이것으로 확실히 행복해진 거야!’라고 해소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지 않은 세계에 대한 갈망과 동경이 저를 이끄는 힘이라면, 이미 해본 행복한 경험은 제가 앞으로 나아가다 지칠 때 넣어주는 확신의 연료인 셈이죠. 필요할 때마다 연료 목록들 중에 하나씩 채워주면 효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하는 제 인생 지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께 그 목록을 공개할까 합니다.(버킷리스트처럼 제가 혼자 본다고 생각해서 편하게 쓴 급식체가 섞여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1. 그레이 아나토미 보기
의학 드라마인데 에피소드마다 인턴들이 성장하는 과정이나 사수들의 고민에서 인생 교훈을 보여주고 있음
2. 고양이들이랑 놀기
3.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주변인이랑 전화하기
4. 친구랑 만난 김에 산책하기
주로 번화가~집 근처 코스
5. 콜라 마시기
소화계가 약해진 후로 잘 못 먹겠어
6. 엄마랑 장난치기
근데 엄마가 나 많이 커서 징그럽다고 싫어함 굉장히 귀찮은가봄
7. 동물농장 보기
집에 동물이 있어도 항상 새로워
8. 피상적으로만 느껴졌던 수학 개념이 확 와닿은 순간
합성함수 극한을 대중교통 환승에 비유하다니… 나는 천재야(나르시시스틱)
9. 경험을 일반화해서 글쓰기
‘인생과 인간관계는 기출변형이다’
10. 좋았던 순간을 회상하기
어릴 때 갔던 여행, 처음 게임기가 생긴 날, 외삼촌들이랑 시골집에서 포대 썰매
11. 미스터 비스트 영상 보기
내가 상상까지만 했던 일들을 콘텐츠로 실행하는 재력ㄷㄷ
12. 짱구 추억의 에피소드 보기
근데 이건 좀 답답한 에피는 끝까지 보기 힘들고, 만화니까 새로운 에피라도 결말이 예상된다는 단점이 있음
13. 인강 하나 끝까지 봤을 때 순간적인 쾌감
완강에만 집중하는 병이 아니라서 더 콘텐츠를 잘 뽑아 먹었다는 성취감
14. 새로운 게임기/게임팩 사고 기다릴 때
막상 오면 전시만 해놓고 잘 안 함;;; 시간 없어
(22.11.21) 내가 논술을 치러 간 사이 예약 구매한 게임기와 게임팩이 또 왔다. 상태만 확인하고 에어캡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옷장 밑 칸이 닌텐도로 꽉 차서 더 이상 넣을 곳도 없다.
15. 어릴 때부터 모아놓은 게임기 보기
옷장 밑 닌텐도는 국룰이다
16. 정성이 상당히 필요한 요리하기
양파 캬라멜라이징해서 카레를 만든다거나… 최근에 한 볶음우동도 괜찮은 듯? 사리 없을 때는 덮밥으로 대체
중3 때는 오믈렛 동그랗게 하는 거에 꽂혀서 계란마아아아안 계속 먹었음
17. 백현 노래 듣기
라이브가 더 좋아! 특히 백현 김채원 밤비 매쉬업 레전드
18. 버킷리스트 쓰기
나중에 나도 모르게 이룬 것들로 채워져 있더라고?
19. 초코우유 마시기
이것도 마시면 속이 너무 안 좋아
20. 에세이 쓰기
언젠가는 출간할 수 있겠지?
21. 안무 따기
취미로 운동까지 해결되는 일석이조. 고양이들 관절 때문에 집에 아기 매트가 깔려 있다. 얘들아 덕분아 집사가 잘 쓰고 있다. 근데 너무 자세히 따려면 일처럼 느껴져서 흥미 떨어짐. 그냥 즐기면서 따라 하다 보면 점점 비슷해짐.
22. 거울 보기
정승제 생선님께서 강의 중 언급한 방법. 공부하기 싫을 때 거울을 보자.
자기 암시가 중요함
기이부우우니가 좋아진다
23. 스트레칭 하기
턱관절 위주로 안 해주면 밥 먹을 때 삶의 질이 떨어짐
24. 버즈로 노래 들으면서 리듬 타기
자존감 올라감ㅋㅋㅋㅋㅋ
25. 패드 카메라로 장난치기
고양이랑 셀카를 찍는다거나…
26. 거실 티비로 노래 틀어놓고 청소/설거지 하기
단순 노동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로는 공부할 때 안 풀리던 부분을 생각하면 이럴 때 풀리는 경우가 많음
27. 시험이랑 상관없는 가벼운 공부
관심 있는 언어 하루에 단어 하나 정도나 본질이 담겨 있는 고사성어
시험이랑 관계없어야 하는 이유는 계속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순수한 학구열을 느끼고, 오히려 시험 준비하는 공부를 다시 집중하게 해 줌. 책상에 앉게 만드는 촉매 같은 느낌?
28. 여행 유튜브 보기
빠니보틀, 곽튜브, 여행가 제이…
29. 여행사/항공편/숙박 예약 어플 들어가서 대략적인 여행 구상하기
‘딱 맞춰서 이렇게 해야겠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 정도 날짜는 여유 있지 않을까?’, ‘예산은 이만큼이고 성수기/비성수기 합리적 가격은 이 선이다.’, ‘이것도 이렇게 하고 싶어.’ 등 생각해보기
30.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써준 롤링페이퍼/생일 편지 읽기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 나는 누구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음
31. 혼자만 보는 Vlog 만들어서 보기
그냥 영상 원본만 보는 것도 나를 3인칭으로 보니까 꽤 신선하고, 빠니보틀 여행기처럼 자막 정도만 편집해도 과정도 재밌고 결과물도 진짜 유튜브 보는 것 같아서 좋음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찍어도 좋지만 일상도 찍어보면 나혼자산다 같아서 ㅋㅋ 괜찮음
(22.11.27) 입시 일정 때문에 서울 올라갔을 때 찍은 영상이 몇 개 있다. 물론 부끄러워서 나 혼자만 봐야 한다.
32. 예쁜 건축물/야경 보기
나도 나중에 저런 건물 사야지 하는 야망이 있다
15살에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 잊지 못함
그 안에 있는 카페에서 아이스초코라떼 테이크 아웃해서 평소에는 더러워서 안 앉는 데크에 앉아서 홀짝홀짝 마시던 여행자 모드ㄹㅈㄷ
투명 관람차도 바다 잘 보여서 좋았음
33. 적당한 저녁~밤에 산책하기
평소에는 광안리 코스
34. 코인 노래방 가기
혼자 가도 노래 연습(ㅋㅋㅋ 그것도 연습이냐?)하기 좋고 친구랑 가면 재밌음
친구가 노래 부르는 동안 리듬 타면서 인기차트 스크롤 계속 내리기 국룰
35.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제품으로 구매하기
얼마 전에 대연동 아트박스에 갔는데 짱구 노트북 파우치가 예뻐 보였음 마침 아이패드랑 키보드를 넣을 파우치가 필요했지만 가격이 오프라인이라서 조금 비쌌음 주식 단가 높게 사는 것 같아서 갑자기 절약 모드 하지만 곧 살 예정 이런 거 사면 실용적인데 귀엽고 어릴 때 재밌게 보던 추억 때문에 기부니가 좋아
(22.11.27) 이미 짱구 파우치 사서 아이패드 잘 넣어 다니고 있음. 이번 입시 일정 투어를 할 때 아주 유용했다.
36. 컴퓨터로 달의 연인 틀어놓고 패드로 에세이 쓰기
-
독자분들도 오늘부터 하나씩 써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그냥 평소처럼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이 글이 떠오르셨다면 ‘나는 출근해서 마시는 커피로 행복해진다. 무슨 원두를 몇 대 몇 비율로 섞는 것이 내 취향이다.’ 이렇게 본인만의 루틴이 어떤지 짧은 코멘트도 달면 좋습니다.
p.s. 사실 며칠 전부터 시간이 생겨서 학창 시절 친구들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어요. 친구들도 입시를 겪었으니 글 모니터링을 부탁할 겸 제가 필명25라는 것을 알렸는데요. 편하게 쓴 목록을 공개하니 아는 사람들이 볼까 굉장히 부끄럽네요 ㅎㅎ 이 글을 통해 누구 하나라도 행복하면 좋겠어서 솔직히 공개해봅니다. 제 글을 본 분들은 모두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