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의 꿈일기를 다시 읽으며, 그 시절의 나를 복원해 본다.
암호로 남은 아이
2007년에 내가 어땠는지, 이미 너무 오래 지나간 이야기라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게 남아 있는 기억과 꿈의 단편적인 조각들을 통해, 그 시절의 ‘아이’를 유추할 뿐이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가장 크게 남아 있는 기억은 엄마를 잃을 뻔했다는 큰 두려움과 유난히도 비밀스럽게 적혀 있던 문장들이다. 아마 그때의 ‘그 아이’만이 그것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2007년의 꿈일기들은 죄다 암호에 가깝다. 아마 그때의 그 아이가 아니면 정확히 알 수 없는 말들이 많다. 지금의 나로서는 해독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대부분이고, 그땐 싸이월드에 일기를 공개적으로 올리던 시절이었던지라 더더욱 타인이 알아보지 못하게끔 적어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어도, 그 해독하기 어려운 잔감정들만은 어렴풋하게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반복되는 그 아이의 감정들은 대부분 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 두려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의식, 그리고 사랑받고자 하는 아이의 갈증과도 같은 덩어리들이었다. 아빠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감정, 멀어지고 새로이 가까워지는 친구들의 흐름, 엄마의 건강 상태에 대한 걱정까지. 그 모든 것이 뒤엉켜 있었던 것이다.
2007년 하반기의 꿈들은 대체로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슬픔, 나라는 사람은 모두에게 안중에도 없다는 감각, 피와 두려움의 충격, 외롭고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혼자인 쪽이 편하다고 결론짓는 마음. 내게 일어난 일련의 학창 시절의, 청소년기의 기억들은 그렇게 터놓고 적기엔 너무 부끄럽고 위태로웠던 나머지, 꿈속에서 피와 목격과 질투와 이상한 아이들의 형태로 돌려 적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07.09.24
엄청난 꿈이었다. 얼마나 질질 짰는지 모르겠다.
늘 그렇듯, 꿈이라는 것을 알아채고서도 꿈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써도 절대 깰 수 없어서.
감정태그는 아쉬움과 슬픔.
청소년 시기의 나는 이상하게도 꿈속에서 꿈인 걸 지금보다 더 잘 알아차리곤 했었다. 그래서 ‘늘 그렇듯’이라는 말을 썼었나 보다. 꿈이라는 걸 알아차리고도 끝내 빠져나올 수 없어서, 그 자리에서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맞이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청소년기의 꿈은 무한 루프가 되는 꿈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안에서 나는 필사적이었지만, 꿈인 걸 알고 있을 뿐 제대로 그 상황을 다룰 수는 없었다. 꿈은 늘 나를 어딘가에 붙잡아두었고, 잠에서 깨고 나면 땀범벅이 된 채 그 꿈속에서 당한 일들을 되짚으며,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지도 알 길이 없어 괴로워만 했던 것 같다.
2007.11.20
꿈, 하치, 울 수밖에.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새삼 알았지.
심장이 차갑고 딱딱해졌다.
감정태그는 아쉬움과 그리움.
이 시기의 꿈들은 유난히 관계에 대한 상처를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보다도, 아무렇지 않게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 되는 일이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건 단순히 서운한 일이 아니라, 내 존재감이 통째로 지워지는 기분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꿈에서 제일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울음보다도 그다음의 감각이다. 심장이 차갑고 딱딱해졌다는 말. 상처를 받으면 무너지는 대신 얼어붙어버리는 쪽에 가까웠다는 걸, 그 문장이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명확하게 해독할 수 있는 암호문이다. 꿈의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이 기록이 내게 아주 많이 소중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단짝 친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 친구와 나는 야자와 아이의 『나나』라는 만화책을 좋아했었고, 나는 그 애를 하치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스무 살이 되면 『나나』에 나오는 것처럼 멋진 어른이 되어 살 수 있기를 꿈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막장이 따로 없는 스무 살 철부지 락커가 되길 희망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 시절엔 나나가 그렇게 멋져 보였다. 그래서 그 두 나나처럼 모진 풍파 속에서도 멋진 스무 살을 함께 보내길 바랐던 첫 친구에 대한 꿈이었나 보다.
그 당시 우리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멀어졌기 때문에, 내게 남은 것은 꿈속에 찾아오는 그 친구와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들이 전부였다. 싸이월드로 그 친구를 염탐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자주 연락을 하지는 않아도 자잘한 근황 정도는 알고 있고, 여전히 내게 소중한 기억을 선물해 준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2007.11.28 - 11.29
기분 나쁜 찐득한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지는 소리, 핏방울들이 피부에 닿는 느낌과 진짜 같은 냄새에 쇼크. 난 그 꿈속에서 수많은 목격자들 중 하나. 살면서 꿈을 많이 꾸지만, 꾸고 나서는 대부분 잊어버리는 꿈이 많은 편인데 이런 식으로 자꾸 기억에 남는 꿈이 있다. 혹시나 있을까 싶어 들어왔지만, 없다.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감정태그는 두려움.
어떤 사람이 피 흘리는 게 무서워 도망가는 꿈. 크게 벌 수 있는 돈을 안타깝게 놓치게 되는 꿈, 기회를 놓치는 꿈. 타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꿈. 지금의 트러블이 좀처럼 뛰어넘을 수 없다는 불안을 나타낸다. 사람이 죽어 선혈이 낭자한 꿈, 큰 재산을 모을 꿈이다. ㅅㅂ 셋 다 맞는데? 뭘로 해석해야 되냐.
감정태그는 무서움과 두려움.
전날 꿈과 이어지는 꿈인 건지, 키워드는 피라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다. 이 꿈들은 아마도 내용보다 감각이 더 중요한 꿈이었나 보다. 소리와 촉감, 냄새 같은 것들이 유난히 디테일하게 적혀 있다. 이때의 나는 어떤 11월을 보내고 있었기에 이런 꿈을 꾸었을까. 다른 일기장을 뒤져보아도 명확한 단서는 없어 보인다. 단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뿐이다.
어떤 사건 현장 속에 목격자인 내 모습을 남겨둔 것은 그나마 고마운 단서다.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상상을 해볼 수 있으니. 그리고 이때의 이 아이는 꿈해몽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았네. 셋 다 맞는다는 얘기를 하는 걸 봐선, 누군가가 피 흘리며 죽어갔고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도망치는 꿈이었다는 건데, 이때의 나는 무슨 일을 겪고 있었기에 이런 꿈을 꾸었던 걸까. 조금만 더 디테일한 앞뒤 상황이 남겨져 있었다면 좋았을 테다.
짧은 욕까지 적은 걸 봐선 꽤나 많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꿈이 말해주는 무의식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하는 모습이 역시 나답다는 생각도 든다. 악몽을 그저 악몽으로 흘려보내지 못하고, 현실 속의 나를 어떻게든 해석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인다.
2007.12.06
잔뜩 으르렁 대고는 학교 안 갔다.
꿈을 꿨는데, 내용이 참. 요새 꿈들이 이상하다.
항상 그렇게 전개가 되면, 나는 질투를 하게 되고 동시에 커다란 쓸쓸함이 자리 잡게 된다.
혼자인 게 최고야, 혼자임이 좋아,라고 말하지만 그때만큼은 손에 쥐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쓸데없는 집착임을 알아서, 감정을 제대로 구분을 못 해내거든.
그래서 결국 혼자인 게 편한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애초에 그런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없도록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일 말이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모두 항상 결론지어 버려, 한 감정으로 연결해버리거든. 그렇지만 나는 그래.
다른 것에 모두 타협하는데도, 이것만큼은 타협할 수가 없다.
감정태그는 질투와 외로움.
이 기록은 그 아이의 특정한 시기에 꾸었던 꿈들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최근에 꾼 꿈들에 대한 소회이기도 하고, 어떤 힌트들을 얻을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혼자인 상태가 좋다고 스스로를 세뇌하지만, 사실은 그것과 정반대의 마음, 누군가를 원하는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 드러나 있어 귀엽다고도 생각했다. 이때부터도 나는 혼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왔구나 싶기도 하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겪어가며 나는 어른이 되었고, 나이를 먹어왔구나. 어린 날의 나 또한 치열했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든다. 코어는 변하지 않네. 모든 감정을 한데 이어 붙여 하나의 덩어리로 이름 붙여 삼켜버리는 방식 또한 나답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원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수능이 지나 자유롭게 학교를 빠져버린 방탕아 같은 모습도 겹쳐 보인다.
2007.12.08
일부러 오전에 일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잤다.
꿈속 대화에 너무 빠져버렸나 보다.
일어나자마자 엄마가 미리 해둔 하이라이스를 데우려고 불을 켜고 씻으러 갔다 왔다가, 탄 하이라이스의 지글거리는 소리,
“타고 있어!!!! “라고 엄청나게 타는 냄새를 내는 하이라이스에 물 붓고 욕하고 그래도 먹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꿈속에서는 무진장 예쁘게 생긴 서양 남자애가 나왔다.
그 아이는 내 품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바로 옆에 서서 멀뚱 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는 S가 거슬렸지만, 열심히 그 아이와 노느라 바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답답해진 나는, 멀뚱하게 서 있는 그 애에게 아이를 간지럽히며 “넌 왜 여기 있는 거야?”라고 물었다.
“날 불렀으니 내가 네 꿈에 나온 거겠지. 인사해, 얘는 기억.”
손가락으로 남자애를 가리켰다. 이 아이가 외롭다고 했어. 너답지 않게 놀러 와주지 않는다고. 순간 머릿속에 든 농담이 “애까지 있엇! 이혼한 사이냐?!”였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별로 뱉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으므로 pass.
참 맹숭맹숭하고 건더기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쉽게 꿀 수 없는 꿈이지? 참 여러 가지 한다.
감정태그는 외로움과 자기애.
이 꿈은 정말, 이런 장면도 꿈에 나오는구나 싶었던 기억이 나는 꿈이긴 하다. 이때 즈음 아마 영화를 한창 볼 때였는데,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보고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소년이 너무 아름다워서 인상 깊게 남았던 건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혹은 고등학생 때 일본 문학도 많이 읽었으니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아 이런 꿈을 꾸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좀 오글거리는 대사를 주고받는다고 생각되지만, 이것 또한 그 나이대라서 가능한 꿈이었겠거니 싶다. “너답지 않게 놀러 와주지 않는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는다. 외로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꿈속에서 인물의 형태로 나타난 장면과도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 또한 공감한다.
2007.12.13
꿈이란 참 사람에게 여러 가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요새 자꾸 여러 가지로 특별한 꿈들을 많이 꾼다.
그러니까 금방 잊어버릴 꿈이 아니라, 계속 기억에 남는
미묘한 꿈들이 기억에 남는단 말이야.
이 짧은 기록은, 어쩌면 2007년의 꿈일기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꿈들은 자고 일어나면 흩어지지만, 어떤 꿈들은 이상할 정도로 오래 남는다는 걸. 그리고 그런 꿈일수록 내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 ‘미묘한 꿈들’이라는 표현이 좋다. 분명 특별하고, 분명 기억에 남고, 어딘가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쉽게 해석되지는 않는 꿈들. 아마 그래서 나는 더 적어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이미 꿈을 이해하고 싶어 했고, 그 미묘한 잔상을 흘려보내지 않으려 했으니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2007년의 꿈들은 같은 말들을 자꾸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슬픔, 안중에도 없다는 감각, 피와 두려움의 충격, 누군가를 사랑하고 원하면서도 결국 혼자인 쪽이 편하다고 결론짓는 마음. 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 사랑받고자 하는 갈증, 부모를 향한 복잡한 감정, 친구들의 흐름과 엄마의 건강 상태에 대한 걱정까지. 그 모든 것이 뒤엉킨 채 꿈속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다 해독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 아이가 무엇 때문에 오래 흔들렸는지는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이때부터였을까. 나의 꿈에 대한 호기심과 집착, 혹은 알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시작된 것은. 그토록 원하던 스무 살이 되기를 간절히 갈망하던 열아홉 살의 그 아이는, 2026년 3월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기 자신이 꾸는 꿈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2008년의 나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