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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대디 Oct 29. 2018

시어머니는 잘해주셔도, 시어머니다

격하게 환영한다. 웰컴 시월드

육아에 있어,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뭐라 불러야 할까요. 다소 낯설지만 ‘처월드’라고 해야 할까요. 조금 어색하니, 편하게 시월드라 하기로 해요.

결혼은 두 사람이 사랑한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집안과 집안의 만남에서 결코 좋은 소리만 날 수 없어요. 특히 아이를 키우는 예민한 문제는 필히 마찰이 있기 마련이에요. 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죠. 물론, 여성들이 겪고 있는 진짜 '시월드'의 어려움에는 견줄 수 없겠지만 말이에요.


시월드의 ‘존재’에 관해서는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하고 있었어요. 인터넷에서 관련 글을 접한 경험이 있거든요. 어찌나 리얼하던지, 사연을 읽다 저도 모르게 움찔할 정도라 A4용지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었음에도, 차마 다 읽지 못하고 인터넷 창을 닫았습니다. 그러고 한동안 잊고 살았어요.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말이죠. 잠시 저의 시월드 입성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봄날의 햇살이 지면에 남아있는 추위를 녹일 무렵, 장모님이 집에 오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한 손엔 반찬, 다른 손에 들려있는 식혜를 자연스럽게 건네받으며 안으로 모셨어요. 집이 더러워 흉이 될까 걱정이지만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해봅니다. 아이도 잠을 자고, 때마침 점심을 먹으려 했기에, 주신 반찬을 접시에 덜고 숟가락을 하나 더 얹어 식사를 준비해 보아요.



저는 유년시절, 주로 위 지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직 남쪽 음식에서 풍기는 특유한 젓갈 향에 익숙하지 못한 것 같아요.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코를 자극하는 강한 냄새에 그만, 인상을 찡긋 해 버렸습니다. 순간 눈이 마주쳐 민망했지만 금방 웃으며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기에 제 속마음은 들키지 않았을 거예요.



아이는 비교적 규칙적으로 낮잠을 잡니다. 정오 즈음 잠들면 두 시간은 누워 있어요. 누가 보면 여유롭다 할 수 있지만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점심도 놓치기 일쑤입니다. 역시나 오늘도 아이가 깨기까지 10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 점심을 다 먹지도 못했는데....... 허기진 오후를 보내야겠네요.


그렇다고 빨리 먹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가뜩이나 불규칙한 식사로 속이 쓰린 것을 겨우 참고 있는데,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면 속병까지 날지도 몰라요. 게다가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장모님의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제대로 밥 먹기는 다 틀렸네요.



아이가 깼습니다. 부모라면 당연하겠지요. 아무리 희미한 울음소리라도 알 수 있습니다. 부리나케 달려가 잠에서 깨 울고 있는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배가 고픈가 봐요. 서럽게 울고 있으니 분유를 타 주어야겠다며 끓여놓은 물이 어디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등에서 느껴지는 낯선 느낌, 타격음 그리고 저를 향한 외침이 들렸습니다.  


"그렇게 손 타게 하니 애가 엄마를 괴롭히지"  


제가 댁의 자녀를 대신해 당신의 손주를 돌봐주고 있는데, 이렇게 대하시다니요. 그리고 손타게 한다니,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첫 손주라며 금이야 옥이야 울면 안아주고 보채면 달래주시던 분이 제게 이리 말씀하시다니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어떤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네요.



물론, 백번 양보해 저도 딸을 키우는 입장이라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금지옥엽 키운 딸아이가 결혼해서 고생한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가지고 오셨는데, 눈앞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제가 미워 보였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순간 당신도 모르게 손이 나간 터라 당황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흥분으로 붉어진 얼굴은 숨길 수 없습니다.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보고 있는 저를 이렇게 대우하시면 서운하네요. 저도 집에서는 귀한 자식으로 자랐는데....... 역시, 아무리 잘해주셔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저의 말처럼 귓가에 맴도는 날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육아하지 말걸 그랬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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