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넘어서는 '사람'이라는 변수
육아를 하며 흔히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배우자와의 관계 그리고 시월드라는 변수가 더해지면, 하루는 예측이 어려운 영역으로 흘러가죠. 여기서 계획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며 “계획이 쉽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봐!”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네요. 혹은 지금까지 계획만큼은 둘째라면 서러운 사람들은 저의 이런 주장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계획’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계획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누구는 올해 초 작성한 신년 계획을 떠올릴 수도 있고, 주말에 가족과 함께할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어릴 때 선생님께 숙제로 제출한 ‘방학 계획표’를 기억하며 몸서리치는 저와 같은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생각만 해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계획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네요.
사전적 의미로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절차,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작성함.”이라 나옵니다. 간단히 말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사전 준비’ 정도로 정리할 수 있어요. 학창 시절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학습계획표를 작성한 것’이나 하루를 시작하며 다이어리에 ‘해야 할 일을 적은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사전적 의미에서 계획이란 ‘앞으로 실행할 일’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라 했습니다. 다가올 일을 계획하는 것은 조금 전에 알아보았으니, 이제 다음으로 ‘계획의 실행’을 살펴보도록 하죠.
계획의 실행 측면에서는 누구나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계획을 멋지게 실천한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계획하였지만 실행하지 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때문에 어렸을 때는 부모님 혹은 선생님에게 혼이 났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직장상사에게 잔소리를 들었을 지도.
그래서인지 조금 억울한 마음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단지 조금 ‘계획’이 틀어졌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대게는 우리가 세운 계획과 맞이하는 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에요.
무언가를 잘해보려 계획을 하지만 실행 단계에서 늘 발목을 잡힙니다. 우리는 왜 뫼비우스의 띠를 도는 것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요? 아마 그 답을 우리가 ‘처음 계획을 배울 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계획은 ‘방학 계획’ 일 거예요. 방학을 시작하기 전 선생님은 우리에게 ‘큰 동그라미’가 그려진 회색 종이를 주시면서 ‘계획표 작성법’을 가르치시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동그라미 주변에 24개의 눈금을 그리고 그 위에 ‘시간’을 적습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정한 뒤 적절하게 시간을 분배하여 원하는 칸에 적으면 돼요. 다 적었다면 원의 중심과 둘레에 그려놓은 눈금을 연결하고 예쁘게 색칠을 하는 것으로 방학 계획은 마무리됩니다. 제 계획표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완성은 되었지만, 미술영역에 그다지 소질이 없던 터라 자랑할 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계획표의 미관상 아름다움에 관계없이, 그날 만든 계획표대로 방학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깔끔한 계획표건 알아보기 힘든 엉망의 계획표건 말이죠. ‘계획대로 살 수 없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까요. 저는 이것을 ‘계획된 실수’라고 부릅니다.
제가 말하는 ‘계획된 실수’의 이유가 단순히 일정과 일정 사이에 쉬는 시간을 넣지 않아서와 같은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계획은 완벽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빠졌을 뿐. 그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고려 요소입니다.
우리는 계획의 주체 바로 그 안에 포함된 사람이라는 ‘변수’를 놓치곤 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주 5회 운동’을 계획하고 3달치 헬스 회원권을 끊었지만 나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지 않아, 무리한 운동으로 몸살이나 몇 번 다니지 못한 경험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라는 변수’를 무시한 결과, 지금까지 우리는 열심히 ‘작심삼일을 계획’하였던 것이죠.
다시 육아로 돌아오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육아의 어려움은 바로 ‘계획’에서 시작해요. 우리는 육아를 계획할 때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는 고민해도 ‘아이와 양육자’라는 변수는 쉽게 고려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이처럼 ‘사람’이라는 변수를 계획에 넣지 않았기에 육아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죠.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제 이야기가 “육아는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그냥 되는대로 키우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짚고 넘어갈게요.
앞으로 계속될 이야기는 여러분의 ‘계획’이 ‘실현 가능한 계획’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라는 변수를 고려한 달성 가능한 목적으로 향하는 길이죠. 왜 번번이 계획이 어긋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는지, 특히 사람이라는 변수가 육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된다면, 여러분이 육아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층 더 넓어질 것이고, 이후 계획은 ‘현실’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어요. 그러나 아직, 육아는 계획이 어렵다는 저의 주장을 달갑지 않게 느낄 분이 분명 계실거나 생각합니다. 아직 위의 설명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에게 자신 있게 다음의 글을 권합니다. ‘육아 계획의 어려움’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촌동생 몇 번 봤다고, 육아를 논하면 안 돼요
우리는 함께 계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계획에 ‘사람’이라는 변수가 고려되지 않으면 이는 곧 ‘계획의 실패’로 연결된다고 했어요. 그러나 육아의 어려움을 설명하는데 단순히 “계획을 할 때 사람을 고려하라.”라고만 말하는 것은 조금 무책임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사실 ‘육아의 어려움’의 본질적 이유는 ‘경험의 부족’이에요.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하더니 이제는 갑자기 ‘경험’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여러분에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 안심해 주세요.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 보도록 하죠.
경험은 우리 삶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예요. 학자들 사이에선 경험에 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어떠한 사건을 체험함으로 얻은 결과를 삶에 적용하는 것’에 큰 이견은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체험은 꼭 직접적일 필요는 없어요. 간접경험을 통해 꽤 괜찮은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특히 교육 분야에 널리 적용됩니다.
도시인들은 ‘농촌체험’을 통해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배우고, 학생들은 ‘해병대 체험’을 통해 극한에서의 생존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값진 경험은 우리의 삶을 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죠. ‘경험을 통해 지식을 쌓고, 미래의 일을 대비’할 수 있다니 얼마나 희망적인가요. 그러나 육아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이 간접경험이 유효하지 않아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의 ‘육아 경험’은 실제 육아를 할 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혀 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경험은 저의 모든 힘들 시간과 함께해 주지 못했습니다. 마치 조각난 퍼즐과 같았죠. 육아 경험은 왜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제가 믿은 ‘육아 경험’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육아 경험은 지극히 단편적이라, 모든 부분에 적용될 수 없던 것이었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육아는 ‘한 생명을 돌보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경험은 불가능합니다. 너무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인간은 사람이다’와 같은 문장입니다. 그러나 해답은 저 쉬운 문장 안에 있어요. 이해를 돕기 위해 앞에서 설명한 농촌체험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내기철 일손이 부족한 어느 시골마을에서 벼농사를 돕게 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간 체험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집에 돌아갈 즈음이 되니 온몸에 힘이 빠져 두 다리로 걷기도 어렵네요. 지금까지 밥상에 올라오는 식자재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농부님의 값진 노력으로 얻은 쌀로 만들어진 밥을 다시는 남기지 않겠습니다’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해 보겠습니다. 매우 소중한 교훈입니다. 그러나 이 교훈을 얻었다고 해서 지금 당장 ‘귀농’을 해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단순히 모내기철이라면 그럭저럭 해내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뀜에 따라 해야 하는 것 즉, ‘김을 매고’, ‘추수를 하고’, ‘휴경지를 관리’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간접경험’의 한계죠.
그렇습니다. 아이라는 한 생명,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절이 바뀌듯, 한 순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자라는 ‘아이’는 우리를 ‘과거의 어느 한 경험’에 머무르게 하지 않아요.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와 마주하여야 합니다. ‘나의 경험이 적용되는 날’보다는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아 쩔쩔매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제까지 온순하다 내일은 소리를 지르며, 오늘은 밥을 잘 먹다 내일이 되면 반찬투정을 하죠.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라는 말은 이때를 위한 말입니다.
해병대 체험을 다녀와서 해병대 출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명절에 사촌동생을 몇 시간 보고 육아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육아를 논했다면, 지금부터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해요. 육아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고, 사람을 키우는 일은 ‘특정한 경험’을 거부합니다. 이는 곧 ‘경험의 부재’로 연결되고, 결과적으로 ‘육아의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