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불어온 마음 속 봄 (그림출처, 일러스트레이터 안드리안)
국회 본회의를 마치고 의원사무실에 앉아 창을 열었다.
아직 2월 초인데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왠지 추울 것 같이 몸은 사려지는데, 바람을 끌어안고 싶은 느낌. 그러면서도 스스로 혼자이고 싶은 느낌. '봄'이다.
얼마전 딸아이가 스스로 지긋지긋해하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코로나라고 하는 신종 바이러스만 아니라면, 곧 3월, 캠퍼스에서 봄을 맞을텐데. 속이 상한다.
너에게 캠퍼스의 봄을, 신입생의 봄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봄이 되면 떠오르는 세 가지 장면이 있다.
친구들과 캠퍼스 한켠 목련나무 밑에서 담배를 태우며 희희덕 거릴 때, 앞을 지나가던 원피스를 입은 여학생, 그 때 설레던 마음.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선배를 돕던 시절, 선배의 실패와 함께 우울하게 맞았던 봄, 그리고 얄궂게 국회에 활짝 피어있던 벚꽃
그리고 신혼 초, 부천 원미구 작동 신혼집을 들어가며 신작로를 마음껏 달리던 마을버스 차창 안으로 들어오던 봄바람. 내게도 가족이 생겼다. 처음으로 봄이 외롭지 않게 느껴졌다.
설레고, 무엇인가 새롭게 피어오를 것 같고, 작은 희망이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건 자연의 이치때문만일까.
아직도 대학 캠퍼스를 지날 때면 차에서 내려 교문 앞을 걸어들어가고 싶은 느낌은 추억 때문일까.
퇴근을 하다 마주한 목련나무 앞에서 잠시 멈춰 바라보게 하는 건 봄만이 갖는 마력인 것 같다.
고등학교를 막 들어갔던 시점,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겨울나그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때 여주인공 다혜가 집에서 부르던 노래는 시인 박목월의 '사월의 노래'였다.
그녀의 집 아래에서 그 노래를 듣고 있던 주인공 민우. 드라마에서 보여준 그 한 컷이 내가 처음 받아들인 봄이었다. 그리고 막연히 목련을 좋아하게 되었고, 다혜라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학생, 서점 문닫을 시간이야. 어서 집에 가야지"
드라마에서의 여운은 결국 나를 원작인 최인호의 소설, '겨울나그네'로 이끌었다.
지금은 전주 한옥마을로 불리는 골목 안에 자리한 [홍지서림]. 그곳은 그렇게 나만의 참새 방앗간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매일 드나들던 서점의 가장 끝에 꽂혀있던 흰색 바탕의 소설책.
그 책은 내 첫 '봄의 이미지'를 완성해주었다.
'목련', '베르테르', '자전거', '캠퍼스' 그리고 '다혜'와 '한민우'.
첫째 아이 이름이 다혜인 이유는 소설 속 여주인공의 아련함 때문이었고, 둘째 아이 이름이 민우가 되지 못한 것은 소설 속 민우의 이기적인 선택 때문이었다.
"한준호! 나때문에 인생 망쳤네"
2018년 4월 20일, 서울시장의 경선발표가 있던 날 저녁, 캠프를 해산하며 내 옆자리에서 후보로 나섰던 선배가 억지로 활짝 웃으며 미안해했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
나는 MBC를 나올 명분이 필요했었다. 선배는 내게 명분을 줬고, 나는 감사함을 표시한 것이었다.
회사를 더 다닐 자신이 없었고,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아나운서로 복귀할 수 있는데, 왜 나가는지 설명할 바로 그 '명분'이 필요했다.
그 해 선거캠프의 일은 해도해도 모자랐고, 늘 시간과 아이디어에 쫓겼으며 밤을 지새우는 고단함 보다 매일매일 내가 아닌 다른이를 생각하고 살아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보다 다른이를 더 걱정하는 삶이라.
일을 하면서 아마도 내 보좌진들 또한 그러한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간혹 들곤한다.
2017년 12월, 추웠던 겨울.
"나하고 함께 뛰어보지 않겠어요?" 라는 제안을 처음 받은 다음날, 이유도 없이 열이 올라 바늘을 싫어하던 내가 스스로 병원을 찾아 링거를 팔에 꽂았던 그해. 그 겨울의 선택이 쉽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 선택으로 나는 처음으로 '정치판'이라 불리는 곳으로 나왔고, 청와대라는 곳을 다녀왔으며, 정확히 2년 뒤인 2020년 4월 15일, 정치인이 되었다. 우울한 일도 기쁜 일도 4월 벚꽃과 함께 맞아봤지만, 이후 벚꽃은 선택라는 단어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여의도 윤중로에서 맞는 벚꽃, 아름답지만, 내겐 기다림이란 단어로 보인다.
나는 제주도 사위다.
이제 나도 돌아가면 맞아줄 고향이 생겼다.
제주는 내게 고향이다.
신혼초 장모님을 따라 태어나 처음 귤밭을 들어가봤다.
4월 말쯤 되었을까. 귤꽃이 피기 직전이었다.
장모님께서는 귤꽃이 피었을 때 그 향에 취해 귤밭에서 나오지 못한다며, 귤꽃의 향이 아카시아향보다 더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경기도 농촌지역에서 자란 내게 아카시아 향은 봄을 마치고 여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뿌려놓은 향수같았다. 그 무렵이면 아카시아 향이 나는 곳으로 코를 킁킁대고 향을 맡기 위해 발걸음을 더 천천히 하곤했다. 그렇다보니 장모님의 말씀에 귤꽃 향이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제주의 귤꽃 향을 맡아본 건 그로부터 십수년이 흐른 뒤였다.
회사를 그만둔 시기였고, 안해보던 정치판에서 선거를 돕다 졌을 때였다.
미래가 막막하던 시기, 호기롭게 아내와 제주를 내려갔다. 잘다니던 MBC를 때려치우고 나온 남편이 미울만도 한데, 그 고생하며 버틴 세월을 생각하면 이제 화면에 나타나 뉴스라도 해야하는 사위가 느닷없이 백수가 되어 나타났으니 당황할 만도 한데, 아내를 비롯한 처가집 식구들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을 떠나 오히려 시간이 많아졌다며 좋아하기까지 한다.
가족이구나. 내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이구나.
아내와 함께 들러 본 처갓집 귤밭에는 말로만 듣던 귤꽃이 피어있었고, 장모님께서 자랑하시던 귤꽃향을 맡아보았다. 아카시아향이 진한 에스프레소라고 한다면, 귤꽃향은 보다 연하고 상큼한 갓내린 커피같은 느낌이랄까.
창고 옥상에 올라 밭을 내려다 봤다.
많이 넓지는 않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젊은 시절 곡괭이를 들고 직접 돌밭을 일궈 만든 곳으로, 제주에서는 '빌레밭'이라고 불렸다. 바위 중간 중간 심어진 귤나무가 넓게 자리잡고 있었고,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담도 정겹고 신비로웠다.
"자기야 이제 우리 오일장으로 가요"
제주의 봄은 뭍(육지)의 바람보다 굵으면서 부드러웠다.
"진옥이 왔니?" 오일장을 들어서자마자 친숙한 얼굴의 아주머니께서 아내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사우도 왔네". 같은 부락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아내와는 운전면허 학원을 같이 다녔을정도로 처가집과 막역한 분이기도 했다.
'제주막걸리', '파전'.
그동안 내가 먹어보던 파전은 전파였던가. 파를 이렇게 맛있게 익혀 듬뿍 넣고, 그 사이를 밀가루로 붙여 놓은 진짜 파전이었다. 제주도 인심도 느껴졌다. 제주막걸리의 상표가 벚꽃색이었고, 파전 하나 가운데 놓은 채 해는 중천이었지만 봄바람에 기분좋게 막걸리를 들이켰다.
제주에서 맞는 봄, 내게 새삼 가족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어느새 입춘이 되었다.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을 뒤로 하고 제주로 내려가고 싶어진다. 4월이면 윤중로에는 벚꽃이 피어오를 것이고, 좋아하는 목련과 베르테르, 사월의 노래와 캠퍼스의 추억이 다가올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봄이지만, 그 봄을 맞는 나는 해마다 달라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