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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필 May 29. 2018

브랜드 원형이 브랜드 컨셉을 정의한다

브랜드 컨셉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군요.” 


아모레 퍼시픽(Amore Pacific, 이하 아모레)의 생산, 물류를 책임지는 SCM사업부의 담당 임원은 우리가 제안한 브랜드 컨셉을 매우 만족하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모레의 주요 제품인 화장품, 녹차, 생활용품의 생산과 물류를 담당하는 사업부, 쉽게 말하면 공장에 대한 브랜드 스토리북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나는 컨셉 개발에 대한 기획 자문 역할을 하였다. 브랜드의 다양한 속 이야기가 담겨있는 브랜드 북은 아모레가 즐겨 활용하는 브랜딩 방법인데, 아모레는 특이하게 고객이 인지하기 어려운 내부 SCM사업부 조차 하나의 브랜드로 여긴다. 이는 아모레가 얼마나 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지 보여주는 반증이다.

  

특이한 프로젝트의 컨설팅은 어려운 컨설팅을 의미한다. 특이하기 때문에 그것을 경험한 컨설턴트도 없고 컨설팅에 참조할 만한 사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브랜드 북의 대상인 SCM 사업부의 브랜드 컨셉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설화수, 마몽드, 이니스프리 등 아모레 브랜드들이 가진 공통적인 컨셉은 Asian Beauty로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감성’이다. 반면 정확한 품질, 납기, 원가 준수가 중요한 아모레 SCM사업부의 브랜드 컨셉은 ‘논리적 이성’이다. 아름다운 감성과 논리적 이성은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공존하기 어려워 보였다. 이런 난제를 해결한 방법은 뭘까?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던진 중요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다. 


“최초의 아모레 공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1932년 서성환 선대회장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가 부엌에서 정직과 정성으로 최초의 아모레 화장품인 동백기름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부엌에서 정직과 정성으로 만들어낸 최초의 동백기름 화장품 하나가 오늘날 아시아 대표 화장품 기업으로 성장한 아모레의 시작이자 근원이었고 그것이 아모레 화장품을 정의하는 원초적 DNA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어머니의 부엌에서 세계의 부엌으로’라는 브랜드 컨셉이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부엌에는 아모레의 아름다운 감성을 담았고 세계의 부엌에는 세계적인 기술과 규모로 성장한 SCM사업부의 당당한 모습을 담았다. 아모레에게 부엌은 공장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였다.



어머니의 부엌은 아모레 공장의 시작이자 본질이다.

   


어머니의 부엌처럼 브랜드의 본질적 시작점을 담은 것이 브랜드 원형이다. 원형(archetype)은 사전적 의미로 본디 꼴(모습)이다.  이런 정의는 브랜드 컨셉 (브랜드 아이덴티티 또는 브랜드 에센스로 명명되기도 함)이 브랜드가 가진 본질적 모습을 하나로 정의한 2~3개의 단어라는 측면에서 같은 말이다. 만약 당신이 브랜드의 본질 또는 본디 꼴이 담긴 브랜드 컨셉을 찾는 다면 그것은 하나의 브랜드를 탄생케하거나 시작하게 만든 브랜드 원형을 찾는 것과 동일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브랜드 원형은 브랜드 컨셉에 선행하기 때문이 브랜드 컨셉은 브랜드 원형에서 찾는 것이 쉽다.   


시냇물은 강물을 만들고 강물은 바다를 만들 듯,  브랜드 원형은 브랜드 컨셉을 정의하고 브랜드 컨셉은 브랜드를 정의한다.


브랜드 원형은 브랜드의 본질을 찾는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설득이 불필요한 브랜딩을 가능케한다는 잇점이 있다.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원형을 설명한다. 원형은 인간이 본래 타고난 심리적 행동 유형으로 기본적이며 원초적인 사고로써 정신 속 어디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일정한 형식이다. 그리고 이런 형식과 상징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유전적으로 내려온다고 말한다.


나는 융의 주장이 인간의 육체가 DNA라는 유전자에 의해 정의되듯이, 인간의 마음은 마음의 유전자인 원형에 의해 정의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것은 고객의 마음속에 있는 원형을 건드리기만 한다면 설명이나 설득이 아니라 고객의 본능에 의해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브랜드 원형은 설득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브랜딩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브랜더(brander)들은 브랜드 원형을 잘 활용하는데 대표적인 브랜드가 스포츠카 브랜드인 머스탱(Mustang)과 SUV 브랜드인 짚(Jeep)이다. 미국에서 성공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Mustang과 Jeep은 ‘말(horse)’라는 브랜드 원형을 활용해서 성공하였다. 미국인에게 자동차의 원형은 말이다.(같은 맥락에서 심리학박사이자 마케팅 컨설턴트인 클로테르 라파이유박사는 그의 저서 컬처코드에서 말을 미국인의 자동차에 대한 문화코드로 설명한다.)  서부개척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인 말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존재케 만든 상징이다. 서부개척 시대는 이미 지났지만 이런 마음의 유전자를 지닌 많은 미국인들은 깨끗하고 편안한 도심을 달리면서도 마음속 유전자의 속삭임 때문에 사실은 먼지 날리는 초원에서 거친 말 위를 달리고 싶어 한다. Mustang과 Jeep은 말의 원형을 잘 살려 거친 질주 본능을 잘 살린 자동차다. 질주 본능이 없는 우리에게는 승차감이 거칠고, 연비도 좋지 않으며, 크기만 거대한 비효율적인 자동차이지만 미국인에게는 본능적으로 호감이 가는 자동차다.  


미국인들에게 이동수단의 원형은 말이다. 그들의 마음속 DNA는 자동차가 아니라 말을 갈망하게 만든다. (좌)야생마 로고를 가진 Mustang, (우)거친 산길 위의 Jeep


한국에서는 아모레 퍼시픽 화장품 브랜드인 이니스프리(Innisfree)가 브랜드 원형을 잘 활용하였다. 원래 자연주의 기초 화장품의 리더는 페이스샵(The Faceshop)이었다. 어떻게 후발주자가 1등을 이겼을까? 자연주의란 자연에서 경험할 수 있는 깨끗함이다. 자연이 주는 깨끗함을 상징하는 브랜드 컨셉을 선점하는 것이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말이다. 


이니스프리는 제주라는 브랜드 원형을 브랜드 컨셉으로 만든 브랜드다. 이니스프리와 페이스샵이 한창 성장하던 시절 우리는 신규 자연주의 화장품의 컨셉 제안을 의뢰받았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이니스프리를 경쟁할 만한 컨셉은 찾기 힘들다고 답하였다. 왜냐면 고객 심층 인터뷰를 통해 고객의 마음속에서 제주보다 더 깨끗한 자연 상징물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화장품 시장에 또 하나의 자연주의 화장품은 나올 수 있어도 이니스프리를 뛰어넘는 자연주의 화장품은 나오기 힘들다고 믿는다.  


당신이 브랜드 컨셉을 브랜드 원형에서 찾을 수만 있다면 당신의 브랜드는 더 이상 고객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고객의 마음 속 유전자가 고객에게 속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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