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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재 Jun 24. 2020

#4. [커머스늬우스] 재포장 금지, 왜 이슈일까?

핫한 재포장 금지 및 할인 논쟁을 조명해봅니다.

요 몇 주간 가장 논란이 되었던 유통업계의 뉴스를 꼽자면 환경부에서 발표한 재포장 금지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뉴스가 나온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내년으로 정책이 유예되기로 결정이 되었으나 여전히 논란 및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관계로 재포장 금지 및 할인 논쟁에 대해서 조망해보고자 합니다.




정책의 시작은 생활쓰레기에서 재포장 쓰레기가 35% 가까이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를 줄이자!라는 관점에서 추진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최근 여러 가지 정책과 사람들의 환경 및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생활패턴의 변화와 함께 배출되는 폐기물량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쓰레기를 처리할 곳이 필요한데 국내 매립지들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쓰레기장을 짓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결사 반대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19 때문에 재활용 쓰레기 수출길은 막히는데 택배, 배달 등으로 인한 플라스틱, 종이류 폐기물은 늘어나니 환경부의 입장에서는 현재 한국은 쓰레기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환경부에서 고심 끝에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는데 요약하자면 "할인을 위한 묶음포장, 증정상품 재포장은 안되니 포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 구매 시 할인을 하는 전략으로 7월부터 변경하라!"과 같습니다. 즉 모든 마트를 편의점화시키겠다는 뜻이죠.


이전에 간담회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고는 하나 유통업계가 정책 발표 후 멘붕에 빠진 이유는 다양하지그 중에서도 주요한 세 가지 어젠다정리해 볼 수 있을텐데요.


1) 명확하지 않은 가이드라인

2) 기재고와 원자재의 안전재고 및 용역계약

3) 유통업체 간 경쟁과 가격 관리


그럼 왜 유통사, 제조사, 공급사들이 환경을 위해 재포장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왜 이번 정책에 대해서 아우성을 칠 수밖에 없는지 이유들을 좀 더 자세하게 짚어보겠습니다.



1) 명확하지 않은 가이드라인:


언뜻 보면 재포장을 하지 말라!라고 가이드라인은 굉장히 명확해 보이나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예외조항은 재포장으로 보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기 시작하면서 이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단위 제품으로써 낱개는 판매하지 않고 일정 수량을 묶어 하나의 제품으로 판매하는 경우
맥주 6개, 12개, 24개와 같이 바코드가 있으며 통상적 판매에 해당되는 경우 재포장이 아니며, 판촉용 묶음포장으로 바코드가 없으며 상황에 따라 판매단위가 변경되는 경우 재포장에 해당됨
라면 5개 번들 묶음과 같이 공장에서 일반적으로 출시되는 제품은 재포장이 아님
낱개 여러 개를 동시에, 또는 띠지 등으로 묶어 할인 판매 가능


그렇다면 몇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낱개로도 판매하는 1L짜리 세제를 1+1로 공장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재포장해서 바코드를 붙여 납품한다면 이는 재포장일까요 아닐까요? 라면 5개 번들 묶음과 같이 공장에서 일반적으로 출시되는 제품은 재포장이 아니라고 했는데, 종합 선물세트같이 제품 생산 공장을 떠나 다른 곳에서 포장된다면 공장의 정의는 어디까지일까요? 왜 만두 1+1을 띠지로 묶는 건 되는데 라면 4+1은 안될까요? 이건 띠지를 두르면 허용이 되는 걸까요?


어느 법이나 시행령이든 초반에 시행 과정에서 다소 혼란의 기간은 필연적으로 있겠지만 이번 법령이 미치는 영향이 유통사, 공급사, 제조사를 아우르다 보니 발생할 수 있는 케이스가 다양하고 이에 대한 세부지침이 면밀히 보완될 필요는 분명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모두의 의견을 들어주면서 이것저것 제외하다 보니 사실상 법령에 저촉되는 경우는 얼마 없어진다면 법령의 실효성 자체가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재포장 쓰레기 중 실제로 쓰레기로 가장 많이 나오는 케이스와 문제가 되는 케이스의 비중을 철저히 분석해서 재포장 금지 조항에 예외를 붙이기보다는 반드시 금지해야 할 부분들을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2) 기재고와 원자재 그리고 용역계약:


환경부의 기존 계획은 7월부터 당장 생산 및 유통 물량에 적용하도록 하되 만약 기재고가 남았다면 그걸 다 팔 때까지는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밝혔는데요. S&OP의 다소 복잡한 개념을 차치하고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마트> 대리점> 완제품 업체> 패키징 사이트> 패키징 업체까지 이어지는 서플라이 체인에서 각각 쌓아둔 안전재고(safety stock)의 양을 합친다면 최소 9개월~1년 이상의 물량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환경부에서는 당초 유예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준다고 말은 했지만, 이렇게 되면 유예기간을 의식하여 마트에서는 마트 재고가 다 소진되면 신규로 재포장된 제품은 안 받겠다고 할 공산이 크며 그렇다면 남은 부자재의 행방은 고스란히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물론 매몰비용(Sunk Cost)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폴리백 하나에 100원 가까이하고, PET/PP case면 몇백 원씩 하는데 이걸 만만치 않은 폐기비용까지 내가면서 버려야 한다니 가슴이 아픈 것이죠.  또한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포장방식을 변경해야 한다면 기업에서 단순 내일부터 작업자들한테 "오늘부터는 요렇게 해주세요~"라고 가이드라인만 바뀌면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포장 디자인부터, 자재 제작과 공정과 설비를 갖추는 데까지 최소 3개월-8개월 가까이는 필요할 텐데 이에 대한 리드타임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국내 포장시장의 규모는 56조에 달하고 한국 패키징 총연합회에 등록된 기업만 추려도 연성 패키징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약 600여 개 기업체에 약 18만 이상이 일을 하고 있는데요. 2016년 기준으로 수출이 13% 정도니 대부분은 내수시장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2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량을 30% 이상 30년까지는 50% 이상 줄이겠다는 목표 하에 이번 정책이 시행되는 만큼 적지 않은 재포장재 감축이 예상되는데 이는 즉 업계 종사자에게는 수출을 기약적으로 늘리지 않는 한 30년까지 반 이상의 일감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특히나 이번 법령은 다소 급작스럽게 시행되는 면이 없잖아 있다 보니 제조/공급사의 구매팀과 부자재 업체, 3PL 업체 사이에서도 서로 일 년에 물량을 어느 정도 예상하여 계약과 설비, 포장 인원을 맞춰놨는데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단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최소주문량(MOQ)을 맞출 수 없는 자재공급사나 포장 3PL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3) 유통업체 간 경쟁과 가격 관리:


환경부는 처음에는 바코드 기준으로 바코드가 있으면 완제품, 바코드가 없으면 재포장 제품으로 구분하겠다는 기준을 세웠다가 바코드는 어디서든 붙일 수 있다는 외부의 지적에 기반하여 바코드 기준이 아닌 판촉행위 자체, 즉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해 할인을 주느냐의 여부로 변경하였다고 하는데요. 이 조건 역시 애매~한 부분이 여러가지 있는데 하나를 꼽아보자면 보통 마트나 어느 정도 사이즈가 되는 유통사라면 흔히 자사의 경쟁력을 갖추고 타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업체 전용의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제조/공급사에 요구하게 됩니다.


물론 길림양행의 사례처럼 주요 원자재(아몬드)가 여기저기 다 쓰일 수 있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향이나 사이즈만으로도 원제품의 베리에이션을 줄 수 있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조/공급사의 입장에서는 한 곳의 유통사만을 위해 신제품을 만들기에는 ROI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고 또 하나의 유통사에만 만들어줄 경우 다른 유통사들과 척을 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만들기 쉬운 재포장 팩으로 합의가 되게 되는 것인데요.

향과 사이즈로 엄청나게 variation을 주고 있는 길림양행


앞으로 정책이 어떻게 수정돼서 나올지 봐야겠지만, 바코드가 있는 유통사 전용 팩까지 규제 대상에 들어가게 될 경우 단품으로만 팔아야 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된다면 유통사 입장에서는 증정, 덤, 한정팩 등 하나의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며 가격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어지니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급사 입장에서도 다소 곤란해지는 부분은 여러가지가 있을텐데요. 우선 제품을 섞는 크로스셀이나 업셀이 어려워지고 포장에 대한 제약이 생기니 저와의 FMOT(First Moment Of Truth)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제약이 생길 것입니다. 이 외에도 중요한 점은 모든 채널이 단품 판매로 가게 될 경우 유통사 채널 간 가격비교가 훨씬 더 쉬워지는 것입니다. 즉 바이어의 가격에 대한 압박수비에 대해 건네줄 당근이 줄어들며 그~나마 안전장치 역할을 했던 포장까지 사라지면서 특가제나 창립기념일 등 대규모 할인을 하는 채널에서 업자들이 대규모 물량을 사들여 소위 삥을 날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워질 것이라는 염려가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제조/공급사에서 주요하게 보는 채널 간 가격 관리를 하는 부분이 앞으로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줄줄이 사탕으로 다양한 문제들이 산재해있으니 환경을 위한 대의 앞에서도 유통사, 공급사, 제조사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부에서 주춤하며 시행이 6개월 연기된 만큼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내년 1월에는 좀 더 섬세한 법령으로 만나보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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