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만드실 때 영감을 받은 곳이 있으신가요?”
질의 응답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입안을 맴돌던 말을 결국 내뱉고야 말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 싫어하는 낯가림과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호기심 간의 치열한 싸움에서 후자가 승리한 것이다. 나는 1층부터 옥상까지 그곳을 둘러보는 내내 ‘여긴 대체 어떻게 만든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으므로 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2025년 서울시 건축 최우수상을 받은 푸투라 서울이었다.
투어를 마무리하려던 건축가는 잠시 고민하더니 영감을 따로 받은 곳은 없고, 주변 환경과 최대한 어우러지되, 어떻게 하면 모든 층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했다. 영감의 기원이 궁금했던 나의 선망이 더해진 호기심은 속절없이 무너졌으나 이전의 답변들에서 이 공간을 만드는 데 어떤 노력과 어려움들이 있었는지를 충분히 들었으므로 예술가와 그것을 실현 시키는 기술자 사이에서 그가 했을 고뇌와 타협의 시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건축가의 의도대로 끊임없이 감탄했으며, 결국에는 공간으로부터 위로받았으므로 그곳을 앞으로도 평생 기억할 것이었다. 좋은 공간은 그곳을 만든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하고, 조용한 위로를 건넬 줄 알았으며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건물을 나와 바깥에서 본 건물은 과연 주변의 낮은 주택들과 어우러져 한껏 자신을 낮춘 겸손한 모양이었다. 안에 엄청난 것을 품고 있으면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공간의 의미가 번쩍하며 다가온 순간이었다. 푸투라 서울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북촌을 걷다 집으로 돌아왔다.
종종 ‘건축 탐구 집’이란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멋들어진 여러 집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같은 공간도 다르게 느껴진다. 집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담고 있다. 시골에 내려간 젊은 부부의 집에는 반려견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작은 문이 있고, 은퇴한 노년의 부부 집에는 아내의 취향대로 꾸며진 넓은 정원이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집이란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레 내가 살고 싶은 어떤 공간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대체로 너무 크지 않고, 곳곳에 시간의 흔적이 묻어있는 정감 있는 집이다. 거실엔 꼭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이 자리 잡고 있다.
문득 내가 사는 공간을 둘러봤다.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는데 두 명이 지내기에 딱 알맞은 아담한 공간에는 취향이랄게 없다. 여러 번 이사를 거치며 처음 마련했던 가전 가구들이 정리되기도 했고, 필요한 물건은 싸게 중고로 갖춰 놓았기 때문이다. 이걸 취향으로 따지자면 실용성과 간소함이라 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에서 보던 취향이 담긴 멋들어진 공간은 아직 내게 먼 것만 같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했을 때 부모님은 반대했다. 조금 더 멋진 공간에서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호히 이곳이면 남편과 나에게 충분한 공간이라고 결정했다.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며 짐이라는 것은 한번 늘어나면 줄이기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한번 들인 물건을 오래 쓰고 싶은 내게 그것들을 정리하는 과정은 여러모로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건이든 공간이든 한번 들이면 그것을 관리하는데 품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짐을 최대한 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곳을 남편과 나의 공간으로 낙점했다. 말하자면 내가 관리하고 살필 수 있는 한계는 이 정도가 최선이라는 아주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공간, 특히 집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금세 언제부턴가 알았던 친구처럼 일상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효율성을 따지며 들어왔던 이곳도 어느새 우리를 익숙하게 돌보고, 안아주는 공간이 되었다. 매일 이 공간에서 남편과 나는 먹고, 치우고, 씻고, 여러 이야기를 쌓아가며 지내고 있다. 큰 방부터 욕실의 작은 창문까지,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시간이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이사할 때부터 전선을 모아 정리하고, 작은 오염을 치우면서 이미 우리는 정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집에서 지낸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그 시간 동안 이 공간은 매일 나를 일으켜 씻기고 먹였다. 휴직이라는 중대한 결정도 바로 이 집의 작은 탁자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남편과 나의 희로애락의 역사가 쓰였다. 그래서 이 공간을 대하는 것은 나를 대하는 것과 같아졌다. 내가 작게 느껴질 때는 이 공간을 정성 들여 쓸고 닦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누구나 문득 그리워지는 시절이 있다. 어떤 장소는 금세 그때의 기분으로 우리를 끌고 가기도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리운 것은 그 장소 자체가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다. 지나왔지만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그리운 마음이 드는 곳.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그리운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미나리 밭이 넓게 펼쳐져 있던 작은 시골 마을을 기억한다. 실잠자리를 잡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작은 5층 아파트도 기억한다. 훗날 그때가 그리워질지 몰랐던 시절이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늘 금세 지나가 버린다.
햇볕이 좋은 날이다. 나는 더 정성 들여 집 곳곳을 닦는다. 언젠가 지금보다 더 넓은 공간을 돌보는 것이 번거롭지 않을 정도로 몸과 마음의 품이 넉넉해지길 바라며. 두툼하고 멋들어진 마호가니 책상에서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며.
이곳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현재에 심드렁해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