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다.
올해는 여름 끝자락부터 비가 계속되더니 여름과 가을의 경계까지 흐렸다. 여름이 덜 간 건지 가을이 아직 안 온 건지 갸우뚱하는 날이 지속되다, 어느 날 차가워진 새벽 공기로 가을이 왔음을 알았다. 우산으로 투둑투둑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산책에 나선다.
오후 3시, 학교 앞을 지나는데 교문 앞에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마중 나온 어른들이 보인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꼭 쥔 모습이 다정하다.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지나가는 우산 행렬을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은 보내지 못한다는 외할머니의 통보에도 몰래 시험을 치러 합격한 엄마였다. 대학교 입학식 당일에서야 엄마는 외할머니께 같이 입학식에 가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는 국비 지원 대학교에 입학해서 간호사로 30년을 넘게 일했다.
초등학교 때 아빠가 해외로 파견을 나가게 되면서 엄마는 나와 동생을 홀로 돌봤다. 엄마는 저녁 6시에 퇴근하면 나와 동생에게 저녁을 먹이고 8시부터 공부를 시켰다. 8시에 시작된 공부는 동생이 먼저 잠자리에 들고, 내가 졸면서 끝났다. 따끈하게 데워진 바닥에 앉아 공부하다 보면 자주 졸렸는데 엄마가 똥그랗게 말짱한 눈으로 내게 세수하고 오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근무하는 건물에 여자 화장실도 없던 시절이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엄마는 그렇게 나와 동생을 살뜰히 보살피며 살아남았다.
아침이면 엄마는 삼겹살을 구웠다. 나와 동생은 아침에 삼겹살을 먹는 것이 익숙했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아침치고 독특한 메뉴라는 것을 알았다. 육아시간으로 퇴근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보니 저녁을 동생과 둘이 먹어야 할 때가 많았는데, 엄마 딴에는 평소에 잘 챙겨 먹이지 못하니 자녀들의 영양소가 부족할까 봐 자신이 가장 잘 챙겨줄 수 있는 아침 식사에 고기를 반찬으로 내었던 것이다.
늦게 퇴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TV 서랍에는 늘 비상금 2만 원이 있었다. 필요한 준비물을 사거나 유사시를 대비해서 엄마가 넣어둔 돈이었다. 준비물을 챙기고 동생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두컴컴해진 밤에서야 엄마는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동생은 자고 있고 엄마와 둘이 있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어떤 무게가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 있던 삶의 무게였다. 나는 늘 존경하는 사람으로 엄마를 적어냈다.
가끔 서럽거나 슬플 때는 집에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다투거나 선생님께 혼났을 때, 그냥 무슨 얘기라도 하고 싶은 날이 특히 그랬다. 가장 서글펐을 때는 단연 비 오는 날이었다. 유독 어린 시절엔 비가 세차게 내리쳤는데, 우산을 써도 비가 다 들이쳐 젖는 날이 많았다. 우산이 없을 때는 최대한 빠르게 뛰는 것이 전부였다. 비상시에 도와줄 수 있는 어른이 없는 아이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의 변덕을 이해하기엔 어린 나이라 그날 외출할 때 날씨로 하루를 판단했으니, 비를 원치 않게 맞았던 것이다. 푹 젖은 채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아무도 없던, 불 꺼진 집이 기억난다.
지금에서야 일부러 낭만을 위해 비든 물이든 시간 내서 작정하고 맞으며 즐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린 나이엔 그것이 서러울 때도 있었다. 가끔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상상하기도 했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가 생각나는 이유다.
은퇴한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을 자주 회상한다. 내가 대여섯 살쯤, 짐을 많이 들고 버스를 탔는데, 내릴 때가 되니 어린 동생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엄마를 대신해서 짐을 챙겼다는 것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기 몸만 한 짐을 번쩍 들었다고. 그때 정말 깜짝 놀랐다느니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느니 하는 말을 덧붙이며. 말투는 대견함인데 눈빛은 먼 곳을 보고 있다. 우리는 이내 말없이 지나버린 어떤 날을 떠올린다. 나는 엄마의 지난날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고군분투했던 것만은 알기에, ‘그랬어?’하고 처음 듣듯이 그 시절에 대한 얘기를 들을 뿐이다.
뜨거운 햇빛과 비가 흠뻑 쏟아지는 여름은 초목에도 치열한 계절이다. 그 시절을 살아내야만 가을의 풍요로운 추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치열했던 엄마의 여름에 나는 그렇게 기억되고 있나 보다. 엄마에겐 지금이 가을처럼 느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