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좋아서 하는 일, 어쩌면 필요해서 하는 일

by 필석

새벽 4시 15분, 잠에서 깼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을걸 알고 있다. 말똥해진 눈으로 방문을 열고 나가니 빨래로 쌓은 산이 보인다.


'한 주가 끝나가는구나.'


옷가지들은 지난주 매일 바구니에 담겼다. 하루의 쓸모를 다하고 담긴 옷가지들. 그 위로 시간의 흔적이 쌓여 거대한 빨래 더미를 이뤘다.


빨래 더미를 번쩍 들어 세탁기에 넣는다. 세제 한 스푼, 섬유유연제 없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시작 버튼을 누르며 상상한 옷가지들은 이미 깨끗해져 있다. 옷가지들이 정말로 깨끗해지길 바라며 빨래를 세탁기에 맡긴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나도 깨끗해지기로 한다. 한 주간 원치 않게 남겨진 흔적들을 지울 수 있도록. 어쩌면 더 오래된 상흔까지도. 따뜻한 물을 몸에 적시다 보면 신기하게 위로가 된다. 한 주 동안 수고한 나를 보듬어본다. 몸 곳곳을 정갈하게 씻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난 상처도 어느새 나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포근해진 몸과 한결 나아진 기분이 되면 집안 곳곳을 닦는다. 집은 손을 안 타면 금방 티가 난다. 손을 타야만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단정한 모습이 된다. 신경 쓰지 못했던 구석자리와 가구 위의 먼지를 훔치고 닦는다. 시간도 잊은 채 집을 쓸고 닦다 보면 생각은 멀어지고 몸의 움직임만 남는다. 깨끗해지는 집처럼 마음의 티끌도 지워진다. 집도, 사람도 신경을 못 쓴 곳은 어디나 더러워진다는 걸 깨닫는다.


"띠리리리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세탁이 끝난다. 깨끗하지만 축축한 빨래들을 옮겨 햇볕에 말린다. 잔뜩 구겨져 있는 마음을 펴듯 먼지까지 탈탈 털어 곱게 넌다. 하나하나 손에 빨래가 딸려올 때마다 지난 한주가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옷가지들을 하나씩 널며 지난 한 주를 가다듬어본다.

가지런히 널린 빨래들은 바깥 공기를 마주하고, 계절을 품은 햇볕은 빨래에 여러 내음을 남긴다. 부쩍 추워진 날씨는 빨래에 차갑고도 날카로운, 그러나 깨끗한 냄새를 남길 것이다. 나는 또다시 빠짝, 깨끗이 마른 옷가지들을 기대한다.

깨끗하게 빠짝 마른 옷가지들은 다시 내가 한 주를 살아낼 수 있도록 해주고, 먼지를 닦아낸 집은 한 주 동안 나를 품어줄 것이기에 오늘 하루는 더러워진 옷가지도, 집도, 어쩌면 나도 충분히 돌보기로 한다.


매주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좋아서 하는 일.

어쩌면, 필요해서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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