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똑똑. 똑똑."
현관문을 세 번 조심히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필석아, 아빠야."
문을 여니 김치통과 귤을 든 아빠가 서 있다.
"이거 김치랑 귤인데 엄마랑 치과 가기 전에 들렀어."
엉겁결에 받으면서도 '귤은 많은데'라고 덧붙이고야 마는 나다. 그래도 맛있게 먹으라고 웃는 아빠를 배웅하며 왠지 활짝 웃을 수가 없었다.
1961년생 소띠. 전 대기업 조 과장, 현 계약직 조 주임.
결혼해서 근처에 사는 딸 집에 갈 때도 조심스레 노크하는 우리 아빠.
어릴 적부터 보아온 아빠는 늘 일하고 있었다. 사회에서는 대기업 조 과장으로, 집에서는 아빠이자 남편으로. 엄마는 '소띠라서 일을 저렇게 하나 보다'라고 농담처럼 얘기하곤 했다. 그 말처럼 정말로 아빠는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다. 늦게 퇴근한 다음 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돼도 농담으로라도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회사에 평생을 오롯이 바치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힘들지 않냐고 천진하게 묻는 내 질문에 아빠는 ‘어~ 그래도 해야지’하고 희미한 미소만 지었다.
1997년, 거대한 경제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치며 많은 대기업이 무너지고 사회가 음울해졌다. 그 흐름에 휩쓸려 아빠는 ‘전 대기업 조 과장’이 되었다. 일을 잃어버린 아빠는 방황하면서도 종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누구네의 가장인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있었으므로. 기술도 배웠다가 자격증도 땄다가 트럭도 샀다가 하는 날들이 지속되더니 아빠는 작은 기업에 들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찾은 것처럼 매진했다. 나는 누구네 가장들은 그렇게 사는게 당연한 줄 알았던 철부지였다.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을 보며 아빠의 그 시절을 생각한다. 좌천되어 홀로 울음을 삼키는 김 부장에게서 아빠를 본다. 40대의 창창했던 아빠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켰을까. 그 시절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는 아빠지만 나는 아빠가 흘렸을 수많은 눈물을 마치 본 것만 같다. 수많은 가정에서 누군가의 아빠이자 남편인 그들의 삶을 감히 헤아려 본다.
엄마는 가끔 내가 갓난아기였던 시절을 얘기한다. 내가 코가 막혀 밤새 울었을 때, 자신은 잠을 못 자 화가 났는데 아빠가 짜증 한번 없이 나를 간호했다고. 어렸을 적 나는 아빠의 어깨에 목마를 타고, 더 커서는 아침마다 나를 깨우고, 이불을 개 주던 사랑을 받았다. 아빠는 여전히 조주임으로 일하며 힘들다는 말이 없고, 나는 매일 화수분 같은 사랑을 빚지며 살고 있다.
쿵 하고 온 세상이 무너지던 때, 그리고 지금까지 아빠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썼고, 애쓰는 걸까. 가끔은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다. ‘아빠, 아빠는 안 힘들어? 아빠는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 평생을 갈려 밑동만 남은 아빠가 이제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길 바랄 뿐이다.
아빠를 배웅하고 유튜브를 켜니 아빠가 조과장으로 일했던 대기업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기업의 회장은 거대한 쓰나미를 만들고 사라진 뒤 몇 년만에 한국에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 저의 잘못으로 인해 크고 작은 희생을 치르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00와 함께 했던 모든 00가족 여러분께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 합니다 ….’
늙고 실패한 경영자의 목소리엔 힘이 없다.
회사의 직함을 뗀 수많은 그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1961년생 64세, 사랑 많고 책임감도 그에 못지않은 어떤 한 사람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