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물들이기의 추억
요즘은 초등학교 숙제로 참 다양하다. 큰 아이의 이번 숙제는 식물 씨앗을 관찰하고 그중 하나를 심어 보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동영상을 들으며 수업을 해야 하는 아이는 스마트폰 동영상에서 선생님이 시킨 것처럼 씨앗도 관찰하고 사진도 찍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중에 씨앗 하나를 심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강낭콩을 심지 않을까 했다. 선생님도 강낭콩을 추천하고, 열매를 맺는 식물 중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것이 강낭콩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100일이면 다시 콩을 수확할 수 있다고 하니, 성장 속도가 정말 빠르다. 그래서 보통은 강낭콩을 심는다.
봉숭아 물들이기
며칠 전 아이와 산보를 하면서, 아이와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아이는 그 씨앗에 이름이 봉선이라고 했다. 나는 강낭콩을 심은 줄 알고 “강낭콩 심은 거 아니었어?”라고 물어보니 “아니야. 봉선화 심었어.”라고 딸아이는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물어봤다. “근데 선생님도 강낭콩 심으라고 했다면서. 왜 봉선화 심었어?” 아이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봉선화는 손톱에 물들이기 할 수 있데.”, “아! 그랬었지, 그게 있었구나.” 그렇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아이는 너무나 신이 나서 봉숭아 물들이기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색깔이 엄청 예쁠 것 같다고 하며, 자신도 하고, 동생 손에도 물을 들여 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친척 동생들까지 다 해줄 거라고 했다. 물론 나도 봉숭아 물들이기는 잘 알고 있다.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나도 어렸을 때 한 번씩은 봉숭아 물들이기를 했을 것이다.
아이는 ‘봉선이’가 빨리 자라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예쁜 웃음을 지었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큰 아이와 봉숭아 물들이기 얘기를 하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는 그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큰 아이의 순수함이 좋았고,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좋았고, 내 어릴 적 기억들이 소환되는 시간이 좋았다. 그렇게 큰 아이와 즐거운 데이트를 즐기고 행복한 마음으로 잠에 들 수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우리는 나이가 들고 작은 것이 주는 행복을 잊어버리곤 한다. 어릴 적에는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버린 생각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똑같이 적용하곤 한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고, 그것들은 그렇게 대단한 사건들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특히나 어렸을 때 느꼈던 행복들은 더욱 그렇다. 어쩌면 진정한 행복은 처음부터 사소한 것들 속에 있는 것인지도 지금은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시에는 그 어떤 것보다 큰 행복을 주었던 것들일 수 있다.
오늘 아이의 봉숭아 이야기를 하며, 이 작은 경험 하나가 아이에게는 얼마나 크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지 기대가 되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봉숭아 물들이기를 하며 행복했던 감정, 비닐로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손을 칭칭 동여매고, 잠이 들면서 다음 날 아침에 손톱의 색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하며 느꼈던 기대감, 아침에 일어나 밤새 묶었던 실을 풀면서 느꼈던 긴장감과 두근거림, 그리고 손톱에 물이 든 모습을 보면서 즐거웠던 감정 등은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그 당시의 행복감은 아직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경험은 내가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했던 기분과 감정들은 평생 잊히지 않고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행복한 기억들이 하나둘 쌓여서 아이가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갈 힘을 만들어 주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도록 할 것이다. 혹시 아는가? 이 작은 추억으로 아이가 세계적인 플로어리스트가 될지…….
어떤 기억을 가지게 해 줄 것인가?
아이에게 정말 중요한 추억은 어떤 것일까? 수학 문제를 하나 더 많이 풀고,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맞게 하는 것이 아이의 삶에 큰 도움이 될까? 아니면 다양한 경험을 하며, 행복감과 유대감을 느끼고 행복한 삶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도움이 될까? 물론 수학 문제 하나를 더 풀게 하는 것이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는데 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것,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중요한 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가하다. 좋은 삶이라는 것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좋은 대학과 직장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한 수단에 불가하고 결코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삶의 목적은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보다 나은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함인 것처럼, 행복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행복한 일들을 많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행복한 기억을 얼마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도 행복한 일들을 만들어 나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 홀로 살아가며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 툭툭 털며 일어나 다시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토양에 비료를 대신 뿌려주는 사람이다
흔히들 자식을 농사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농사짓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좋은 농사꾼이 될 수 있도록 아이의 기억이라는 토양에 충분한 비료를 주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아이가 내 품에서 떠날 것을 알고 있다. 부모는 해야 하는 것은 아이가 내 품 안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보다는 내 품을 떠나서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때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것, 어떻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가, 얼마나 주어진 것들에 감사할 수 있는가, 어떤 것들을 추구하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들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 부모를 통해서 좋은 기억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아이는 삶의 돛단배를 타고 풍낭을 만날지라도 그 풍낭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를 저어 나갈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기억을 만들어 줄 것인가? 그것이 지금 당신이 아이에 대해 걱정해야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