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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핀 pin insight Jun 06. 2018

치즈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매거진 F 치즈 편 후기

 매거진F. 새로운 잡지가 나왔다. 있는 잡지들이 사라지고 서점도 없어지고 있다는 마당에 말이다. 주제는 음식. 그 중에서도 식재료를 다룬다. 완성된 요리가 아니라 소금, 치즈와 같이 우리 삶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주제인 것이다. 게다가 트렌디한 맛집은 소개는 하지 않을 것이라 못을 박았다. 트렌드를 다루지 않는 잡지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잡지

알면 알수록 갖고 싶다.


 매거진 F가 식재료를 다루는 이유는 간단하다. 음식은 빠르게 변하고 문화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반면에 식재료는 전세계인들이 비슷하게 생각한다. 또한 식재료 자체는 쉽게 변하지 않는 존재다. 따라서 식재료는 '변하지 않는 가치'인 셈이다. 이런 식재료를 다루는 사람들을 깊이있게 조명하는 것. 이것이 매거진 F의 핵심이다.

매거진 F | 창간호 스페셜 패키지

 매거진 F는 어떻게 보면 잡지로서 트렌디함은 커녕 아주 느려 보인다. 이런 잡지가 성공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매거진 F는 지난 3월에 첫 발간하여 스페셜 패키지를 선보였고, 10분만에 모두 완판되었다.


그럼 이런 잡지를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그 답은 이번 치즈편에서 엿볼 수 있다.

IT나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꾼다고 호들갑을 떠는 건 오히려 지금 30~40대들이고, 그보다 어린 10대들은 디지털 세상의 변화가 그리 놀랄만한 게 아니거든요. (생략) 역설적으로 우리가 '시대의 첨단'이라고 느끼는 것들이 일상품처럼 되어버리고 반대로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들이 귀한 것처럼 여겨지게 될거라 느끼고 있습니다.
(생략) 이 치즈는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해 더 궁금해지는 것이죠.
 - Letter from F | 조수용 대표 인터뷰 발췌


 그래서일까? 이번 호에서는 확실히 치즈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치즈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매거진 F | 치즈편 첫장과 마지막장

 매거진 F 치즈편의 첫장은 치즈 목장을 향하며 시작한다. 점차 치즈 목장과 들판이 보이고 본격적으로 잡지가 시작된다. 마지막에서는 치즈 가판대부터 치즈가 포장되어 식탁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한눈에 치즈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잡지를 한번 보고 나면, 치즈 먹을 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


'이 치즈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래는 스포가 있습니다. 잡지를 직접 보실 분들은 여기까지만 보셔도 괜찮습니다)



매거진 F | 치즈편 118p

 치즈는 엄청난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다. 이 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주 유명한 치즈 장인으로, 염소들을 직접 관리하고 치즈 제조에 쓰일 허브도 직접 채취한다. 염소들과 놀고 허브를 따는 행위 자체가 치즈 맛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 한다.


 이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팟캐스트 B에서 들은 이야기를 첨부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찾기 위해 끝까지 쫓다보면 결국 인문학 이야기로 귀결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맛있는 돼지고기는 어떤 고기죠?' 물어보면 마블링 함유량, 부위 같이 정량적인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하지만 같은 부위에, 같은 함유량을 지닌 돼지고기는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이 중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가 뭐죠?' 물어보면 '이 돼지는 도토리만 먹고 방목시켜 키웠습니다'와 같이 인문학의 영역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매거진 F | 치즈편 26p

 결국, 장인정신으로 과학적이지 않아 보이는 영역까지 섬세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통방식만을 고집하라는 뜻은 아니다. 위 사진처럼 엄청 오래되어 보이는 치즈를 만드는 장인도 굳이 전통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믿는 이상적인 치즈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세운 원칙을 정직하게 따라가는 것이라 한다.

'블루 브레인 치즈' 매거진 F | 치즈편 131p

 저런 마인드 덕분에 이런 치즈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치즈는 동굴에 놓아둔 것을 실수로 잊어서 탄생했다. 생긴 것은 조금(?) 그로테스크하게 생겼지만 속은 하얗고 부드럽다고 한다. 전통방식만을 철저하게 따랐다면 이 치즈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실수의 미학'을 아는 장인들도 있다. 이런 장인들은 실수를 '우연의 산물'이라 여긴다. 우연의 산물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치즈를 찾는 것이다. 사실 치즈 자체가 우연에 산물이기도 하다. 목동들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던 도중, 물통에 채워둔 양젖이 치즈로 발효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일련의 이야기는 비단 음식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물건, 브랜드, 심지어 사람까지도 더 이상 정량적인 차이가 크지 않다. 게다가 정량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다. 결국 매력을 만드는 것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물건이나 브랜드, 혹은 삶을 만들어가는지에 달려있지 아닐까. 가끔씩 실수하더라도 그 속에서 우연의 산물을 찾아낼 줄 아는 여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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