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격] - Ep.00 : Prologue
"우리는 '실격'된 청년인가, 청년을 '실격'당한 세대인가?"
나는 흔히 말하는 커리어가 꼬일 대로 꼬인 사람이다.
맨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던 첫 회사에서 오래 근속했던 시절을 제외하면, 최근의 모든 이직 시도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력서에서 1년 이상의 경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내 명함은 자주 바뀌었다.
가장 최근까지 이마저도 원래의 커리어와 동떨어진 교육기업에서 강사로 일하다 지난 12월, 한 마케팅 대행사의 팀장으로 재취업했다. 공백기를 깨고 얻은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한 달을 마저 채우지 못하고 사직서를 던졌다. 그렇게 나는 요즘 흔히 일컫는, 이른바 '쉬었음 청년'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퇴사의 이유는 아주 명확했다. 그곳은 법이 없는 말 그대로 '무법 지대'였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머나먼 대한민국이라는 머나먼 땅의 전래동화처럼 아득했고, '포괄임금제'라는 만능 방패 뒤에서 주 52시간은 고사하고 추가 노동 시간 자체가 뻔뻔하게 삭제되었다.
100명이 훌쩍 넘는 조직임에도 체계는 전무했다. 회사의 본질이어야 할 콘텐츠는 당장의 제안 영업 실적에 밀려 대학생 조별 과제만도 못한 수준으로 전락하였다.
무엇보다 대표는 사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할 현실을 외면한 채, '기업 놀이'라는 달콤한 환상과 꿈속으로 도피 중이었다.
하지만 삼국지에서 난세(亂世)는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 속에서도 빛나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장 속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나보다 어린 동료들을 보았다. 이들은 유능했고, 긍정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비록 제안서 작성에는 자신 있었지만, 마케팅 경험이 없었던 내가 프로젝트를 신속하고 퀄리티 있게 끝낼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우리 팀원들 덕분이었다.
회사를 나온 직후 복잡한 마음에도 그들을 생각하며 나는 펜을 들 용기를 얻었다. 이 글은 나의 실패한 커리어에 대한 단순한 변명문이 아니라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해 버티고 있는, 혹은 나처럼 시스템 밖으로 튕겨져 나온 수많은 '우리' 그리고 '청년'을 위한 기록이라고 감히 함부로 말해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오늘도 이력서를 쓴다. 적어도 법이 지켜지는 곳,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가기 위해.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오늘도 불안한 밤을 보내는 청년들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혹은 우연히 이 글을 마주할 어른들에게 우리 젊은 세대의 '일시정지'를 이해하는 작은 실마리가 되어주기를 조용히 소망해 본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은 내 길기도 했고, 짧기도 했던 시간 동안의 '청년실격'의 현장에 대한 고발이자, 함께 지금의 과도기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생존 일지이다.